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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성기음반 문화사

한국 유성기음반 문화사

배연형 (지은이)
  |  
지성사
2019-06-28
  |  
1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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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성기음반 문화사

책 정보

· 제목 : 한국 유성기음반 문화사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음악 > 음악이론/음악사
· ISBN : 9788978894173
· 쪽수 : 872쪽

책 소개

한국 유성기음반의 전모를 담고 있다. 객관적인 자료, 철저한 고증, 치밀한 해석을 통해 저자는 유성기음반의 문헌학적 해석이라는 새로운 영토를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40년에 걸친 저자의 음반 수집 경험과 집념으로 이룬 방대한 유성기음반의 세계가 오롯이 담겨 있다.

목차

서문/ 감사의 말씀/ 일러두기

제1부 한국 유성기음반의 역사
제1장 녹음의 역사와 유성기의 탄생
1. 기록의 발명/ 2. 소리의 기록/ 3. 유성기, 태엽을 감고 나팔을 달다/ 4. 유성기, 유행을 팔며 대중시대를 열다/
5. 유성기, 동아시아 시장을 열다
제2장 한국의 근대문화 환경과 유성기음반의 전래
1. 유성기의 전래/ 2. 근대 공연문화의 발달과 유성기의 유통/ 3. 삼광당-미국 콜럼비아의 한국 첫 음반 취입/
4. 미국 빅타의 한국 진출/ 5. 미국 콜럼비아와 빅타 음반의 유통
제3장 유성기가 만들어낸 근대적 현상
1. 공연 문화의 발달과 사회적 인식/ 2. 유성기 이미지의 형성과 문예적 표현/ 3. 유성기에 대한 과학적 인식/
4. 유성기, 계몽의 나팔을 불다/ 5. 유세(遊說)가 유성(留聲)인가, 유성이 유세인가?/ 6. 유성기를 경품으로 걸다
제4장 일본축음기상회의 조선 진출
1. 1910년대 초반의 유성기 판매/ 2. 일본축음기상회의 조선지점 개점/ 3. 일본축음기상회의 1차 한국음반 녹음/
4. 일본축음기상회의 영업과 전략/ 5. 1913년 일본축음기상회의 2차 한국음반 녹음/ 6. 일축의 녹음 공백기/
7. 미국 빅타의 2차 녹음
제5장 일축·일동 양사 체제의 등장과 1920년대 음반시장의 전개
1. 1923년 일본축음기상회의 3차 한국음반 녹음/ 2. 일본축음기상회의 4차 녹음 일츅죠션소리반/
3. 내외축음기(內外蓄音器)의 조선진출 시도/ 4. 일동축음기 주식회사의 제비표 조선레코드의 등장/
5. 합동축음기 주식회사 비행기표 조선소리판
제6장 전기녹음 시대와 유성기의 전성기
1. 일본 빅타 레코드의 한국시장 진출/ 2. 일본 콜럼비아 레코드/ 3. 시에론 레코드/ 4. 포리돌 레코드/
5. 태평 레코드/ 6. 오케 레코드/ 7. 군소회사 음반

제2부 유성기음반과 사회
제1장 유성기음반의 기획과 제작
1. 초기 음반의 기획과 제작/ 2. 한국인 기획자의 등장과 문예부장의 시대
제2장 유성기음반과 일상
1. 유성기음반이 낳은 사회적 역기능/ 2. 음반 기획과 판매 사업/ 3. 유성기 기계에 대한 이해와 상식
제3장 일제하의 음반 검열
1. 레코드의 취체, 단속과 압수에서 가두연주금지까지/ 2. 압수된 음반, 금지된 노래

제3부 유성기음반 시대의 음악
제1장 유성기음반의 분류
1. 유성기음반의 분류 방법과 내용
제2장 서울소리와 평양소리, 가사와 잡가
제3장 판소리와 창극, 가야금병창
1. 판소리의 근대적 변화와 음반 녹음/ 2. 새로운 도전, 창극 음반/ 3. 새 시대의 꽃, 가야금병창
제4장 창가, 새 시대를 노래함
1. 개화기 창가의 등장/ 2. 창가를 넘어 유행가로
제5장 유성기음반 연구의 과제와 활용

부록 유성기음반 발매와 가격변동 일람표
유성기음반 잡지(雜識)
참고문헌
찾아보기
부록 음반 수록 곡목

저자소개

배연형 (지은이)    정보 더보기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했으며, 「최치원의 사산비명의 문학적 고구(考究)」로 석사학위를, 「판소리 소리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부터 판소리 고음반을 수집하기 시작하여 다수의 희귀음반을 발굴했고, 유성기음반 연구가로서 고음반의 문헌학적 연구를 개척하여 학문적 토대를 마련했다. 「판소리 5명창」(1LP, 1988)과 「여명의 노래」(1CD, 1991) 등 다수의 복각음반을 제작하여 유성기음반의 중요성을 재인식시켰다. 1989년에 한국고음반연구회(회장 이보형)를 창립하여 유성기음반 전시회.학술대회를 주관하였고, 논문집 『한국음반학』 창간(1991)의 실무를 맡아 유성기음반의 학술적 연구 기반을 마련했다. 『한국유성기음반총목록』(1998)과 『한국 유성기음반』(2011)을 집필하였고,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한국 유성기음반 데이터베이스’(2011)를 구축하여 유성기음반 정보를 집대성했다. ( http://www.78archive.co.kr/v2/ ) 혜원여고.휘경여중 교사,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 부교수를 역임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고려대학교.연세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다. 난계악학공로상(2003), 판소리학술상(2005)을 수상했고, KBS 1FM의 ‘국악의 향연(판소리)’과 국악방송국의 ‘국악특강’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국의 소리, 세상을 깨우다』(2007) 등 여러 저서가 있고, 판소리와 유성기음반에 관한 논문 80여 편을 발표했다. 판소리학회장을 역임했고, 소리여세.선영악회 등 판소리 연구 모임 활동을 통해 전승이 끊어진 판소리 복원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펼치기

책속에서

▶ “카루소가 유성기를 낳았는가, 아니면 유성기가 카루소를 낳았는가?”
유성기음반에 새로운 지평을 연 사람으로는 프레드릭 가이스버그(Frederick Gaisberg, 1873~1951)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독일계 미국인으로 피아노를 잘 쳐서 16세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콜럼비아 실린더 레코드에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었다. 20세가 되던 1893년, 가이스버그는 베를리너의 그라모폰 사에서 일자리를 얻었는데, 피아노 반주는 물론 가수들을 섭외하는 일에도 능력을 발휘하였다. 1898년 런던에 그라모폰 지사가 설립되자 그는 영국 지사로 파견되면서 능력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1902년 4월 11일, 가이스버그는 마침내 이태리 밀라노에서 테너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를 나팔 앞에 세워 오페라 아리아 10곡을 녹음하였다. 그는 당시 오페라 계에서 떠오르는 샛별이었다. 카루소를 설득하는 데 들인 돈은 100파운드로 당시로는 거금이었다. 그들은 29세 동갑내기였는데, 카루소는 장난삼아 한나절 취입으로 거금을 챙겼고, 직감적으로 카루소의 노래가 지닌 상업성을 간파한 가이스버그는 본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모한 녹음을 감행했다. 카루소의 음반은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뒤 그라모폰-빅터 사는 카루소와 전속 계약으로 거금을 벌었고, 카루소 또한 음반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혜성처럼 등장하였다. 카루소의 음반은 장난감 유성기를 음악 감상의 매체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카루소가 유성기를 재탄생시켰다고도 한다.


▶ 조선의 유성기집 영업 시작
유성기가 조선의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때는 1899(광무3)년 3월이었다. 당시 『황성신문』 『독립신문』 『제국신문』 등에는 유성기 소리를 들려주고 돈을 받는 집의 광고가 대대적으로 실리면서 유성기는 온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유성기집을 차려 입장료를 받는 사업은 에디슨 유성기 초기 시절부터 있던 형태였으며, 유성기가 도입되던 초기에 일본에서도 유행했다. 고가의 유성기를 구매할 능력이 없는 대중에게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구경산업’이었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요지경이나 활동사진 감상도 같은 종류이며, 근대적인 흥행산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1899년 3월 서울에서 유성기집[留聲機 處所]을 차린 곳은 다음과 같다.
<광고>
◎ 서양 격치가(格致家)에서 발명한 유성기를 매래하야 서서(西署) 봉상시(奉常司) 전 113통 9호에
치(置)하얐는데, 기중으로 가적생슬(歌笛笙瑟) 성이 운기(運機)하는 대로 출하야 완연히 연극장과 여
(如)하니, 첨군자는 해처(該處)로 내림 완상하시오.
_『황성신문』 1899. 3. 10. 1.


▶ 1906년 『만세보』 독자 투고란
1906년 『만세보』 독자 투고란에는 한편의 시가 실려 있다. 국운이 쇠잔해 가도 북촌 양반들은 여전히 태평가를 부르고 있고, 오히려 서민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나라 걱정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극장공연은 인기를 끌면서 대중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협률사 극장이 재개관하던 1906년 서울의 풍경이었다.
1910년 이전에 서울에는 벌써 10여 곳의 극장이 설립되었다. 서울은 서서히 근대 도시로 변모해갔고, 대중적인 문화현상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협률사가 재개관하자 대중은 환호했지만 언론에서는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언론의 시각은 곧 지식인의 시각이었다.

매일 풍악이 하늘을 울리며, 고운 기생이 달 같고 광대가 구름 같아 한바탕 풍류 판을 마련하니 어린 자제들이 심지가 들뜨고 이목이 황홀하야 황금을 아끼지 않고 청춘을 허송하야 가산탕진은 오히려 말할 것도 없고 만사 하는 일이 이로부터 허물어지기로 부형들의 개탄 걱정하는 소리가 장안 가득히 비등함이 두 번째요.
_『대한매일신보』 1906.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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