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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쟁 4

7년전쟁 4

(비밀과 거짓말)

김성한 (지은이)
  |  
산천재
2012-07-09
  |  
15,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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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쟁 4

책 정보

· 제목 : 7년전쟁 4 (비밀과 거짓말)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90496645
· 쪽수 : 528쪽

책 소개

김성한의 역사 장편소설. 조선과 일본, 명이 뒤엉켜 치렀던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다룬 최초의 역사소설이다. 7년의 기나긴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전쟁 당사국인 세 나라의 상황을 가능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감한다.

목차

황해도초토사 이정암 / 농성전과 유격전 / 조여드는 적의 대군 / 화공(火攻) / 이순신의 부산포해전 / 흰 여우 원호 / 앞잡이들 / 대장의 그릇, 정문부 / 역적 국세필의 독백 / 함경북도를 회복하고 / 호걸 김시민 / 진주성 전투 ─ 한 폭의 지옥도 / 북경의 하늘 아래 / 개선장군 이여송 / 평양의 유키나가는 잠 못 이루고 / 누르하치의 제안 / 조선을 반쯤 갈라 준들 / 외교의 천재들 / 우리는 수모를 받아 마땅하다 / 비밀회담 / 천병(天兵)을 맞을 준비 / 탄로 난 거짓말 / 제독 이여송 / 가짜 칙사 / 계책은 실패하고 / 티 없는 얼굴의 두 스님 / 평양성 탈환 작전 / 총공격 / 일본군의 대탈출 / 아비지옥 / 무차별 학살 / 윤두수의 눈물 / 아름다운 얼굴 / 광해군의 분조를 폐지하고 / 일본군의 서울 집결 / 벽제관 전투 / 명군 제독의 도망 / 수도 탈환은 조선의 손으로 / 적의 길을 끊다 / 행주산성 전투 / 진퇴양난의 일본군 / 만나서 화평을 의논하자 / 임해군의 편지 / 화평을 구걸하는 적 / 적중의 거인, 이신충 / 조선은 모르는 비밀 접촉 / 심유경과 유키나가의 재회 / 삼국의 다른 처지 / 선조 임금의 헛걸음 / 조선군을 막는 볼모 / 서울은 수복되었건만 / 명군의 훼방 / 융숭한 대접 / 진주를 치는 목적 / 일본군 총동원령 / 김천일의 진주 사수 결의 / 우뚝 솟은 거인, 황진 / 끝없는 전투

저자소개

김성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지난 2010년 타계한 작가 김성한의 생애는 세 시기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무명로》가 당선되어 등단한 후 56년 《바비도》로 제1회 동인문학상을, 58년 《오분간》으로 아세아자유문학상을 받는 등 50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던 시기가 그 첫 번째다. 두 번째는 56년 《사상계》 주간으로 인연을 맺은 후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장, 논설주간을 지내고 81년 같은 신문사를 퇴임하기까지 언론인으로 산 시간이다. 그리고 80년대 이후《왕건》,《임진왜란》,《진시황제》 등 장편 역사소설을 잇달아 내놓는 시기가 그 세 번째다. 이른바 순문학에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생산한 후, 언론인으로서 정년까지 일하고, 다시 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대작을 쏟아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가 김성한인 셈이다. 작가로서의 삶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 언론계 투신 후에도 김성한이 문학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60년대 후반부터 장편《이성계》와 《이마》를 썼으며, 역사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했다. 오랜 언론계 생활은 철저한 고증과 균형 잡힌 시각, 간결한 문체와 빠른 전개가 특징인 김성한 역사소설의 바탕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지적이고 반항적인 경향의 초기 단편들, 그리고 역사의 기록자 입장에 섰던 언론계의 경험이 버무려져 우리나라 역사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김성한 역사소설이 태어난 것이다. 김성한은 1919년 함경남도 풍산에서 태어나 함남중과 야마구치고교를 거쳐 동경제국대학 법학부에서 수학하던 중 광복을 맞아 귀국했으며, 60년대 초 영국 맨체스터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서 홀로 묵묵히 책을 읽고 홀로 글을 쓰는 금욕적 삶을 살았던 작가는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 : 《암야행》,《오분간》,《개구리》,《바비도》(이상 단편집), 《요하》,《왕건》,《이성계》,《7년전쟁》,《이마》,《진시황제》,《시인과 사무라이》(이상 장편 역사소설), 《길 따라 발 따라》,《거인들의 시대》(이상 역사 에세이) 등
펼치기

책속에서

그러나 이 혼란 통에 벼슬의 높고 낮음을 따질 계제가 못 되었다. 모든 사람이 정종 대감의 집안인 정문부가 좋다는 데는 도리가 없었다. 정현룡도 오응태도 대중의 뜻에 따라 정문부에게 복종을 맹세하였다.
정문부는 하는 수 없이 의병대장으로 나섰다.
임진왜란에 의병대장으로 나온 인물도 수백 명에 달했으나 이처럼 어렵게 결정된 경우는 없었다.
(……) 경성으로 진격할 부대를 편성하고 있는데 놀라운 소식이 들어왔다. 훈융(訓戎)에서 조산보(造山堡)에 이르는 두만강 하류 일대에 여진족이 대대적으로 침공해 들어왔다는 것이다.
왜놈들을 인도해서 자기들의 땅을 침범한 국경인 일당을 토벌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경인 일당과 그렇지 않은 조선 사람들을 구분할 여진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눈에 뜨이는 대로 학살하고 돌아갔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이 모여들고, 공론이 벌어졌다.
무력으로 쫓아 버리는 것이 제일 간편했으나 국세필과 대치하고 있는 형편에 그럴 여력이 없었다.
금은보화를 주면 물러가지 않을까˙?
그들이 좋아하는 말[馬]과 젊은 여자를 바치면 어떨까˙?
의견이 구구했으나 적이 휩쓸고 지나간 이 지역에 금은보화가 있을 리 없었다. 또 일본군의 약탈을 면한 마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장차 적과 싸우지 않는다면 몰라도 싸우는 이상 여진족에게 내줄 형편이 못 되었다.
남의 귀한 딸자식을 바치고 목숨을 구걸하겠다는 것은 어떤 인간이냐? 아낙네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발설한 사람이 도망치는 촌극도 벌어졌다.
시종 잠자코 듣기만 하던 정문부가 단을 내렸다.
“국세필과 손을 잡는 수밖에 없소."
장내가 웅성거렸다.
“역적과 손을 잡는다는 말인가?"
“이기기 위해서는 도척과도 손을 잡을 것이오."
정문부는 선언했다.
진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누구나 몸소 체험한 일이었다. 우선 이기고, 다음에 벌어질 일은 그때에 가서 생각하는 것이 순서였다.


평양의 고니시 유키나가는 요즘 술이 아니고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뜻같이 되는 일은 하나 없고, 날이 갈수록 모든 방면에 망조만 짙어 갔다.
재난은 지난 6월 평양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무더위에 염병(染病 : 전염병)이 돌고 학질마저 기승을 부려 숱한 병사들이 죽어 갔다. 약 한 첩 제대로 써주지 못했고, 주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단 하나 대책이었다.
식량도 문제였다. 처음에 조선군이 버리고 간 것이 10만 섬이나 된다고 하여 몇 해 먹고도 남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달포를 지나고 보니 쌀은 동이 나고 남은 것은 조와 수수뿐이었다.
장도 간장도 소금도 없었다. 채소도 없고, 육류라고는 간혹 대동강에서 낚아 올리는 물고기가 고작이었다. 수토가 다른 데다 제대로 먹지 못하니 병사들은 맥을 추지 못하고, 가을이 와도 매일같이 죽음은 그치지 않았다.
그 위에 조선의 의병들 때문에 편한 날이 별로 없었다.
(……) 파죽지세로 조선 왕국을 휩쓸고, 연내에 명나라 북경으로 들어간다던 일본군은 이제 중병을 앓는 병자같이 축 늘어진 형국이었다. 소생의 길은 일본에서 제대로 보급을 받는 외에는 달리 없었으나 남해에 이순신의 수군이 버티고, 육지에서 의병들이 움직이고 있는 한, 그것은 될 일이 아니었다.
이런 형편에 명나라까지 개입하면 큰일이었다.
“차라리 서울까지 후퇴하는 것이 어떻겠소?"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고 현지시찰을 온 구로다 조스이(黑田如水)는 이런 제안까지 했다.
일본 제일가는 전략가인 그는 제3군 사령관으로 황해도를 점령한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의 부친이기도 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에서 모두 철수하여 전선(戰線)을 축소하고, 병력을 집결하여 서울 이남을 확보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러지 않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명나라의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오면 일사천리로 밀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키나가가 반대하고 나섰다.
“그것은 명나라에 약점을 보이고, 도리어 그들을 불러들이는 결과가 될 것이오."

이런 형편에서 심유경은 구세주나 다름이 없었다. 10월 20일 그가 돌아오면 모든 일이 잘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이 와도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속은 것은 아닐까?"
장수들은 술을 퍼마시고, 중 겐소마저 곤드레가 되어 휘청거렸다.


누르하치에게는 항상 머리를 떠나지 않는 숙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식량 문제였다.
(……) 그런데 조선은 남쪽에 위치한 따스한 나라로 쌀을 위시하여 오곡이 잘되는 고장이었다. 이 조선을 어떻게 할 수 없을까˙? 생각은 조선을 떠나지 않았다.
그 조선이 일본의 침공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명나라를 당할 힘이 없고, 결국은 물러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기회에 피를 흘려 두는 것도 해롭지 않으리라. 피에는 공짜가 없다. 일본이 물러간 후 피값을 요구한다고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조선에서 기름진 땅을 갈라 영구히 차지하는 방안도 있고, 해마다 우리가 필요한 식량을 받아 내도 좋을 것이다.

누르하치의 제의로 들떠 있던 명나라 조정에 제일 먼저 찬물을 끼얹은 것은 조선이었다.
“중국이 그렇게 허약한 줄은 몰랐다. 기껏 한다는 짓이 누르하치의 힘을 빌려 왜적을 물리친다는 것이냐."
“일본에 망하나 여진에 망하나, 망하기는 매일반이다."
“중국은 돕지 못하겠으면 가만히나 있으라."
조선에서 달려온 급사들은 거침없이 본국의 여론을 토해 냈다. 온건한 정곤수(鄭崑壽), 지난가을 진주사(陳奏使)로 군사원조를 요청하러 와서 아직도 북경에 머물고 있는 정곤수마저 하는 소리가 달라졌다.
“아무리 중국이라도 없는 힘이야 낼 수 있겠습니까? 그만두시지요."
조선은 자고로 남쪽의 일본, 북쪽의 여진에 시달려 왔다. 둘이 다 강도들이었다. 강도 하나만으로도 죽을 지경인데 나머지 강도마저 울타리 안에 들여놓으라니 말이 되느냐?
(……) 그러나 명나라 조정은 저마다 삿대질이었다.
“조선놈들, 죽어 가는 판에 더운밥 찬밥 가리게 됐느냐?"
“싫으면 그만두라지."
며칠을 두고 빈정대는데 요양의 송응창으로부터 사람이 달려왔다.
“누르하치도 오랑캐올시다. 그를 키워 주었다가 제2의 보바이가 되면 어떻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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