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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유럽사 > 독일/오스트리아사
· ISBN : 9788984989023
· 쪽수 : 480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독일국민은 왜 독재자 히틀러에게 열광했는가
제1부 히틀러, 나치, 독일
이제는 검이 말하게 하라 1919
몽상가, 독학자, 딜레탕트 1889~1914
군대로 도피하다 1914~1919
허풍선이인가 독일의 희망인가 1919~1923
반역 1923.11.9.
물밑작업 1924~1926
변화의 징조 1925~1929
동원 1930~1931
독일이여, 신과 함께 전진하라 1932~1933
제2부 총통과 그의 국민
법과 질서 속에서 혁명을 1933
독일이 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 1933~1934
장검의 밤 1934. 여름
평화라는 이름의 전쟁 1933~1937
전쟁 준비 1937
유화정책과 시간 벌기 1938
유대인 몰이사냥 1938.11.
은폐된 전쟁에서 공공연한 전쟁으로 1938~1939
전쟁을 위한 백지수표 1939
제3부 추락하는 국가
안락사와 신중한 저항 1939~1945
국민과 총통이 함께 승리하다 1940
생존공간 확보를 위한 말살정책 1941~1943
총력전 1943
이탈리아인들의 이성적인 배신 1943~1944
저항은 소용없는 일? 1933~1945
영웅성과 자기 기만 1944.7.20.
민족 대학살 1941~1945
대가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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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독일제국의 몰락은 정치적인 실책의 결과였고, 그 실책은 바로 합리성을 거부한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전쟁에서 패배하자 수많은 독일국민들은 지향점을 상실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망명자 아돌프 히틀러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자신과 조국을 파국으로 이끈 원인을 자신들의 정신자세와 행동에서 찾지 않고 음모 때문이라는 손쉬운 핑계를 끌어대며 안팎의 적들 탓으로 돌렸다. 그 가운데 유대인이 가장 핵심적인 적으로 꼽혔다.
이리하여 독일인과 유대인 사이에 잠재된 갈등은 전쟁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해관계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에 더욱 첨예하게 상충되었다. 독일의 신비주의자들은 ‘유대화한’ 근대적 사고에 전쟁을 선포했고, 히틀러는 그 선봉장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그가 자랑스럽게 내세운 세계관과 유창한 말솜씨와 특유의 행동을 통해 독일에서 역동적인 추종세력을 규합하는 데 성공했다. 10여 년 만에 히틀러는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독일국민과 미래의 총통은 하나의 운명공동체로서 함께 성장한 것이다. 그들은 동일한 가치관과 적개심 그리고 소망에 따라 나아가고 있었다. - p.43~44 '이제는 검(劍)이 말하게 하라 1919' 중에서
이런 연속된 패배도 히틀러에 대한 독일인의 신뢰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1944년 12월에 히틀러가 독일국방군과 친위대에게 가망도 없는 벨기에 해안의 재정복을 위해 아르덴을 침공하라고 명령했을 때, 그런 사실은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드러났다. 독일군은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은 며칠 만에 완강한 벽에 부딪혔다. 적의 목을 부러뜨리겠다는 계획은, 공중을 완전히 장악당한 상태에서 몇 배나 월등한 전력의 연합군 보병부대와 맞부딪힘으로써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무모한 공격으로 히틀러는 마지막으로 멀쩡히 남아 있던 전투부대까지 희생시켰다. 전략적으로 파멸에 가까운 패전에도 불구하고 총통에 대한 병사들의 충성심은 마지막까지 모든 의혹과 의심을 뛰어넘었다. 이른바 ‘조국전선’ 역시 총통에게 마찬가지 충성심을 보여주었다. 독일인들은 총통을 신뢰하는 마음을 일종의 고결함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는 어리석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범죄라고 할 수 있는 태도였다.
이탈리아인들과는 달리 독일인들은 독재자를 몰아내는 일을 감행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끝까지 히틀러를 독재자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 p.413~414 '이탈리아인들의 이성적인 배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