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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여행 > 동남아시아여행 > 동남아시아여행 에세이
· ISBN : 9788985677783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18-06-08
책 소개
목차
머리말•8
프롤로그•12
풍경과 사람_19
풍요의 땅 메콩삼각주•22
나라의 물, 물의 나라•28
수상 시장과 수상 가옥•34
메콩삼각주에서 백산에 오르다•40
메콩강 수도 프놈펜•46
캄보디아의 메콩강•52
고무나무와 커피콩•58
다시 찾은 달랏•64
어촌 마을 탐험•70
어촌 마을의 새벽•78
해안 마을 정경•84
용과 밭을 지나며•87
바닷가의 새벽•93
호숫가 마을•98
삶과 사회_105
오토바이 물결•108
자전거, 오토바이 물결에 합류하다•114
베트남 쌀국수 맛의 비결•120
국경에서 가로막힌 자전거•126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130
해먹카페•136
가촌•141
학교와 등하교길•146
오토바이 세차장•154
베트남어는 쉬우면서 어렵다•158
새해 일출과 설날•162
천막 결혼식장•168
자전거 평화기행단을 만나다•174
여행과 자전거_179
숙소를 잡는 기준•182
좋은 식당을 찾는 방법•186
업힐의 즐거움•194
라오스 푸콘산의 악몽•200
자전거와 바람과 음악•206
호찌민시 뒷골목•211
부록_쿠바 자전거 여행 가이드북_219
자전거 여행자의 천국, 쿠바•222
쿠바의 도로•232
엔진 관리―숙박과 먹거리•244
쿠바 사람들•255
자전거 여행 준비와 비용•266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름다울 미美자를 풀면 “양羊이 크다大”가 된다. 왜 어린 양이 아니라 큰 양이 아름다울까. 양이 크면 살져서 맛있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원초적 정의에 칸트의 주체성 개념과 마르크스의 실천 개념이 녹아 있다. 아름다움은 양이라는 대상 속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맛있다고 느끼는 인간 주체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더 중요한 것은 양이 야생의 노루나 사슴과 달리 목축이라는 인간 노동실천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또한 양이 크면 제사의 희생으로 쓰는 데 유용하고 공동체 사람들이 모두 나누어 먹을 수 있다. 생물학적 욕구를 가진 자연적 존재인 인간은 노동과 사회적 실천을 통해 미적 역량을 가진 사회적 존재가 된다. 요컨대 미美는 인간의 노동과 사회적 실천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간 노동과 사회적 실천이 역사적으로 변천하는 까닭에 미美 또한 역사를 가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노동 분업이 발달하고 사회적 실천이 복잡해짐에 따라 더불어 먹고사는 단순한 즐거움에서 시작한 아름다움의 세계는 듣는 것ㆍ보는 것ㆍ상상하는 것 등으로 그 영역이 나뉘어 다양해졌다. 음악ㆍ미술ㆍ문학에 여러 장르가 있고 각각의 장르에서도 그 폭과 깊이가 다르다. 역사의 전개에 따라 각 예술 영역에서 미적 구조가 축적되어 왔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인간 역사는 지구상의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 전개되어 왔으므로 각 지역의 역사가 서로 다른 미적 구조를 형성해 왔으리라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편적 진리眞를 추구하는 과학은 따지는 것을 그 본령으로 하고, 선善을 실천하고자 하는 윤리의 영역에서는 다툼이 있게 마련이지만 미美의 영역에서는 따지거나 다투는 것이 무의미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의 세계는 인간 역사와 더불어 다양성이 확대되어 왔고 주체의 취향이 중요한 준거가 되는 까닭이다.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름다움에 접근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양성과 차이 그 자체가 아름다움의 원천이 될 때도 있다. 여행이 바로 그런 경우다.
여행은 이중의 의미에서 심미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특정한 목적을 가지는 수단으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나 배낭여행처럼 일반적인 여행에서는 다른 장소의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일차적인 목적이 된다. 여행은 유희 본능을 가진 인간이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인 것이다.
다음으로 여행자들이 다양성과 차이를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여행은 심미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일상에서는 생소한 사물이나 타인을 그냥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다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차이를 수용하는 데는 일정한 이해와 훈련이 필요하다. 반면에 여행에 나서는 사람들은 다양성과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름다움을 깊이 느끼기 위해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한 다음에 떠나기도 한다. 나아가 다양성과 차이를 체험하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기도 한다. 이처럼 여행은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일상의 생각을 바꾸는 까닭에 그 자체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면 여행은 인간의 보편적 욕구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근대 시기에는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여행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엄두조차 내기 힘든 일이었다. 시간과 비용도 문제였지만 결정적인 장애는 이동 수단이었다. 기차와 자동차, 배와 비행기 같은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여행이 대중화되었다. 먼 거리는 비행기나 배를 이용하고 가까운 곳은 기차나 자동차로 이동하면 세계 어디든 가지 못할 곳이 없다. 그런데 이런 편리한 교통수단 대신에 굳이 도보나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기차나 자동차 여행이 점을 잇는 여행이라면 도보나 자전거 여행은 선을 그리는 여행이다. 차를 이용하는 보통의 관광 여행은 관광 명소를 점으로 찍은 다음 다른 점으로 최단 시간에 최단 거리로 이동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목표는 관광 명소점이고 점을 잇는 길선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이에 반해 도보나 자전거 여행에서는 점을 잇는 선길이 더 중요한 목표가 되기도 한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길에서 보고 경험하는 일들은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과 결이 다르다.
길가의 풍경과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서기로는 도보가 자전거보다 한 수 위일 것이다. 하지만 도보의 결정적 약점은 멀리 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먼 곳을 도보만으로 여행하기 힘들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차로 이동하면서 거점에서만 걷는다. 물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길이나 티벳 라싸로 향하는 오체투지와 같은 도보 여행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통상적인 의미의 여행을 넘어 일종의 고행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자전거는 차보다 느리지만 걷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다. 하루에 다섯 시간을 이동한다고 할 때 차로 300Km 정도 가고 도보로 20Km 남짓 걸을 수 있다면 자전거로는 100Km가량을 달릴 수 있다. 자전거는 차보다 세 배 느리지만 걷는 것보다는 다섯 배 빠르다. 목표 지점에 볼거리가 별로 없을 경우, 자전거는 하루에 150Km도 예사로 달린다.
자전거는 여행의 이동 수단이면서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한다. 등산하는 사람들이 높은 산에 오르기 위해 걷기도 하지만 걷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요즈음 높은 산을 오르는 대신 올레길이나 둘레길 걷기가 인기를 끌게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터이다. 자전거 여행에서 라이딩이 더 중요한 목적이 되면 상당한 변화가 일어난다. 길은 이제 더 이상 목표 지점으로 가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다양함을 제공하는 여행의 목적이 된다. 삶에서 목표보다 과정이 중요하듯 자전거 여행에서도 목적지보다는 길이 더 중요한 것이다.
여행에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애로는 피로감일 것이다. 여행 피로는 주로 교통수단에 몸을 싣고 이동하는 데서 비롯한다. 자전거는 라이더의 몸이 가동하는 교통수단이므로 엔진에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에 연료를 공급하고 무리하지 않게 운전하면 엔진이 피로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몸에 음식을 공급하고 적당히 페달을 저으면 자전거 엔진도 지치는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적당한 엔진 가동이 몸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여행자의 몸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최적 상태가 된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행은 대체로 불편함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음식이 맞지 않고 잠자리가 편하지 않은 데다가 차로 이동하는 피로감이 불편함을 가중한다. 자전거는 여행에서 오는 피로감을 물리침으로써 불편함을 극복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자전거 여행에서 음식은 엔진 가동에 필수 불가결한 연료다. 엔진을 가동하기 위해 계속 몸을 움직이는 자전거 여행자는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으므로 현지 음식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다. 굳이 깨끗하고 편한 잠자리를 찾지 않더라도 라이딩 후의 자연적인 피로는 자전거 여행자를 숙면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전거 여행의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