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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70909141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2-11-28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이별의 구겔호프
둘만의 포타쥬
무너진 목욕탕과 캄파뉴
낙엽송처럼 너를 사랑해
에필로그
리뷰
책속에서
여름밤의 파란 풀밭은 시원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나는 맨발로 풀 위를 걷는 것이 좋아졌다. 카페 뒤로 이어진 완만한 언덕을 걸어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
카페 마니의 지붕이 밤이슬에 젖어있는 것이 보였다. 정상에 선 한 그루 나무 아래에서 바람을 맞고 있자니 도키오가 언덕 위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올라오는 도키오에게 소리쳤다.
“한심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죠, 나를!”
도키오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묵묵히 올라왔다. 그러고는 “······글쎄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늘 풀려 있는 도키오의 얼굴 근육에 힘이 꽉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진지한 옆얼굴이 나를 지나가다가 멈춰 섰다.
“자신이 한심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뜻밖의 말에 흠칫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갖고 있구나. 도키오는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자신의 문제점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키오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책상다리를 했다.
“그래서 가오리 씨를 처음 봤을 때 정말 많이 웃을 수 있었어요.”“웃을 수 있었다고?”“온힘을 다해 행복해지려고 하는구나, 하고.”
나는 창피해서 도키오를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등바등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게 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아등바등하다가 창피당하고. 그런 게 어때서요? 가오리 씨.”
오래간만에 듣는 긍정적인 칭찬에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는 나 자신이 의외였다. 오카다와 사귀면서 어느 틈엔가 비판받고 비교당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였다.
“난 매일매일 전철의 선로전환기를 다뤄요. 선로전환기, 알아요? 방향전환을 하기 위해 이쪽 선로를 저쪽 선로로 바꿔서 이어주는 거. 선로의 방향을 바꿔 줄 때마다 전철은 이렇게 간단하게 방향이 바뀌는데 내 인생은 쉽게 방향전환이 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죠. 기찻길은 어디로든 달려가지만 나는 홋카이도에서 떠날 수가 없어요.”
아야가 입 안 가득 빵을 문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죠.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장장 50년입니다. 50년 동안 싫다고 안 먹던 빵이에요. 나는 멍해졌습니다.
그 때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아야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내일도 이 빵 먹고 싶어.”그 말에 가슴이 조여들었습니다. 아야는 내 결심을 이해하고 함께 죽으려는 나를 따르기로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야의 본능은 살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던 겁니다. 오호, 하고 나는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아야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그 때 아야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미안해요.”
나는 눈물이 흘러넘쳤습니다. 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말이 나에게는, “살고 싶어 해서 미안해요. 그렇게 막다른 길을 생각하게 할 정도로 힘들게 해서 미안해요. 내가 병에 걸려서 미안해요. 여러 가지로, 여러 가지로 미안해요.” 라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알았어. 알았다고.”그렇게 대답하고 눈물을 닦고 의자에 고쳐 앉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야가 여기, 하고 먹던 빵을 둘로 나눠 나에게 주었습니다. 나는 빵을 받아들고 입에 물었습니다. 달달한 완두콩 맛이 입안에 퍼졌습니다.
“맛있어. 맛있군.”
왜 그랬을까. 무엇에 씌었던 걸까. 나는 정신없이 선반을 뒤졌습니다. 수많은 그림책. 수많은 소설. 바느질 상자. 아닙니다. 이것도 아니야. 아닙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미친 듯이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깊은 푸른색의 표지.
그림책 <달과 마니>입니다.
나는 숨을 죽이고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무척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리에 씨가 어린 시절부터 이 얘기를 무척 좋아했던 이유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눈물이 흘러나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리에 씨는 리에 씨의 [마니]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운명의 사람을 찾는다든가 하는, 그런 차원의 얘기가 아닙니다.
우선 자기 자신에게 그 어떤 능력이 있을 것.
그리고 상대에게도 그 어떤 능력이 있을 것.
그런 두 사람이 함께 있음으로써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을 것.
결코 [마니]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 [달]이 될 수 없다면 [마니] 역시 있을 수 없습니다.
[마니]는,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없다면 절대로 손 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리에 씨의 슬픔이 너무나도 깊다는 생각에 나는 떨면서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