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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69760050
· 쪽수 : 432쪽
· 출판일 : 2013-10-17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 같은 사람보다 당신 같은 사람이 의대를 갔어야 하는 건데. 왜 그랬어요?”
진심이었다. 비꼬는 말도 아니고 떠보는 말도 아니고, 혜찬은 진심으로 그런 생각으로 말했다. 의사는 태생이 자비로워야만 하는 직업이었다. 인성에 상관없이 성적과 능력으로 전공의가 되고 의학박사가 되는 경쟁시스템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은 태생이 윤국처럼 타인에 대한 배려와 희생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면, 무책임한 의료사고로 인한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는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려울 테니까.
“저기 갈래?”
국이 또다시 그늘이 짙어진 혜찬의 표정을 읽어내며 묻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기에 마음이 답답했지만, 섣부르게 캐묻는 것은 약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3년 전 그녀가 겪었던 거북섬에서의 그 일조차도 혜찬은 한 번도 겉으로 꺼내 놓은 적이 없지 않던가. 겉으로 꺼내놓기 어려운 뭔가를 가슴에 품은 사람은, 건드릴수록 거북이처럼 제 껍질 안으로 더 숨는 법이다. 국은 그런 혜찬이 숨을까 봐 불안했다.
“응? 갑자기……, 어디요?”
“저기.”
혜찬이 국이 올려다보는 건물을 빤히 올려다본다. 그리고 곧 목소리를 낮게 깔아서 느릿하게 물었다.
“이봐요, 설마 저 스테이트 호텔 말하는 거 맞아요?”
국이 올려다보던 호텔에서 눈을 내려 그런 혜찬을 돌아봤다. 그녀의 얼굴에 서려 있던 그늘이 또 한순간에 날아가 있었다. 가끔은 종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기분이 들쭉날쭉한 변덕이 심한가?’ 라고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녀는 상대에게 자기 기분을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혜찬 자신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지만, 국이 아는 혜찬은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널 이만큼 생각하고 있어.’ 라고 드러내 표현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마음이 더 깊기 때문이었다. 클럽에서 순철에게 해 주었던 그 모든 것 역시 그렇지 않았던가.
국은 며칠 전 인권회의 때부터 유난히 호텔에 민감하게 구는 혜찬이 귀여워서 빙글 웃으며 물었다.
“호텔에 왜 그렇게 민감할까?”
일부러 빙글빙글 웃으며 약 올리듯 물었다.
“뭐요?”
“아니, 저번에도 그랬잖아. 내가 하고 싶다고 졸랐을 때.”
아! 혜찬은 짓궂게 일부러 회의장에서의 일을 떠올리게 만드는 국을 당황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이내, 그녀답게 사실대로 얘기했다.
“그거야…… 그렇잖아요. 머무는 숙소 놔두고 왜 다른 호텔 방을 잡아 들어가서 해야 되는데? 우리가 불륜도 아닌데 꼭 불륜 같은 분위기잖아. 아니에요? 난 그래서 싫어.”
음, 그런가?
국은 혜찬의 말에 눈썹 언저리를 긁적이며 여자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노력한다고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생각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 썩 빨리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혜찬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꺼려질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국이 가리킨 ‘저기’는 스테이트 호텔의 룸이 아니라 다른 곳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유난히 호텔에 민감했던 혜찬이 확대 해석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말이지.”
국은 자못 심각한 투로 말머리를 떼며 그녀를 내려다봤다. 실은 놀리고 싶은 것을 참느라 심각한 표정이 되었지만 결국 말은 놀리는 내용이 되고 말았다.
“내가 말한 저기는 호텔 룸이 아니라 그 위, 스카이라운지를 말하는 거였는데.”
에?
혜찬의 눈이 가늘어진다. 국은 몇 대 맞을 각오를 해서인지 깍지 끼어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최대한 멀찌감치 몸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혜찬이 어이없다는 듯 핏 웃는 척하다가는 국의 등짝을 향해 손을 휘둘렀지만 그가 한발 빨랐다. 헛손질에 열이 받은 혜찬이 다시 손을 휘두르지만 국은 그런 혜찬의 다른 손을 더 꽉 쥔 채 뛰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