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천수를 다하도록 오래 살고 나면 자연히 모든 것을 잊게 되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그리 오래 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기억을 잃는 법이 결코 없다는 말은 비교적 정확한 표현이다. 열 가운데 아홉은 너무 노쇠한 나머지 기억이 새어나가는 시기를 몇 십 년이나 앞둔 한창 때 인간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는, 코끼리들이 기억을 잃지 않는 건 커다란 몸집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그 뭉게구름 같은 풍성한 살집과 느릿느릿 움직이는 거대한 뼈 속에 자리잡은 모든 게 다 기억의 덩어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 그들은 분명 평생 동안의 기억을 고스란히 지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사실만큼 기억이 사라지고 나면 조만간 최후를 맞게 된다는 사실은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기억들이 새어나가기 시작하면 마치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기라도 하듯이 몸도 급속히 영락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 본문 10~11 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