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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79735338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0-10-3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출항
안전사고
대권항해
앨버트로스
남빙양수렴대
드레이크해협
케이프 호너
웨들 해
유빙의 왕국
시투
남극이빨고기
어장이동
선상살인
만선
황천피항
징조
백야의 밤
에필로그
작품해설_하상일
모험과 욕망, 죽음과 생명의 아이러니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피라니어(Piranha)란 이름을 아십니까?
아마존 강에 떼 지어 서식하면서 사람이든 가축이든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육식성 물고기며 한 치의 동점심도 없는 포악한 물고기라고요?
맞습니다. 피라니어는 식성이 탐욕스러운 탓에 카피바라(Capybara) 한 마리쯤은 몇 분 사이에 털 한 가닥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치운다고 합니다. 공포라는 단어를 실감케 하는 그 이름 자체가 바로 공포인 악명 높은 물고기입니다. 악마의 망토를 두른 듯 몸뚱이 전체가 검은 비늘로 덮여 있고 여기저기 빙산이 난파의 대명사처럼 떠다니는 남극해에서만 사는 물고기입니다.
아마존의 민물고기 피라니어는 이렇게 오래토록 공포의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다른 놈들이 가로챘다고 합니다. 낯선 인상의 놈들이 왜 최근에서야 두각을 나타내었느냐고 물으십니까? 그건 인간의 영향력을 벗어나 바람과 파도의 힘에 좌우되는 바다에서 놈들의 존재가 확인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놈들의 배를 가르고 보니 방금 잡아먹은 것으로 보이는 갑각류를 비롯하여 대왕오징어 다리의 빨판 조각들이 소화액으로 흐물거렸다고 합니다. 대왕오징어는 먹이사슬에서 최상층에 있는 말향고래도 공격하는 놈들입니다. 그런 대왕오징어의 한쪽 다리를 먹거리로 즐겼던 것이죠. 두말할 것도 없이 포악함을 증명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특성이라면, 심해어답게 정수리에 나란히 붙은 두 개의 눈알이 보름달 같이 크다는 것과 양 턱 안에는 견치가 마치 악어 이빨처럼 빼곡히 박혀 있는 모습인데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아날 지경입니다. 그러니 피라니어처럼 놈들도 상어건 고래건 습격을 가리지 않을 건 틀림없지 않습니까?
이놈들을 발견하게 된 일 또한 특이하다 할 수 있습니다.
수십 년 전 어느 날, 칠레의 어선 한 척이 참다랑어 시험조업 차 남위 60도에 해당하는 남극대륙 인근의 웨들 해에서 주낙(long line)을 드리웠습니다. ‘바스코 다 가마’나 ‘마젤란’ 같은 바다의 영웅들조차 남위 40도선을 한계선으로 여기고 항해하기를 꺼렸습니다. 그런데 연안의 어자원이 고갈되었습니다. 칠레의 뱃사람들은 굶주렸고 목숨을 잇기 위해 남극해로 조업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블리자드 눈 폭풍이 몰아치고 유빙과 때로는 산더미 같은 파도가 몰려오는 웨들 해까지 출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모험이자 도전이었지만 죽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연승을 투승하자마자 바람과 파도가 휘몰아쳐 왔습니다. 떠내려 온 빙산에 깔려 부이가 가라앉는 불행으로 낚시의 대부분이 물속 깊이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어선에서 어구는 전쟁터로 나서는 병사의 총과 같은 생명입니다. 뱃사람들은 빙산이 지나가자 조류가 약해지고 부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부이가 떠올랐습니다. 뱃사람들이 죽을 고생을 하며 연승을 끌어올렸는데, 건져 올린 낚시에는 놀랍게도 처음 보는 물고기가 올라왔습니다.
“기가 막히는군!”
기괴하게 생긴 놈들의 모습에 모두들 겁을 냈습니다. 그러나 호기심을 숨기지 못한 갑판장이 배를 가르고 토막 낸 살점을 씹어보았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혓바닥에 착 달라붙는 식감이 살점을 삼키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고소하게 감돌아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그 뿐인 줄 아십니까? 토막 낸 스테이크는 어떠했는지 아십니까? 지금까지 최고의 입맛으로 치던 쇠고기 안심이나 고래의 오베기는 저리가라였다고 합니다.
그 뒤로 칠레의 뱃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웨들 해로 출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놈들을 노렸습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참다랑어연승과는 다른 어법이 탄생했던 겁니다. 심해저연승이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웨들 해가 어장이었지만 점차 어장이 멀어져서 현재는 로스 해가 주어장이 되었습니다.
놈들을 시장에 선보였더니 식도락가들의 시선이 집중했습니다. 단숨에 지구상 최고의 기호식품으로 떠올랐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름도 붙었습니다. 칠레의 뱃사람들은 대항해 시대의 개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존재를 과시하는 방법으로 ‘칠레바다농어’라 불렀습니다. 분류학적으로 농어와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뒤에 가담한 스페인어부들이 거무튀튀한 피부를 보고는 검다는 뜻의 ‘메를루자 네그라’라 했습니다. 그것을 일본 사람들이 ‘메로’라 부르면서 고급식당 메뉴판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놈들은 체장이 2미터가 넘어 괴물로까지 성장하는데 유럽에서는 ‘파타고니아이빨고기’라 합니다. 최근 우리 식탁에도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요리사들도 ‘메로’라고 하나, 학계에서는 ‘이빨고기’로 부르고 있습니다.
남극해에서 남극수렴대에 이르는 심해어족인 놈들이 남미 끝단인 파타고니아에만 서식할 리가 없지만 무슨 연유에서 그 같은 이름이 붙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아, 남극해는 알겠는데 남극수렴대는 모르겠다고요? 그럼 간단히 말씀드리죠. 남극수렴대란 온도와 염분 같은 물리적 특성이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남극해 바닷물이 만나는 경계입니다. 대략 남위 50도에서 60도 사이를 불규칙하게 오르내리는 바닷물 덩어리를 말합니다. 그건 그렇고 파타고니아라는 곳이 칠레 땅도 아닌 아르헨티나 영토가 분명하니 이 역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합니다. 아마도 난생 처음 보는 놈들이 한순간에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자 남미 여러 나라들이 앞다투어 자기나라의 지명을 갖다 붙인 결과로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사실 이빨고기는 두 종이 있습니다. ‘파타고니아이빨고기’와 ‘남극이빨고기’로 분류하는데 어장이 확대되며 남극의 여러 곳으로 출어하던 뱃사람들은 두 종의 미세한 차이를 알게 되었던 거죠. 파타고니아이빨고기는 앞이빨이 크며 몸체에 있는 옆선이 가슴지느러미에서 꼬리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남극이빨고기는 앞이빨이 파타고니아이빨고기에 비해 작으며 몸체의 옆줄도 꼬리지느러미 부근에만 있습니다. 남극해에서 잡히는 놈들을 남극이빨고기라 하고 남극수렴대에서 잡히는 놈들은 파타고니아이빨고기라고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놈들의 값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유럽인들에게 1톤에 미화 30,000불 이상으로 판매된다고 하니, 일본인들이 최고의 횟감으로 치는 참다랑어만큼이나 비싼 값입니다. 가령 쇠고기보다 비싼 것이 참다랑어라면 그에 못지않은 물고기가 바로 이빨고기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젖소를 방목하여 키우는 것보다 참다랑어잡이가 진취적이고, 그보다 아예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더 모험적인 게 남극이빨고기잡이인 것입니다. 게다가 맛과 영양이 참다랑어를 뺨치고 있다면 어느 미식가인들 값을 따지겠습니까? 이상도 하지요. 최고급 물고기일수록 파도와 날씨가 험악한 바다에서만 어획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놈들을, 이빨고기, 남극이빨고기를 잡으러 떠납니다. 바닷물의 평균 온도가 영하에서 맴돌고 빙산이 죽음의 뿔처럼 떠다니는 지옥의 문턱 남극해로 말입니다.
- 프롤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