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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한일 외교사 수업

어린이를 위한 한일 외교사 수업

박영수 (지은이), 김상인 (그림)
풀과바람(영교출판)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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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한일 외교사 수업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어린이를 위한 한일 외교사 수업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초등 한국사
· ISBN : 9788983895028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12-09-19

책 소개

우리 문화역사 시리즈 7권. 2000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와 일본이 교류한 역사속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일들을 알기 쉽게 쓴 책이다. 일본과의 정치.사회.문화의 교류와 외교 역사만을 모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목차

1. 사국 시대
·고인돌과 옹관을 통해 본 한국 일본의 고대 관계
·가야에 갑옷 입은 여성 전사가 있었던 까닭
·칠지도를 통해 본 백제와 왜국의 관계
·우리나라 금동 반가 사유상과 일본 목조 반가 사유상
·일본에서 신이 된 백제 국왕들
·장보고가 일본에서 재물신이 된 연유

2. 고려 시대
·고려 국왕이 일본의 진상품을 직접 받지 않은 까닭
·고려 불화가 일본에 많이 있는 연유
·1223년에 왜구 처음으로 고려 침략하다
·1274년 고려·몽골 연합군, 일본 정벌 시도
·연합군 2차 공격이 일본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다
·14세기 고려가 왜구 노략질에 적극 대응 못 한 이유

3. 조선 시대
·대마도는 우리나라 땅이었다!
·조선 정부와 일본 막부가 외교 관계를 맺게 된 계기
·조선 정부가 왜인에게 벼슬을 내린 까닭
·조선 정부는 어째서 왜인을 위한 건물을 지었을까?
·1419년 조선이 대마도를 정벌한 진짜 이유
·1471년 신숙주 최초 일본 연구서《해동제국기》펴내다
·15세기에 무명과 구리를 주고받은 까닭
·왜인들은 어찌하여 삼포 왜란을 일으켰나?
·일본 다도 문화에 왜 조선 막사발이 등장했을까?
·7년 전쟁과 섬뜩한 승전 상징 기념물, 코 무덤
·왜란이 의병 정신을 일깨우다
·퇴계 이황의 학문이 일본 유학을 일으키다
·일본 도자기의 시조 이삼평과 심수관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과 도고 제독의‘T’자 타법
·조선이 기유약조를 체결하기까지의 과정
·조선 통신사 납시오!
·일본에 전해진 최초의 연예 한류, 마상재
·전쟁 끝난 후 국교 회복이 되자마자 들어온 담배
·여러 가지로 조선인을 매료시킨 고추
·조선 인삼이 만든 일본 은화 인삼대왕고은
·부산 발전의 숨은 배경, 초량 왜관
·통신사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가져오다
·김홍도 비밀 정보원으로 대마도 잠입하다
·요시다 쇼인, 탐욕스러운‘정한론’을 주창하다
·일본에 왕정복고 쿠데타 일어나다
·흥선 대원군은 어째서 일본 국서를 거절했을까?
·1875년 일본 군함이 강화도에 나타난 이유
·강화도 조약으로 불리는‘조일 수호 조규’의 의미
·신사 유람단은 어떤 일을 했나?
·태극기는 누가, 언제 만들었을까?
·역사 왜곡의 본격적 출발, 임나일본부설
·광개토 태왕비문 조작 사건
·김옥균, 울릉도에 사람들을 옮겨 살게 하다
·후쿠자와‘탈아론’을 주창하며 조선 침략을 선동하다
·한 나라 왕비를 무참히 죽인 일본의 만행

4. 일제 시대
·고려청자가 일본에 많이 남아 있는 까닭
·일본이 우리 땅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주다
·가야 시대 유물들은 어디로 갔을까?
·총독부, '사찰령'으로 한국 불교를 타락시키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신파극 유행
·복덩이 호박이 못생긴 얼굴 상징으로 바뀐 사연
·일제가 땅에 쇠 말뚝을 박은 진짜 의도
·식민지 여성을 착취한 일본의 위안부 정책
·무장 독립군과 광복군 투쟁
·731부대와 마루타 그리고 윤동주
·일본식 성씨를 강요한 창씨개명 시행하다
·아름다운 다자와 호 속에 담긴 조선인 핏물
·강제 징용과 탄광 중노동
·군용 비행장과 우토로 마을, 남겨진 자의 슬픔
·일제가 없앤 것과 가져간 것
·일제가 남긴 못된 악습
·일본이 독도를 탐내는 속뜻

저자소개

박영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테마역사문화연구원장. 역사를 전공한 학창 시절부터 거시사보다 미시사에 관심 갖고, 일생 연구할 주제 100가지를 선정한 후 지금까지 탐험하고 있다. 또 단어 어원과 문화관습 유래 찾기를 필생의 목표로 삼아 꾸준히 근원을 추적하고 있으며, 아울러 유명인의 인간적인 면모도 살펴보고 있다. 펴낸 책으로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의 세계사》, 《세상을 읽어내는 기호 이야기》, 《우리말 어휘력 사전》, 《우아한 단어 품격있는 말》, 《지도 없이 떠나는 101일간의 세계 문화 역사》(전 20권) 등이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역사야담'도 운영하고 있다. 유튜브 역사야담 youtube.com/@history-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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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인 (그림)    정보 더보기
경희대학교 미술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했습니다. 어른들이 보는 책에 삽화를 주로 지금은 어린이 책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그린 책으로는《우리나라 별별마을》, 《어느 날, 하느님이 내게서 사라졌다》, 《바른 우리말 사용 설명서》《수학일기 쓰기》, 《제인구달 이야기》, 《관찰왕》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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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김홍도 비밀 정보원으로 대마도 잠입하다

“막중한 일이니 잘 수행하도록 하라.”
“알겠사옵니다.”
1789년(정조 13)에 김홍도는 김응환과 함께 대마도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정조 임금이 화가 김응환과 김홍도에게 대마도 지도를 그려 오라고 명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한 해 전인 1788년에 왕명을 받고 금강산 일대를 돌아본 후 수십 장 그림으로 그려 보고한 바 있습니다. 이때 김홍도와 김응환이 각기 그린 금강산 그림은 매우 사실적이어서 정조를 만족시켰습니다. 이에 정조는 두 사람이 땅 모양을 잘 파악하고 그대로 표현할 줄 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여 비밀 정보원 지시를 내린 것입니다.
“들키면 큰일이니 정말 조심해야 하네.”
“신중하게 처신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김응환이 부산에서 질병으로 47세 나이에 갑자기 죽었습니다.
김홍도는 당황하지 않고 일단 김응환의 장례를 치른 다음 혼자 대마도로 건너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김홍도는 청각 장애인 흉내를 내며 허름한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면서 대마도 곳곳을 지도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어찌어찌하여 일본 지도를 보고는 뛰어난 눈썰미로 몰래 베껴 그렸습니다. 김홍도는 그것을 가지고 조선으로 돌아와 임금에게 바쳤습니다. 정조가 김홍도를 크게 칭찬했음은 물론입니다.
한편 김홍도는 1794년 조선에서 활동한 흔적이 전혀 없는데, 묘하게도 그때 일본에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라는 화가가 나타나 10개월 동안 천재적인 솜씨를 발휘하고는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이 때문에 김홍도와 샤라쿠를 같은 인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사실 여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군용 비행장과 우토로 마을, 남겨진 자의 슬픔

일제 강점기 일본 군부 세력이 전쟁에 미쳐 날뛸 때 대부분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돈 많이 벌고 편하게 산 경우도 있었으니 바로 일본 군수 산업입니다. 무기를 만드는 기업,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 공장과 기차 연료인 유연탄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매우 손쉽게 돈을 벌었습니다.
“일한 만큼 급료를 많이 줄 테니 일단 열심히 일하시오!”
일본의 미쓰비시, 스미토모, 조세이 탄광, 일본 제철 등은 노동자들의 피땀을 통해 대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노동의 대가가 무척 쌌을 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죽은 수많은 노동자의 품삯마저 부당하게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이들 기업들은 하나같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노임 지불은커녕 반성과 피해 보상을 외면했습니다. 일본 정부 역시 뻔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교토의 우토로 마을은 그걸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1941년, 일본 정부는 교토에 군 비행장을 건설하고자 조선인 노동자들을 모집했습니다. 가난한 조선인 1,300명이 허허벌판의 가건물 숙소에서 지내며 일했습니다. 이들은 일을 모두 마치고 품삯을 한꺼번에 받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 정부와 그 땅의 소유주인 닛산 차체 주식회사(닛산 자동차 계열 회사)로부터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돈이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구나.”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고 한국이 광복됐지만, 우토로의 조선인은 그대로 그곳에 주저앉아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일본 정부의 차별을 감내하며 일본 국적을 거부한 채 지금도 어려운 삶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1988년까지도 수도를 놓아 주지 않아 우물물을 마셨다고 합니다. 1989년에는 그 땅을 인수한 일본 부동산 회사가 마을 사람 전원에게 퇴거 명령을 내리며 소송을 걸었습니다. 강제 징용은 아니었지만 품삯을 받지 못하고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일은 과거이자 현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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