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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69761422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14-11-07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 악마와의 과외
2. 스무 살, 그해 가을
3. 재회
4. 달콤 씁쓸한 짝사랑의 맛
5.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지원군
6. 기울어 가는 마음
7. 짝사랑이 아픈 이유
8. 그 어느 봄밤
9. 엉켜 버린 마음
10. 짝사랑을 완성시키는 법
11. 안녕, 나의 왕자님
12. 넌 한 번을 기다리질 않네
13. 뒤를 보니 네가 보여
14. 여름, 청춘 그리고 사랑
15. 네가 좋아서 그랬어
16. 한여름의 소나기
17. 풋, 사과
에필로그
작가 후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걷는 내내 별다른 말은 오가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난이가 몇 번 우스갯소리를 던졌고, 태윤이 약간씩 반응해 준 것이 다였다. 나중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불편한 게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워졌다. 굳이 말이 오가지 않았어도 이른 저녁의 초승달 아래 걸어가는 가을 길은 예뻤고 두 개의 그림자는 길었으며 바람은 선선했다.
“……인형 꿰매 준 거 있잖아.”
난이의 집에 다다랐을 무렵, 그녀는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잘 꿰맸더라고. 의사해도 되겠어.”
난이가 자신이 말해 놓고도 민망한지 잠시 소리 내어 웃었다. 태윤이 그런 난이를 바라보며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그 봉제 인형, 우리 아빠가 나 어릴 때 만들어 주신 거거든.”
난이가 집 앞에 서서 태윤을 마주 보며 씩 웃었다. 태윤 또한 걸음을 멈추고 난이를 바라보았다.
“너희 가족 참 단란하고 화목해 보이더라. 넌 정말 복받은 거야.”
난이가 샐쭉 웃으며 태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태윤의 눈이 난이의 손을 빤히 응시했다.
“우리 집 다 왔잖아. 앞으로 얼굴 보기 힘드니까, 마지막으로 악수하게.”
태윤은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난이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난이는 잠시 망설였지만 마지막이니까 기분 좋게 끝내고 싶은 마음에 용기 내어 태윤의 손을 덥석 잡고는 세게 흔들었다.
“답답하기는. 이럴 때는 쿨하게 악수하고 바이바이 해야지.”
태윤이 그래도 대답이 없자, 난이는 작게 한숨을 푹 내쉬고는 태윤의 손을 놓으려 했다. 하지만 태윤이 손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난이가 당황한 눈으로 태윤을 올려다보자 태윤이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나도…….”
“응?”
“나도 사실 아빠 없어. 어릴 때 헤어졌거든.”
난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보자 태윤이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계신 아버지, 친아버지 아니라고.”
“아…….”
난이가 작은 탄성과 함께 당황한 마음에 연신 눈을 깜빡였다.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난이의 생각이 뻔히 보이는지 태윤이 다시 한 번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부러워하지 마. 다들 행복해지려고 애쓰는 거니까.”
태윤은 멀찍이서 난이가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난이가 들어간 뒤에도 태윤의 시선은 한참 동안이나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해 가을,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사 개월 후.
과에서 자그마하게 미화부장을 맞게 된 난이는 어쩔 수 없이 과 학생회 임원으로서 신입생 오티에 참석하게 됐다. 2월 중순인지라 아직 가시지 않은 추위에 겹겹이 싸매 입고 왔음에도 매서운 칼바람에 코끝이 아릿했다.
“와, 진짜 춥다.”
집이 가까워 일찍 온 덕에 과 푯말을 들고 서 있게 된 난이가 온몸을 떨며 말했다. 난이를 따라 신입생 구경에 나선 아린 또한 난이 옆에 꼭 붙어서 추위에 발을 동동 굴렀다.
난이는 첫 후배들을 본다는 생각에 꽤 들떴었지만 지금은 너무 추워 나 몰라라 집에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급기야 추위 때문인지 소변이 마려워져 온몸이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난이는 맨 앞에서 자꾸만 꽈배기처럼 엉키는 그녀의 다리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남학생의 시선을 외면하며 아린에게 처량한 얼굴로 슬쩍 귓속말을 했다.
“야, 안 되겠다. 아린아, 나 이거 잠깐만 맡기고 화장실 갔다 올게.”
난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부탁하자 아린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난이는 푯말을 아린에게 떠넘기듯 주고는 종종걸음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인문대와 사회대, 생활대, 의대가 함께 진행하는 오티인데다, 하필 그녀의 과가 학생회관이 있는 방향과 거의 반대편에 있어서 난이는 아이들 뒤쪽으로 꽤 긴 거리를 뛰어가야 했다. 학생회관 화장실에 갈 줄 알았다면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서 있는 거였는데.
“어?”
공터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던 난이는 그토록 바라던 학생회관이 코앞임에도 무언가에 홀린 듯 멈춰 섰다.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검정 터틀넥 티에 롱코트를 입은, 지극히 무난한 옷차림에도 절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너……?”
여전히 날카로운 눈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이는 소변이 마려운 것도 잊은 채 당황스러움에 빳빳이 굳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아무 말도 하지 않던 태윤의 입가에 설핏 웃음이 실렸다 금세 사라졌다. 비웃는 것 같기도, 그렇다고 기분이 좋은 것 같지도 않았다. 난이는 태윤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주위를 둘러보기를 반복했다. 믿기지 않았다. 이럴 수는 없었다.
난이의 황망한 눈이 태윤의 곁을 맴돌다 마침내 태윤이 줄 끝에 서 있음을 알아차렸다. 줄 끝을 따라가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들고 있던 푯말이 보였다. 같은 푯말이나 써 있는 글자는 달랐다. 눈을 살짝 찡그리고 글자를 확인하고 난이는 다시금 경악에 찼다. ‘의예과’였다.
“네가…… 우리 학교 의예과에 입학을 했어?”
네가? 너 같은 애가 의사가 된다고? 난이의 얼굴에서 드러난 그녀의 의중을 읽었는지 평온하던 태윤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옛날 생각하면 그런 표정 못 지을 텐데.”
“왜…….”
왜 하필 우리 학교인 거야!
“불과 사 개월 전인데 머리가 나빠서 벌써 다 잊었나?”
태윤이 눈꼬리를 접으며 싱긋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환한 미소였다. 천사의 그것처럼 예쁘지만, 악마의 그것처럼 몸이 떨리는.
“다시 보니 반갑네, 최난이.”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이름이 불려졌다. 선생님으로도 한 번 불리지 못하고 결국 같은 학교 재학생으로 그에게 이름 석 자를 불리게 되었다. 난이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절망이었다. 그녀가 열심히 가르쳐 준 영어로 그녀의 학교에 들어올 줄이야. 난이는 태윤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오한에 떨며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그녀를 빤히 바라보는 태윤의 시선에서 벗어나 난이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