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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0000149
· 쪽수 : 220쪽
· 출판일 : 2003-11-17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젓가락으로 조기를 가리켰다. 사이드 디쉬로 나온 조기였다.
"조기 얼굴이."
"얼굴이 어떤데?"
"피맺힌 눈을 뜨고 입을 벌려 마치 절규하듯 보이잖아. 난 조기만 보면 지옥의 표정을 읽어. 난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표정이 조기 얼굴이라고 생각해. 왜 화가들이나 사진 작가들은 조기를 모델로 쓰지 않을까."
내 말을 듣고 가영은 조기를 이리저리 살폈다.
"마치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 들어간 조기 같아."
가영은 조기의 얼굴에 냅킨을 덮었다. 조기는 작아서 냅킨 하나로 얼굴과 몸통이 다 덮이고 꼬리만 비죽 나왔다. 조기의 죽음. 소주를 한 잔 씩 마신 후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탱고를 보니 미치도록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고 싶어. 거기 허름하고 어두운 카페에서 탱고를 추고 싶어."
"그렇게 가고 싶은데 왜 가보지 않았지?"
"글쎄, 아마 두려워서겠지."
"뭐가?"
"막상 가봤는데 내 느낌과 다르다면 나란 여자의 일부가 사라지는 거잖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가 카페에서 가영이와 멋지게 탱고를 추고 싶어."
"당신도 드디어 탱고를 좋아하게 됐구나."
가영은 허공을 보았다.
"그리고 12시에 카페를 나오면 비가 내리는 거야. 우린 비를 맞으며 탱고를 춰요. 거리엔 붉은 불빛이 가득하지. 거긴 아무것도 없어요. 인민과 정부는 평등하지. 법도, 도덕도, 여자의 정조도, 건전한 삶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그러다 나이를 먹거나 아이를 가지면 어떡할 건데?"
"이봐요, 그런 것까지 다 있지 않다니깐, 비 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가엔. 거긴 탱고밖에 없어요. 거기 있는 사람들이 가진 건 현재뿐이구. 우리는 그 화려한 고독과 해방을 즐기는 거예요."
"난 ...가고 싶지 않아."
"그리고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거기 해산물 시장의 물고기들은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누워 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