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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90496614
· 쪽수 : 464쪽
책 소개
목차
가을에 들어온 소식 / 나라를 도둑질한 임금 / 풍류객 선조 / 붓을 든 자와 칼을 든 자 / 당대 제일의 문장가 / 뱃사람 왕사 / 연회와 체통 / 가짜 시비 / 되살아난 의구심 / 정중한 거절 / 지혜가 샘솟는 인물 / 하늘이 내린 기회 / 천주교도 고니시 / 참화의 기억 / 설화(舌禍) / 딱한 쓰시마 / 끝없는 야망 / 가토 기요마사 / 허무할 수 없는 존재 / 조선을 치는 연습 / 내홍(內訌) / 두 겹의 공포 / 묘안들 / 선비의 나라 / 오지 않는 통신사 / 낙관과 비관 / 주님의 섭리 / 짐승에서 인간으로 / 시의 회오리 / 두 청년 / 저들의 철포 / 승자총통의 사연 / 최후통첩 / 조선 국왕 전하 천세! / 파견의 조건 / 한밤중의 장계 / 불붙은 고자질 / 죽도 선생 정여립 / 남 계룡산 북 구월산 / 드러난 극비문서 / 반역의 파문 / 일본 사신들의 속사정 / 마침내 통신 삼사 / 역적과 적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선조는 넓은 온돌방에 둘러앉은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란 어떤 불한당인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대답하는 사람도 없었다.
“내 생각에는 히데요시란 놈이 요시아키를 죽여 없앤 것 같소."
선조는 한마디 하고 예조판서 정탁(鄭琢)에게 눈길을 돌렸다.
“신의 생각에도 그런가 합니다."
정탁은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한구석에서 흥분한 목소리가 울렸다.
“소 요시시게의 편지에 히데요시의 사신이 이미 쓰시마에 와 있다고 하였습니다. 히데요시는 신하로서 자기 임금을 토벌한 대역 죄인이올시다. 그런 자를 어찌 일본 국왕으로 인정하고 그 사신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일인가 합니다.??
선조는 고개를 끄덕이고 정탁에게 물었다.
“그 다치바나 야스쓰라라는 자는 지금 어디 있소?"
“부산 초량의 왜관(倭館)에서 하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조정의 허락만 내리면 서울에 와서 직접 일본 사정을 말씀드린다고 합니다."
“동래(東萊)에 사람을 보내 부사(府使)에게 이르시오. 야스쓰라를 서울까지 보낼 것은 없고 군신 간의 도리[大義]를 타일러 쫓아 버리되, 히데요시의 사신은 우리 땅에 얼씬도 못한다고 말이오."
“그러면 세종대왕 25년 이후 우리 조선 사람은 아무도 일본에 가본 일이 없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몇 해요?"
“세종대왕 25년은 계해(癸亥)년이온바……."
그는 속으로 계산하고 나서 대답했다.
“금년이 정해(丁亥)년이오니 만으로 1백44년이올시다."
여태까지 별로 생각하지 않았으나 숫자로 따져 놓고 보니 엄청난 세월이었다.
일본은 내란 중이라고 하였다. 내란이 있는 나라에서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내왕하는데 평화로운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왜 한 번도 못 간 것일까.
안된 것은 풍랑과 일본의 내란을 핑계 삼아 일본에는 못 가는 것으로 치부하는 풍조였다. 선조는 심기가 좋지 않았다.
“내 한 가지 모를 것이 있소. 같은 풍랑일 터인데 우리는 무섭고 저들은 안 무섭고,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니오?"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너희들 후추라는 것을 아느냐?"
장내는 조용해지고 악공과 기녀들은 슬금슬금 그의 옆으로 다가앉았다.
후추는 쓰시마 상인들이 바다 저쪽 먼 고장에서 무역해 오는 것으로 백성들은 구경도 못하는 값진 물건이었다. 그들은 침을 삼키고 바라보았다.
“아느냐, 모르느냐?"
“알지요, 왜 몰라요."
술을 따르던 기생이 몸을 비틀고 생긋 웃자 여기저기서 입을 나불거렸다.
“알아요―."
야스히로는 봉지를 뜯고 방 한복판 돗자리 위에 까만 알들을 뿌려 버렸다.
기생과 악공들은 서로 밀고 당기고 훔치고―난장판이 벌어졌다(康廣散胡椒於筵上 妓工爭取之 無復倫次 : 류성룡 《징비록》).
(……) 광화문 앞 예조에서 남산 기슭 동평관까지 오는 동안 가마 속은 조용했다. 아주 곤드레가 된 줄 알았으나 막상 가마에서 내리는 야스히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너희 나라는 망했다!"
초롱불에 비친 야스히로는 정색을 하고 통역을 손가락질했다.
“기강이 이미 무너졌으니 망하지 않고 어쩔 것이냐 말이다(汝國亡矣 紀綱巳슙 不亡何待 : 《징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