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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72092155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10-01-18
책 소개
목차
책을 내면서
프롤로그
제1부 집념
제2부 배신
제3부 보이지 않는 손
에필로그―꿀이 없으면 결코 벌들이 꼬이지 않아
저자소개
책속에서
처음 부산에서 미 국방성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였던 리처드 롤리스를 만나 브리핑을 할 때, 나는 일본군이 약탈한 보물들을 북경역에서 기차에 싣고 곧장 부산 제7 부두 우암역으로 싣고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비밀 약정서를 교환하고 1년 반 쯤 지난 후 롤리스의 사무실 위층에 있는 중국 레스토랑 야래향(夜來香)의 예약된 작은 방에서 다시 만났을 때, 내가 말한 정보에 틀린 부분이 있다고 귀엣말로 전해 주었다.
“확인해 보니 당시 기차가 부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신의주 철교를 B29가 폭격한 날짜가 그해 5월 3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기차가 5월 말에 철도로 부산까지 올 수가 있었겠어요? 그래서 지금은 수송 루트를 어떤 경로로 했는지를 추적하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리면 미국에서 찾아낼 겁니다.”
그때 이미 문현동 현장의 물을 수거하여 분석 결과 수은(Hg)을 비롯한 18가지 중금속이 녹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건 그 장소가 한때 어뢰 공장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롤리스는 계약서 작성 후 1년 반이란 기간 동안 다른 일은 전폐하다시피 하고 문현동 어뢰 공장의 실체를 찾는 일에만 전념했노라고 말했다. 만사 제쳐 두고 어뢰 공장 추적에 매달린 것만 봐도, 이 비밀스런 프로젝트에 거는 미국의 기대와 중요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미국의 입장에선 단순히 보물을 숨긴 위치를 찾는 일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현안이 있었다.
사실 확인을 위한 문건을 찾아내야 하고, 또 어뢰 공장의 실체가 나타났을 때 보물을 강탈당한 중국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설 것을 감안한 사전 교통정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롤리스는 그날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신분에 대해 언급했다.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CIA와 관계가 있었다.
롤리스는 나와 두 번째 만날 때까지 영어만 사용하고 한국말을 전혀 모른 척 듣고만 있었던 인물이다. 워낙 사안 자체가 중요한 데다 함부로 낯선 사람과 친할 수 없어서 불가피하게 한 행동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만나던 날 비로소 한국말을 사용했다. 마침 통역을 하던 배영태가 한 시간가량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당신 호칭을 정 선생이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아니, 그런데 어떻게 그리 한국말을 잘 구사하십니까?”라고 묻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롤리스는 젊은 시절부터 CIA에 차출되어 철저하게 교육받았다고 했다. 중국에서 탈취해 간 보물들이 어디에 감추어져 있는지 그 행방을 찾는 특수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하고서 한국으로 파견된 게 1966년도라고 하였다. 임무를 부여받은 지 무려 34년이 지난 후 아주 우연하게 나와 만나게 된 인연이다. 따라서 한국 사람처럼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고, 나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도 다 알아들을 수 있다고 했다.
마음을 연 롤리스는 작정하고 밤늦도록 자신에 관해서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문현동 지하에 어뢰 공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비밀 계약을 맺은 데는 다 까닭이 있었다. 롤리스는 젊은 시절 주한 미군으로 한국에 파견되어 3년을 복무하고 귀국했다. 그러나 제대 후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상무관으로 근무하게 되었고, 그때 지미 카터 미 대통령에게 한국 정부의 핵 개발 움직임에 대한 극비 보고서를 올린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 보고서로 인해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 프로그램의 핵심인 핵 개발 계획이 노출되었고, 카터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한국 정부가 핵 개발 의지를 포기하도록 공개적으로 압력을 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한 외교관이 베이루트 시내에서 백주에 납치당했던 사건을 해결한 것도 롤리스 자신이었다고 했다.
당시 사건의 미스터리에 대한 특집 기사가 난 월간지까지 들고 와서 펼친 후 기사를 보이며 설명해 주었다. 문제의 도재승 서기관 납치 사건은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려졌지만, 그때까지도 누구에 의해서 무슨 목적으로 납치를 당했는지 아무런 단서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롤리스는 기사 내용 중의 ‘익명의 미국인’이 바로 자신을 가리킨다며 자랑하듯 말했다.
서로 몇 잔의 술이 들어가서였을까? 정보 기관원이 스스로 신분을 노출하는 것은 금기인데……. 그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있다는 걸 느낀 나는 내심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던 의문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미국은 일본군의 긴노 유리 작전의 전모를 어떻게 파악하게 되었습니까?”
롤리스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잠시 생각하듯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1945년 9월 2일, 도쿄 만에 정박한 우리 항공모함 미주리호 선상에서 항복한 일본군 전쟁 지휘 본부 수뇌부를 대표한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일본 외상이 항복 문서에 서명할 때였습니다. 그 시간 도쿄 시내에 진주한 미군이 맨 먼저 한 작전은 전쟁 지휘 본부를 접수하는 일이었습니다. 서랍과 캐비닛은 물론이고 휴지통에서 타다 남은 휴지 조각들까지 모조리 수거하여 미국에 가져가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주 중요한 문서를 하나 발견하였지요. 그게 바로 중국 대륙에서 한 달간에 걸쳐 자행된 ‘Golden Lily(긴노 유리)’ 작전의 무선 통신 지령문이었습니다. 발신자는 전쟁 지휘 본부인 일본군 대본영이고 수신자는 방면 군사령관이었습니다.”
롤리스는 그 지령문의 내용을 대충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대일본 제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다. 이대로 가면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도 다 죽는다. 내일의 일본을 기대할 수 없다. 부득이하여 5월 한 달간 이 작전을 하달한다. 보이는 대로 가능한 무조건 약탈하라.’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약탈이 실제 지령대로 감행되었는지 비밀리에 조사해 봤더니 전부 사실로 드러났어요. 무차별로 약탈한 보물들이 모두 베이징 역으로 보내졌고 거기서 최종 목적지인 부산까지 간 것까지는 인정하겠는데……. 어떤 경로로 갔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약탈당한 보물들을 지금까지 추적해 왔으나 단서조차 못 잡고 있었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정 선생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제가 특별 임무를 부여받은 지 35년도 더 지나서 이제 희망이 생긴 셈이죠. 일본으로 싣고 갔으리라 믿고 7년 동안 일본 땅 구석구석을 조사했지만 작은 실마리도 못 찾고 오리무중이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우리 해군이 바다를 봉쇄하여 일본군은 현해탄을 건너갈 수 없었어요. 때문에 일본 본토에는 보물을 숨길 수 없었다는 결론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땅 어딘가에 숨겨 놓았으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종적을 모르다가 뜻밖에 정 선생 말을 듣고 문현동 현장을 알게 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