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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통일/북한관계 > 북한학 일반
· ISBN : 9788970871790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26-09-01
책 소개
목차
서문
제1장 분노가 불러온 탈출
일요일 아침에 날아온 전보
외교 고립을 자초한 북한 핵실험
북한 대사관의 안타까운 속사정페루 대사와의 협상에 성공하다
부정으로 가득한 북한 사회에 분노를 느끼다
아내를 쇼크에 빠뜨린 탈북 제안
치밀한 탈출 계획
긴박했던 탈출 상황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제2장 나의 삶
부모님을 울린 김일성 사망 오보
남조선에서 대표단이 왔다고?
부러울 것 없는 유학 생활
일본 여성 공작원과의 만남
일주일 안에 쿠바를 떠나라
지방 추방 명령을 거부한 아버지
보위부 지하 취조실에 끌려가다
김일성 사망, 3년의 애도 기간
사랑을 꽃피운 대학 생활
고난을 넘어 결혼을 결정하다
제3장 북한 외교가의 숨겨진 이야기
높은 외무성 문턱을 넘다
외무성 인원을 축소한다고?
뇌물을 바쳐가며 버틴 당간부학교
“장군님의 중국 방문을 극비로 취급하라”
제네바에서 생긴 종기, 그리고 목발
멕시코 한인들을 치료한 북한 한의사
1차 북핵 실험의 날, 북한 주민들의 환호와 중국의 레드라인
고이즈미와 김정일의 만남, “회담 탁자에 물도 놓지 말 것”
꺾여버린 멕시코 파견의 꿈
캐나다 호텔방 바닥의 문서 한 장
통일교와 평화자동차의 서글픈 종말
외무성 입직 13년 만에 마침내 외교관이 되다
아바나의 합숙마을과 외부주택
김정일 사망, 3일의 짧은 애도 기간
쿠바 북한 대사관의 암투
불법 장사에 연루된 북한 외교관들, ‘넥타이 맨 꽃제비’
‘청천강호’ 사건
제4장 내가 만난 김정은, 김정은의 사람들
김정은의 신뢰를 받은 소심한 인물, 최룡해
노련한 외교관 리용호, 외무상으로 임명되다
핵실험과 북한 외교관들의 시련
쿠바 대표단의 평양 방문이 무산될 뻔한 사연
쿠바 대통령 영접 준비와 어이없는 사업 분담
떨림 속에서 김정은과 대화를 나누다
“통역이 저런 거밖에 없소?”
북한의 노래방 폐쇄 사건
북한 간부들에게 교훈을 남긴 황병서의 좌천
량강도당 책임비서 리상원의 허위자백 사건
외무성 의례국장의 억울한 좌천
두 번 놓친 ‘영도전화’, 당 국제부에 밀린 외무성
“지적 말씀이 계셨소”
김정은 통역사들의 불우한 운명
공개 처형으로 사라진 외무성 간부들
외무성과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탁구 경기
김정은 우상화를 낳은 ‘혁명일화’
제2차 영화혁명
한국과 쿠바의 수교, 옛 우정은 역사의 뒤안길로
김씨 일가에 한평생 충성한 보기 드문 충성파, 김영남
김정은의 ‘두 국가론’과 한류의 역할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들어가니 이미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나와 있었다. 내가 김정은을 한 공간에서 가까이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마치 신 가까이 선 것 같은 느낌과 흥분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김정은과 리설주에게 ‘정중히’ 인사하고는 한쪽에 비켜서서 말을 걸면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온몸이 긴장되었다.
김정은은 2015년 디아스 카넬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만났던 이야기를 김영남 등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한참 이야기하더니 나와 김성남을 향해 물었다.
“디아스 카넬이 타고 오는 비행기가 러시아 비행기요, 미국 비행기요?”
김성남은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대답하라는 뜻이었다.
“원수님, 러시아에서 생산된 비행기입니다.”
그 말에 김정은이 대꾸했다.
“그 사람들도 미국 제품은 못 쓰는 모양이구만.”
“그렇습니다. 쿠바가 미국의 제재를 받다 보니 미국 제품은 쓰지 못합니다.”
내 대답을 듣고 김정은이 문득 물었다.
“쿠바 사람들은 뭘 좋아하나?”
순간, 갑자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질문이 음식을 의미하는지, 생활 방식을 뜻하는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미처 대답을 못 하자 김정은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쿠바는 인구가 얼마나 되오?”
“원수님, 1,100여 만 명입니다.”
내 대답을 듣고 김정은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인구는 많지 않구만.”
그렇게 10분쯤 지나자 국제부 의례과장이 들어와 비행기가 곧 착륙한다고 김성남 부장에게 보고했고, 김성남 부장은 다시 김정은에게 보고했다.
“원수님, 특별기가 곧 착륙한다고 합니다. 저는 실무 일꾼들을 데리고 현장에 나가겠습니다.”
김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곧 나가겠소.”
김성남과 나는 김정은에게 다시 정중히 인사한 뒤 밖으로 나갔다.
_ 「내가 만난 김정은, 김정은의 사람들」 ‘떨림 속에서 김정은과 대화를 나누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핵폐기의 진정성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김정은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도록 핵실험장의 폐기를 의미 있게 진행할 것을 지시하고 그 과업을 외무성에 주었다. 외무성에서는 김계관 당시 외무성 1부상과 리태성 11호실 실장 등이 밤을 새워가면서 핵실험장 폐기에 관한 대책 문건을 완벽히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정은이 핵실험장 폐기 문건 준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외무성 1부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 1부상은 몸이 불편하여 사무실 안방에서 잠시 누워 쉬고 있었는데, 김정은에게서 걸려오는 ‘영도전화’ 벨소리를 듣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다급히 전화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던 도중에 전화가 끊겼다.
통화가 되지 않자 김정은은 이어서 외무상 리용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외무상은 마침 그때 화장실에 있었다. 화장실에서 ‘영도전화’ 벨소리를 듣고 뛰어오다시피 했지만, 도중에 전화가 끊기고 말았다.
김정은은 곧바로 노동당 국제부 리수용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했다.
“내가 외무성 1부상과 외무상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누구도 받지 않는다. 외무성이 정말 규율이 없다. 이렇게 규율이 없어 가지고 미국과의 큰 싸움을 어떻게 감당해내겠나. 아무래도 이번 조미회담(북미회담)은 당 국제부가 맡아 해야겠다.”
사실 그날 내가 외무성 경비 책임자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나는 전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원래 외무상이나 1부상이 자리를 비울 때는 서기가 전화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서기들은 밤 10시가 지나면 퇴근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이다. 그날 1부상이나 외무상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전화를 받았다면 별일 없었을 것이다.
다음 날 조직지도부에서 내려와 상황을 요해하였는데, 외무상과 1부상 모두 퇴근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므로 일단 처벌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이 북미회담 사령탑을 외무성으로부터 당 국제부로 옮기라고 이미 지시했으므로 외무상은 밤을 새워가며 만든 소중한 문건들을 모두 당 국제부에 넘겨야만 했다.
당 국제부는 외무성이 작성한 문건들을 거의 그대로 김정은에게 보고했다. 김정은은 그 문건을 받아보고 기분이 좋아 높이 평가했다.
“역시 당이 규율이 있소. 내가 지시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렇게 완벽한 문건을 만든 것을 보면 국제부에 일을 맡기길 잘한 것 같소.”
그것은 밤을 새워가며 문건을 작성했던 리태성 11호 실장이 땅을 치며 통탄할 일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무너진다.
이것이 바로 북한 체제의 실상이다.
_ 「내가 만난 김정은, 김정은의 사람들」 ‘두 번 놓친 ’영도전화‘, 당 국제부에 밀린 외무성’
먼저 군복무와 관련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정확한 부대 명칭은 알 수 없지만, 김정은은 탱크부대에서 일반 병사(사병)로 복무했다고 한다. 그가 처음 부대에 배치됐을 때, 남보다 훤칠한 체격이 부대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북한군에서는 병장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자를 사관장(부사관)이라 한다. 한국군의 병장에 해당하는 사관장의 군사 칭호는 상급병사이며, 그 아래로 중급병사(분대장), 초급병사, 하급병사 등이 있다. 사관장은 군인들의 대열 관리를 총책임지며, 부대의 양식과 피복 등을 총괄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장교들조차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핵심 사관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이 처음 군에 배치됐을 때 그를 가장 괴롭힌 사람이 바로 이 부대의 사관장이었다. 사관장은 김정은에게 고향과 부모 등에 대해 물었다. 김정은은 고향은 평양이며,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회사 사장을 하는 외삼촌 손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사관장은 김정은이 평양 출신이라는 것과 외삼촌이 회사 사장을 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다. 사실 평양에 산다고 해서 누구나 호의호식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방에서 외화벌이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평양시 주민보다 훨씬 부유하게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당시 북한에서 수도와 지방의 격차는 하늘과 땅만큼 컸다. 그러다 보니 지방 사람들은 평양 사람들을 부러워하다 못해 미워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사관장은 김정은에게 도둑질까지 시키고, 부대 안에서 온갖 잡일을 시키며 괴롭혔다고 한다.
반면, 김정은이 소속된 분대의 분대장은 그를 감싸주었다. 체격만 클 뿐 상당히 순진하고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잘 모르는 김정은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분대장은 사관장에게 매를 맞고 서러워하는 김정은을 따로 챙겨둔 음식을 내주며 달래기도 했다. 부대에서 아무리 학대를 받아도 자신이 ‘장군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김정은의 마음도 참 서글펐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고생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의지력의 소유자였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약 1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부대에서는 김정은에게 외삼촌을 통해 부대에 필요한 물자를 구입해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귀가를 승인받은 김정은 옆에는 분대장이 동행했다.
평양에 도착한 김정은은 공중전화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10분 정도 지나자 2.16(지금의 7.27) 숫자가 표기된 검은색 벤츠 한 대가 나타났다. 보통 북한에서 2.16은 당중앙위원회 위원(후보위원 포함) 이상의 중요 간부들에게만 배정되는 번호다. 차에서 내린 중년의 간부는 김정은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그를 차로 ‘모셨다’.
김정은은 당황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분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간 나를 돌봐주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오늘로 나의 군사복무 기간은 끝났습니다. 내가 지시해놓을 테니 평양에 체류하는 동안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훗날 제가 분대장 동지를 꼭 찾겠습니다.”
그러고는 깍듯이 인사를 했다.
_ 「내가 만난 김정은, 김정은의 사람들」 ‘김정은 우상화를 낳은 “혁명일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