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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사상가/인문학자
· ISBN : 9788984314825
· 쪽수 : 524쪽
· 출판일 : 2011-07-18
책 소개
목차
머리글 _ 진솔함과 자기 과시의 차이
1장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다
가출 / 아버지 야산 이달 선생 / 역사 공부의 밑천이 된 한문을 배우다
2장 고학의 길
소설을 읽으며 꿈꾼 새로운 세상 / 고아원 생활 / 유일학 학력증서, 광주고 졸업장 /
짧은 대학생활 / 고단했던 밥벌이
3장 편집자에서 한국사 집필가로
번듯한 학사과정, 동아일보사 임시직 시절 / 학계에 데뷔하다
4장 대중 속으로 들어간 역사학
일반 독자들이 읽을 역사 글을 쓰다 / 서울대 규장각 시절 / 10·26과 서울의 봄 /
아치울에 정착하다 / 대중들과 함께 호흡한 역사기행·역사강좌
5장 역사문제연구소와 《역사비평》
신군부 독재에 맞선 ‘역사문제연구소’ 발족 / 《역사비평》을 창간하다 / 6월 항쟁 이후의 변화들
6장 한국사의 흔적을 찾아서, 미개척지 중국 답사
한국사의 미개척지, 수교 전인 중국 답사 / 박완서·송우혜 선행과 함께한 두 번째 중국 답사 /
‘조선의용군’의 흔적을 찾아나선 중국 서쪽 답사 / 실록 사건과 세 번째 중국 답사
7장 동학 농민국의 역사를 재조명하다
동학농민전쟁 백주년 기념사업 추진 ‘선봉장’ 맡아 / 동학군을 재조명한 실질적 주역, 향토사학자들 /
동학농민혁명 100돌 사업의 성과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출범
8장 민족, 민중을 중심에 둔 첫 ‘한국사 이야기’
평생의 소원, 한국통사 집필 / 고대사와 고려사를 각 4권으로 출간하다 /
집필의 피로를 덜어준 문밖 나들이 / 10년의 결실, 22권의 한국통사 완간
9장 고구려사 보전과 과거사 청산
고구려사 지키기와 동북공정 / 남북학자들이 함께한 고려사 학술토론 /
과거사 청산의 중심, 민간인 학살 문제 / 과거사 정리법 통과와 한계
10장 역사의 현장에서
통합민주당 공천 심사에 참여하다 / 촛불의 현장에서 /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다 /
압록강·두만강 국경지대 탐방 / 친일 문제와 국치 100년
에필로그 _ 남기고 싶은 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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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가 살아온 나의 얘기를 쓸 적에는 진솔하면서 과장 없이 담아내고 싶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그대로를 ‘리얼’하게 드러내려고 했다는 뜻이다. 내가 평소에 역사인물이 될 만한 인사의 자서전이나 저명인사들이 쓴 살아온 얘기를 읽으면서 자기가 한 일은 모두 정당한 것처럼 서술하거나, 아니면 어떤 사건을 두고는 자기 중심의 서술로 일관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거의 가식과 과장과 허위로 포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또 내가 살아온 시대가 너무나 험악했고 격동의 세월이어서 현장을 통해 내 삶과 사회를 연결하는 사회사적 접근을 시도해보려고도 했다. 내가 겪은 대로 사회의 밑바닥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또 제 혼자만 잘살아보겠다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들의 얘기만이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이나 더불어 나누는 훈훈한 정담도 고루 담아보려고 생각했다. 미시적(微視的) 접근을 시도해 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얘기를 쓰면서 이게 쉽게 되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다. 세상을 자기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냉철한 이성이나 지나친 객관성은 오히려 한 개인의 개성을 흐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
나는 역사의 현장에서 증언자가 되기를 열망했지만 역량이 미치지 못했을 뿐이다. 늙은 나이에 새삼 떠올린 것은 남의 자서전을 읽고 비평하는 것과 내 자신이 쓰고서 내부 검열을 하는 데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8개월 만에 태어났다. 이를테면 팔삭둥이다. 태아 때부터 영양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게다가 미숙아로 세상 빛을 보았으니 정상적인 영아가 아니었다. 가슴과 팔다리는 배배 꼬여 있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태생만이 비정상이 아니라 왼손잡이에다 성장해서도 키는 160센티미터 채 못 되는데다 학교도 정규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생각도 삐딱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태어날 때 나를 받았다는 둘째 형수는 그때 얘기만 나오면 “작고 삐삐 말랐어요”라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아이를 보러 와서는 “그놈 눈 하나는 똘망똘망하네”라고들 했단다. 흔히 하는 귀엽다든지 잘생겼다든지 같은 덕담 대신에 눈만은 총명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때 나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고루한 아버지로부터 벗어나자. 나도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학교를 다니자. 새로운 세상에 나가보자. 바로 이것이었다. ‘도통’을 했다고 소문난 야산 선생, 내 아버지도 아들의 이런 결심은 몰랐을 것이다. ……
나의 가출 동기는 하나 더 있었다. 아버지와 큰어머니는 나를 전혀 서자로 여기지 않고 아들 중의 하나로 여겼다. 그렇지만 내 어머니에게는 달랐다. 형님들은 작은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서모’라 불렀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굳이 그런 호칭을 써야 하는지 불만스러웠다.
또 언제부턴가 내가 거리에 나가거나 남의 집에 가면 “쟤가 머리는 아주 좋은데 서자래”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 가정이나 사회에서 서자 차별 제도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춘기에 접어들자 이런 내 태생에 대한 불만이 가슴속에 저몄다. 나는 그렇게 끝내 가출을 결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