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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쟁 3

7년전쟁 3

(조선의 영웅들)

김성한 (지은이)
  |  
산천재
2012-07-09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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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쟁 3

책 정보

· 제목 : 7년전쟁 3 (조선의 영웅들)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90496638
· 쪽수 : 520쪽

책 소개

김성한의 역사 장편소설. 조선과 일본, 명이 뒤엉켜 치렀던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다룬 최초의 역사소설이다. 7년의 기나긴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전쟁 당사국인 세 나라의 상황을 가능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감한다.

목차

전령 / 노장 유극량 / 압록강 너머 퍼진 소문 / 조선에 수군이 있다 / 당신네 임금은 진짜요? / 흥분한 군중 / 평양도 버리고 / 참담한 승리 / 명의 의심 / 압록강의 조각달 / 낡은 문서에서 태어난 배 / 진발(進發)! / 산같이 진중하라 / 이기는 습성 / 판국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 / 근접전의 빛과 그림자 / 이순신 전법 / 선비에서 무인으로 / 종9품 두메산골 수비대장 / 연합함대의 병사들 / 한산도 싸움 / 조선 수군을 피하라 / 온 나라를 뒤덮은 절망 / 곽재우, 의병을 일으키다 / 숲 속의 매복 / 새로운 기운 / 붉은 옷의 조선 장수 / 내분 / 의로운 사람들 / 정인홍 김면 연합부대 / 유능한 장수 김준민 / 경상좌도의 영웅 권응수 / 분수에 맞는 싸움 / 영천성 탈환 / 관군의 개가 / 혼백 되어 저들을 물어뜯으리 / 호남의 스승 고경명 / 무장과 선비의 대결 / 예언자 조헌 / 타고난 장재, 영규 스님 / 적들은 청주성을 버리고 / 칠백 전사 / 명의 속사정 / 임박한 참전 / 점바치의 택일 / 패주하는 조승훈 / 모함과 오해 / 패전의 책임 / 히데요시에게 드리운 그림자 / 유키나가의 계산 / 분주한 북경 / 역사에 없는 거간 / 심유경의 등장 / 꾸짖으면 물러갈 터 / 허풍도 도통하면 / 조선의 목숨을 쥔 사람 / 말 없는 맹세

저자소개

김성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지난 2010년 타계한 작가 김성한의 생애는 세 시기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무명로》가 당선되어 등단한 후 56년 《바비도》로 제1회 동인문학상을, 58년 《오분간》으로 아세아자유문학상을 받는 등 50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던 시기가 그 첫 번째다. 두 번째는 56년 《사상계》 주간으로 인연을 맺은 후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장, 논설주간을 지내고 81년 같은 신문사를 퇴임하기까지 언론인으로 산 시간이다. 그리고 80년대 이후《왕건》,《임진왜란》,《진시황제》 등 장편 역사소설을 잇달아 내놓는 시기가 그 세 번째다. 이른바 순문학에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생산한 후, 언론인으로서 정년까지 일하고, 다시 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대작을 쏟아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가 김성한인 셈이다. 작가로서의 삶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 언론계 투신 후에도 김성한이 문학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60년대 후반부터 장편《이성계》와 《이마》를 썼으며, 역사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했다. 오랜 언론계 생활은 철저한 고증과 균형 잡힌 시각, 간결한 문체와 빠른 전개가 특징인 김성한 역사소설의 바탕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지적이고 반항적인 경향의 초기 단편들, 그리고 역사의 기록자 입장에 섰던 언론계의 경험이 버무려져 우리나라 역사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김성한 역사소설이 태어난 것이다. 김성한은 1919년 함경남도 풍산에서 태어나 함남중과 야마구치고교를 거쳐 동경제국대학 법학부에서 수학하던 중 광복을 맞아 귀국했으며, 60년대 초 영국 맨체스터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서 홀로 묵묵히 책을 읽고 홀로 글을 쓰는 금욕적 삶을 살았던 작가는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 : 《암야행》,《오분간》,《개구리》,《바비도》(이상 단편집), 《요하》,《왕건》,《이성계》,《7년전쟁》,《이마》,《진시황제》,《시인과 사무라이》(이상 장편 역사소설), 《길 따라 발 따라》,《거인들의 시대》(이상 역사 에세이) 등
펼치기

책속에서

이 무렵 대사헌(大司憲)으로 옮겨 앉은 이항복은 정식으로 조정에 제의했다.
“왜적은 우리만의 적이 아니고 공동의 적이니 속히 명나라에 출병(出兵)을 요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좌의정 윤두수가 손을 내저었다.
“지금 임진강을 지키고 있는 우리 군사들은 적을 막아 낼 것이오. 또 남북에서 대군이 당도하면 적을 쓸어버릴 계책도 설 것이오. 일단 명나라 군대가 들어오면 그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이니 아예 그런 소리는 입 밖에 내지 마시오."
이것은 윤두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이보다 앞서 압록강 대안 관전보(寬奠堡 : 寬甸縣)의 참장(參將) 동양정(?養正)이 의주목사 황진(黃璡)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당신네 나라가 왜적의 침범을 당하고 있으니 우리 명나라로서는 돕지 않을 수 없소. 내가 근일 중에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너올 터이니 급히 당신네 조정에 알려 주시오."
그러나 황진은 즉석에 거절했다.
“우리가 졸지에 침범을 당하고 온 나라가 경황이 없는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국내에 병력이 넉넉해서 적을 감당할 수 있는데 구태여 영감에게 수고를 끼칠 것까지야 있겠소?"
동양정은 웃기만 하고 별말 없이 발길을 돌렸다.


“전하를 대신해서 우리 두 사람이 가지요."
이에야스가 대답하고 히데요시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산전수전 다 겪고 정상에 오른 히데요시는 그가 오늘 여기 온 속셈을 모르지 않았다. 못 이기는 체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한 걸음 나아가 자기가 조선으로 간다? 한번 해보는 소리요, 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말 가도 걱정이었다. 지금 일본군의 주력은 조선에 있고, 이에야스가 건너간다면 이 군대를 틀어쥘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안심이 안 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딴마음을 먹으면 돌아서 이 히데요시를 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고로 섣불리 대군을 전선으로 내보냈다가 그 장수에게 패망한 군주가 한두 사람이 아니라고 했겠다. 어디 가나 이에야스는 옆에 두고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풍랑 때문에 나도 못 가는 터에 어찌 그대를 보낼 수 있겠소? 우리 사정(私情)으로 보아서도 처남 매부의 의리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오."
히데요시에게는 7세 연하의 이부(異父) 누이동생이 있었다. 이름은 아사히(旭). 이미 결혼하여 수십 년을 살아온 이 누이동생을 7년 전에 억지로 이혼시켜 이에야스에게 출가를 시켰다.
당시 이에야스 44세, 아사히 43세.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에야스도 억지로 받아 두었다.
정략결혼이 성행하는 시대였으나 그것은 어린아이들을 맺는 것이고, 사십이 넘은 노파를 억지로 떼어다 억지로 붙여 주는 정략결혼도 있느냐? 그러나 히데요시에게는 딸도 없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집안에서 제일 젊다는 것이 이 여자인지라 이쪽저쪽 억지를 써서 이에야스에게 떠맡겼다.
어찌 되었건 처남 매부에는 틀림이 없었다.
“의리를 생각할수록 제가 대신 가야지요."
안 보낼 것이 뻔한지라 이에야스는 한술 더 떴다. 비루먹은 노새 같은 노파를 끌어다 안겨 놓고 매부라? 냄새가 나서도 그 따위는 손목 한번 잡은 일이 없다. 그나마 재작년 정월 죽어 버렸는데 새삼 처남이고 매부가 다 뭐냐? 이 잔나비는 쉬지 않고 사람을 웃긴다니까.
이에야스는 우기고 히데요시는 말리고, 결국 타협을 본 것이 히데요시의 뜻을 가장 충실하게 받들 그의 심복들을 파견하는 일이었다. 히데요시 정권의 5장관(長官 : 奉行) 중에서 그가 가장 신임하는 3장관,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마시타 나가모리(增田長盛), 오타니 요시쓰구(大谷吉繼)의 3명을 조선에 보내 일체의 군령(軍令)과 행정, 그리고 감찰업무를 집행토록 결정했다.
“너희들은 조선에 가거든 예정대로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진격해 들어가라. 나도 내년 봄에는 갈 것이다."


“상감께서는 청병하러 명나라에 들어가시고 임해군, 순화군 두 분 왕자께서는 군사를 모집하러 북으로 들어가셨다. 왕실은 모두 무고하시니 백성들은 일치하여 무기를 들고 나서라."
영흥부의 관리들이 적이 들어오기 전에 써 붙인 격문(檄文)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기요마사로서는 중대한 정보였다. 자기가 가는 앞길에 조선 왕자 두 사람이 있는 것이다.
임해군은 처음부터 함경도로 향했으나 순화군은 강원도 담당이어서 그리로 들어갔다. 그러나 곧 적이 들어오는 바람에 형의 뒤를 따라 함경도로 들어와서 형제가 합치게 되었다. 이들의 일행은 가토 기요마사에게 쫓기면서 앞질러 북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것들을 붙잡아야겠다."
기요마사는 북행길을 재촉했다. 왕자를, 그것도 2명씩이나 포로로 잡는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 이때 두 왕자 일행은 두만강가의 회령(會寧)까지 올라가 있었다. 해정창에서 이긴 기요마사는 길주(吉州), 명천(明川), 경성을 거쳐 7월 24일 회령으로 다가들었다.
이 시대 두만강 일대는 전국에서 제일 편벽된 고장으로 사람이 살 곳이 못 되었다. 죄를 지은 자, 그중에서도 죽어도 아깝지 않은 자들을 귀양 보내는 곳이 두만강 연변이었다. 그리하여 이 지역에는 그런 자들, 혹은 그런 자들의 친척이며 후손들이 적잖이 살고 있었다.
그중의 한 사람이 회령부의 아전 국경인(鞠景仁)이었다. 본시 전라도 전주 사람으로 괜찮게 살다가 죄를 쓰고 이 고장에 쫓겨 와서 아전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제 적이 두만강까지 왔으니 나라는 망했고 더 볼 것도 없었다. 자기로서는 구박만 받은 나라, 지켜야 할 의리도 없었다.
숙부 국세필(鞠世弼)도 같은 처지로 경성부의 아전이었고, 명천의 아전 정말수(鄭末守)와 목남(木男)도 같은 신세였다. 이들은 모두 적에게 쫓겨 회령에 와 있었다.
그들은 작당하여 한탕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회령에는 각처에서 모여든 어중이떠중이들이 1천 명도 넘었다. 팔자를 고친다고 귀뜀했더니 저마다 몽둥이를 들고 나섰다.
네 사람은 이들 어중이떠중이들을 이끌고 부사(府使)의 처소로 쳐들어 갔다. 두 왕자 내외와 김귀영(金貴榮), 황정욱(黃廷彧)·황혁(黃赫) 부자 및 수행원, 회령부사 문몽헌(文夢軒) 등 20여 명을 굵직한 밧줄로 묶어 놓고 한 대씩 쥐어박았다.
“내일부터 느으들은 내 발바닥을 핥게 됐으니 그쯤 알아 모셔라."
국경인은 한마디 내뱉고 밖으로 나왔으나 뒤에서는 합창하듯 외마디 통곡뿐이었다.
“말세로다―."
국경인은 그 길로 성 밖으로 말을 달려 가토 기요마사를 맞아들였다. 10여 기를 거느리고 성안으로 들어온 기요마사는 결박을 당한 채 머리를 늘어뜨린 군상을 바라보다 국경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이니 요로시(매우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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