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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동화/명작/고전 > 국내창작동화
· ISBN : 9788980408696
· 쪽수 : 208쪽
책 소개
목차
1. 나빠진 눈 8
2. 눈알 아홉 개 16
3. 천장에 생긴 틈 26
4. 똘망똘망 왕국으로 40
5. 인연의 끈이 닿는 곳 52
6. 빙그레 씨의 웃음 공장 68
7. 디제이 스타카토 88
8. 스토리 그룹 대표 이사 할아버지 110
9. 장미향 아줌마의 향수 가게 128
10. 드디어 만난 인연의 끈 주인공 148
11. 탈출, 영혼 마을 166
12. 다시 만난 안경원 누나 194
13. 또 다른 눈으로 204
리뷰
책속에서
인연의 끈은 아직도 저 멀리까지 한참이나 늘어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방에서 초코바 한 개와 생수병을 꺼내 들고 길가에 앉았다.
“꼬르륵, 꼬르륵.”
배 속에서 아우성을 쳐 댔다. 바로 그때,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와 함께 아지랑이처럼 가늘고 긴 줄 세 개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어, 이게 뭐지?”
“에그, 쯧쯧. 이렇게 뭘 몰라서야. 넌 아직도 한참 배워야겠구나. 그건 허기 삼 형제잖아.”
슈퍼 박테리아가 귓속에서 빠져나오며 말했다.
“허기 삼 형제?”
“그래, 배부를 때는 배 속이 꽉 차 있으니까 옴짝달싹 못하고 구석에 쪼그리고 있다가 배 속이 텅 비면 그 틈으로 빠져나와 꼬르륵대는 허기 삼 형제 말이야.”
“정말 신기한데?”
“촌스럽긴. 여긴 똘망똘망 왕국이라고.”
허기 삼 형제가 내 배 위에서 꼬르륵, 꼬로록, 꼬륵꼬륵 소리를 반복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흥이 나질 않았다. 허기 삼 형제의 춤은 너무 느린 데다 흐느적흐느적 비틀비틀했기 때문이다.
“거기 있는 초코바, 설마 혼자서 다 먹을 건 아니지?”
슈퍼 박테리아가 배가 고픈 듯 입맛을 다시며 초코바를 쳐다보았다.
“너에게도 나눠 줄게.”
“좋아, 그런데 넌 아직 어린애니까 3분의 1만 먹어도 충분하겠지? 난 거대 슈퍼 박테리아라서 3분의 2는 먹어야 하거든.”
‘쳇, 욕심쟁이. 먹지도 못할 거면서.’
나는 은근히 약이 올라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뭐? 내가 욕심쟁이라고?”
갑자기 슈퍼 박테리아가 벌컥 화를 냈다.
“어, 내가 속으로 말한 걸 어떻게 알았어?”
슈퍼 박테리아가 독심술이라도 부리는 걸까? 나는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흥, 뒤 좀 보시지.”
나는 슈퍼 박테리아가 시키는 대로 뒤를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내 등 뒤에는 만화책에서나 볼 법한 동그란 생각 풍선이 매달려 있었고, 그 안에는 ‘쳇, 욕심쟁이. 먹지도 못할 거면서.’라는 잿빛 글자가 또렷이 쓰여 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 글자는 점차 희미해지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똘망똘망 왕국에서는 절대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 속으로 하는 말도 누구든 다 볼 수 있어.”
“미, 미안해.”(중략)
흙길을 계속 따라가다 보니 막다른 길목에 빛바랜 초록색 3층 건물이 나타났다. 건물은 서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괴상한 모습이었다. 3층은 평범한 사각형 모양이고, 2층은 바람 빠진 공처럼 쭈글쭈글한 모양이었다. 그런 데다 제일 아래층은 삼각형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양이었는데, 꼭짓점 부분이 땅에 아슬아슬하게 박혀 있어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옆으로 휙 넘어갈 것 같았다.
건물 맨 꼭대기에는 빨간색 간판이 붙어 있었고 거기엔 삐뚤삐뚤한 글씨로 ‘웃음 공장’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가만, 웃음 공장이라고? 저런 공장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들어가 보자.”
슈퍼 박테리아가 내 귓구멍 속에서 속삭였다.
“들어가도 괜찮은 곳일까?”
나는 어쩐지 웃음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저렇게 이상하게 생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영원히 나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뭐 어때? 어차피 인연의 끈도 공장 문틈으로 이어져 있잖아. 건물 안에 네 인연이 있을지 알아?”
나는 하는 수 없이 조심스레 건물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
에는 어른 손바닥 크기만 한 스마일 마크 두 개가 붙어 있었다. 하나는 노란색 얼굴에 검정 테두리가 있는 흔한 스마일 마크였지만 다른 하나는 좀 달랐다. 분명히 웃고 있기는 한데 왠지 뭔가를 비웃는 듯한 기분 나쁜 미소의 스마일 마크였다.
나는 환하게 웃고 있는 쪽의 스마일 마크 위를 탕탕 소리 나게 두드렸다.
“안에 누구 있어요?”
그러나 안은 조용했다.
“다시 한 번 두드려 봐.”
슈퍼 박테리아가 재촉했다.
나는 더 크게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안에 누…….”
“거 참,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하는 거야?”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빠끔 열리더니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 남자 목소리엔 분명히 짜증이 실려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너무 크게 웃어서 검지 두 개를 입에 넣고 양 끝을 살짝만 더 당기면 입꼬리가 귀까지 닿을 것 같았다. 남자의 미소는 고르고 반짝이는 치아와 잘 어울려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소란 이런 거구나.’ 하고 생각되는 미소였다.
남자의 얼굴은 우리 아빠보다 한참 젊어 보였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져 둥근 머리 모양이 훤하게 드러났다. 키는 나보다 약간 큰 편으로, 어른 치고는 꽤 작은 데다 피에로 같은 빨간 물방울무늬 옷을 입고 있었다. 한마디로, 아름다운 미소와 어릿광대 같은 요란한 옷차림을 한 별난 남자였다.
“저, 전 남혜안이라고 하는데, 인연의 끈이 이 건물 안으로 이어져 있어서…….”
긴장한 탓인지 말이 더듬더듬 나왔다.
“이 끈 말이냐?”
남자가 인연의 끈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인연의 끈을 방해해선 안 되니까. 안으로 들어오려무나.”
“고맙습니다.”
나는 남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안으로는 길고 어두운 복도가 쭉 이어져 있었다.
“내가 초대한 손님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 공장에 왔으니 소개 정도는 하는 게 예의겠지. 흠, 흠. 난 이 웃음 공장 사장 ‘빙그레 썩소’라고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