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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가톨릭 > 가톨릭 성서 > 성서의 이해
· ISBN : 9788976354716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26-10-13
책 소개
목차
서문 _004
여는 말 _008
추천의 말 _022
한국어판 여는 말 _024
일러두기 | 약어 _027
욥기 입문
저술 연대와 배경 _035
장르와 문학적 특징 _037
신학과 목적 _039
개요 _042
욥기 주해
머리말 1,1-2,13 _045
욥의 소개 1,1-5 _045
천상에서 내기를 하다 1,6-12 _047
욥의 불행이 시작되다 1,13-22 _048
천상 장면: 둘째 내기 2,1-7 _049
욥의 더 큰 불행과 친구들의 방문 2,8-13 _051
대화, 첫째 차례 3,1-14,22 _053
욥의 첫째 말 3,1-26 _053
엘리파즈의 첫째 담론 4,1-5,27 _058
엘리파즈에 대한 욥의 첫째 답변 6,1-7,21 _066
빌닷의 첫째 담론 8,1-22 _071
빌닷에 대한 욥의 첫째 답변 9,1-10,22 _073
초파르의 첫째 담론 11,1-20 _078
초파르에 대한 욥의 첫째 답변 12,1-14,22 _079
대화, 둘째 차례 15,1-21,34 _086
엘리파즈의 둘째 담론 15,1-35 _086
엘리파즈에 대한 욥의 둘째 답변 16,1-17,16 _089
빌닷의 둘째 담론 18,1-21 _096
빌닷에 대한 욥의 둘째 답변 19,1-29 _097
초파르의 둘째 담론 20,1-29 101
초파르에 대한 욥의 둘째 답변 21,1-34 _102
대화, 셋째 차례 22,1-27,23 _105
엘리파즈의 셋째 담론 22,1-30 _106
엘리파즈에 대한 욥의 셋째 답변 23,1-24,17.25 _108
잘못 배치된 구절 24,18-24 _111
빌닷의 셋째 담론 25,1-26,14 _112
빌닷에 대한 욥의 셋째 답변 27,1-23 _114
지혜 찬가 28,1-28 _116
욥의 자기 정당화 29,1-31,40 _118
엘리후의 연설 32,1-37,24 _124
폭풍 속에서 하느님이 하신 말씀 38,1-42,6 _134
하느님의 첫째 말씀 38,1-39,30 _134
욥의 첫째 답변 40,1-5 _138
하느님의 둘째 말씀 40,6-41,26 _138
욥의 둘째 답변 42,1-6 _140
맺음말 42,7-17 _141
참고 문헌 _144
관련된 고대근동 문헌 _144
시편 입문
번호 체계와 다섯 권 구성 _147
시편집의 구성 _149
시편과 시편집의 연대 _151
전례 문집 또는 시 선집 _153
저자와 작곡가 _155
문학 유형 _156
청자(대상)의 전환과 담화 양식의 변화 _159
시편과 제의 _161
히브리어 시에서의 병행법 _162
시편의 신학: 헤셋 _164
저주와 폭력 시편 _168
시편 주해
제1권: 1-41편 _173
제2권: 42-72편 _213
제3권: 73-89편 _246
제4권: 90-106편 _263
제5권: 107-150편 _279
참고 문헌 _317
옮긴이의 말 _318
책속에서
욥기에는 한 가지 이상의 교훈이 있다. 욥은 어떠한 죄로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결백을 인정받는다. 그의 정직함은 하느님을 위하여 거짓말을 하는 이들의 경건함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의 정직함은 지혜와 같지 않다. 우주는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을뿐더러, 하물며 욥을 중심으로 돌아갈 리도 없다. 하느님도, 우주도 인간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필요는 없다.
욥이 인생의 덧없음 앞에서 쾌활해질 수 있다 해도, 자기 몸의 고통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더욱이 욥이 무엇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죄를 물으신다면 왜 공연히 고생해야 하는가? 이 질문으로 욥은 사탄의 요점에 접근한다. “공연히”라는 문구에는 모호한 언어의 차이가 있다. 욥이 쓴 단어는 히브리어 헤벨hebel인데, 삶이 지닌 허망하고 덧없는 특성을 잘 포착한다. 1,9과 2,3의 표현(“까닭 없이”)은 인생의 본질적 특성보다 호의 없음을 나타내는 다른 단어(역자주: 히브리어 힌남ḥnnam)를 사용한다. “공연히(또는 까닭 없이)” 무언가를 한다는 말은 미묘하게 다른 어감을 전달할 수 있다.
오직 하느님만이 지혜에 이르는 길을 아신다. 놀랍게도 하느님이 지혜를 창조하셨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지혜는 독립된 존재로 나타난다. 하느님은 지혜를 보시고 살피시며 찾아내셨다. 잠언 8,22은 흔히 “주님께서 나를 낳으셨다”(NABRE) 또는 “주님께서 나를 창조하셨다”(NRSV)라고 번역되는데, 여기 쓰인 히브리어 동사 카나qāā는 보통 ‘얻다’를 의미한다(역자주: 《성경》에서는 “지으셨다”). 잠언의 그리스어 번역은 명백하게 ‘창조되었다’는 뜻이며, 하느님이 지혜를 창조하셨다는 생각은 집회서와 지혜서에서도 전제되었다. 그러나 잠언에서도 그렇겠지만, 욥기에서 지혜는 창조되지 않은 것, 하느님이 발견하고 아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