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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79734850
· 쪽수 : 188쪽
· 출판일 : 2018-08-2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그 여자
그 여자
주례, 반성문을 읽다
고전에 살고지고
낙옆 한 잎
흘러간다
오늘은
별명아, 게 섰거라
꿈속에 잠든 꿈을 깨우다
11월
제2부 고독은 힘이다
고독은 힘이다
언약이라는 것
누가 나와 함께 살고 있나
숨바꼭질
커피칸타타
자유인, 조르바의 질문
디지털 문화의 역설
감은사지 쌍탑에 들다
수필이 그린 선서화
제3부 버킷리스트여행
버킷리스트여행
무덤 앞에서
살암시민 살아진다
곶자왈의 붉은 바람
돌담길 아다지오
쉼표 찍던 날
세월을 읽다
다테야마 분화구에서
몸이 현재다
제4부 노년의 길
노년의 길 (1)- 늙는다는 것
노년의 길 (2)- 나이야, 와라
노년의 길 (3)- 노인들의 파업
노년의 길 (4)- 친구야
노년의 길 (5)- 러브레터
노년의 길 (6)- 내 마음은 분홍분홍
노년의 길 (7)- 자유 노인을 보다
노년의 길 (8)-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노년의 길 (9)- 마이 웨이
제5부 나의 수필노트
나의 수필노트
저자소개
책속에서
수국 잎사귀에 박힌 여름의 주근깨를 닦아주던 구월 어느날. 그녀에게서 E여대 전국 고등학교 문학공모 입상작품집 한 권이 우리 교실로 날아들었다. 들국화 꽃잎이 끼어있는 페이지에 그녀의 시조 장원 작품이 실려 있었다. “가스나, 글 되게 잘 쓴다야.” 친구들의 부러운 목소리가 계속 내 귀청으로 오르내렸다. 주눅이 든 나도 그녀의 삼행시를 옹알거리며 그녀의 햇살을 가슴으로 분지르고 있었다.
가을 숲길을 거닐며 사랑앓이를 하던 여인이 히아신스부케를 든 화사한 모습이 보이는 듯하여 눈을 감는다. 그녀와 같은 세상에 있기를 바라는 부질없는 소망을 담은 답장을 썼다가 찢어 버린다. 그녀의 기쁨이 붉어서 가을이 왔고, 그 가을 속에 뒤척이다 단풍이 되고, 해변으로 밀려난 해초냄새를 피워 올리고 있다는 답장을 밀봉해 버린다.
그리움이 눈이 되어 한라산에 깊게 쌓이고, 견디기 어려웠던 겨울의 적요가 새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녀의 편지는 나와 친구들의 연민을 붙들고 오래된 추억이 되고 있었다. 사계절을 뒤로 하고, 나도 친구들도, 그녀도 햇병아리 선생이 되어 흩어졌다. 그렇게 게시판의 연가는 끝나버렸다.
-[그 여자] 중에서
희뿌연 아침햇살이 서재의 책들을 깨운다.
영락없이 북큐레이터가 된 나는 가을 단풍숲을 이루고 있는 책들의 사열을 받으며, 하나 하나 눈으로 답례한다. 내 마음을 무겁게 하며 오랜 세월 고풍스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 맨 윗단의 책들을 본다. 남루한 책장을 넘겨본다. 차렷자세로 쓰여진 문장들이 낯설다. 세상의 속진을 멀리 해 온 고전들. 내가 목숨을 키우고 세월을 사른 흔적이 배인 노자, 장자의 화기가 나를 찌른다.
아둔한 머리를 쥐어 짜며 읽었던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앙드레 말로의 ??희망??도 보인다. 망각에서 환생한 책갈피의 깊은 숨소리, 나의 무지가 오래도록 뒤척이며 악몽을 꾼다. 아서라, 엉거주춤 지낸 세월의 상념을 훌훌 털어내라고 타이른다.
지금도 꺼지지 않는 호롱불로 남아 있는 책들 틈에 ‘메멘토 모리’와 관련된 생사불이의 책에 귀를 대면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가 서걱거리는 듯도 하다. 메멘토 모리를 달래기라도 하듯 오늘을 즐기라는 카르페디엠 책들 틈새에서 이무지치가 연주하는 실내악곡이 삶과 죽음의 조화를 이루어 내는 듯도 하다. 수많은 고전의 저자들이 자신의 음색에 맞는 악기를 들고 나와 연주한다면 질곡의 삶이 몰아치면서도 조화를 뿜어내는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매력에 빠질 것 같은 환상에 젖는다.
-[고전에 살고지고]중에서
게시판 속의 여인이 걸어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