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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쟁 5

7년전쟁 5

(재침 그리고 기이한 화평, 완결)

김성한 (지은이)
  |  
산천재
2012-07-09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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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쟁 5

책 정보

· 제목 : 7년전쟁 5 (재침 그리고 기이한 화평, 완결)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90496652
· 쪽수 : 560쪽

책 소개

김성한의 역사 장편소설. 조선과 일본, 명이 뒤엉켜 치렀던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다룬 최초의 역사소설이다. 7년의 기나긴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전쟁 당사국인 세 나라의 상황을 가능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감한다.

목차

칼 든 선비들의 최후 / 불타는 진주성 / 히데요시의 7개 조건 / 왕자의 석방 / 한고비를 넘은 전쟁 / 조정의 환도 / 모든 것이 내 죄로다 / 세 치 혓바닥 / 유키나가의 편지 / 천주의 뜻 / 야합과 조작 / 굶주림 / 사명과 기요마사 / 명의 최후통첩 / 명분과 현실 / 입으로 하는 전쟁 / 철수하는 명군 병사들 / 북경의 일본 사신 / 책봉사 이종성 / 조선 소녀 줄리아 / 엉뚱한 인간 / 사건 현장의 죽통 / 목을 매든지 도망을 가든지 / 야간도주 / 기요마사는 거세되고 / 흡족한 히데요시 / 황신의 사절단 / 일본 국왕 책봉식 / 왕자를 적지로 / 김응서의 극비 장계 / 부산을 치는 문제 / 이순신을 잡는 회의 / 매질 그리고 백의종군 / 승과 패의 사이 / 석성은 해임되고 / 심유경 체포령 / 다시 짙어 가는 전운 / 권율과 원균의 불화 / 조선 수군의 전멸 / 이순신의 복귀 / 짓밟힌 남원성 / 황석산성의 분투 / 직산대첩의 내막 / 열두 척의 배 / 무아의 영혼이 그려 낸 한 폭의 그림 / 명의 조바심 / 심유경의 최후 / 울산성 공방전 /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 / 고금도의 이순신 / 연합수군의 속사정 / 히데요시의 유언 / 휴전 공작 / 최후의 결전 / 아, 노량 바다

저자소개

김성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지난 2010년 타계한 작가 김성한의 생애는 세 시기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무명로》가 당선되어 등단한 후 56년 《바비도》로 제1회 동인문학상을, 58년 《오분간》으로 아세아자유문학상을 받는 등 50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던 시기가 그 첫 번째다. 두 번째는 56년 《사상계》 주간으로 인연을 맺은 후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장, 논설주간을 지내고 81년 같은 신문사를 퇴임하기까지 언론인으로 산 시간이다. 그리고 80년대 이후《왕건》,《임진왜란》,《진시황제》 등 장편 역사소설을 잇달아 내놓는 시기가 그 세 번째다. 이른바 순문학에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생산한 후, 언론인으로서 정년까지 일하고, 다시 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대작을 쏟아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가 김성한인 셈이다. 작가로서의 삶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 언론계 투신 후에도 김성한이 문학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60년대 후반부터 장편《이성계》와 《이마》를 썼으며, 역사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했다. 오랜 언론계 생활은 철저한 고증과 균형 잡힌 시각, 간결한 문체와 빠른 전개가 특징인 김성한 역사소설의 바탕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지적이고 반항적인 경향의 초기 단편들, 그리고 역사의 기록자 입장에 섰던 언론계의 경험이 버무려져 우리나라 역사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김성한 역사소설이 태어난 것이다. 김성한은 1919년 함경남도 풍산에서 태어나 함남중과 야마구치고교를 거쳐 동경제국대학 법학부에서 수학하던 중 광복을 맞아 귀국했으며, 60년대 초 영국 맨체스터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서 홀로 묵묵히 책을 읽고 홀로 글을 쓰는 금욕적 삶을 살았던 작가는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 : 《암야행》,《오분간》,《개구리》,《바비도》(이상 단편집), 《요하》,《왕건》,《이성계》,《7년전쟁》,《이마》,《진시황제》,《시인과 사무라이》(이상 장편 역사소설), 《길 따라 발 따라》,《거인들의 시대》(이상 역사 에세이) 등
펼치기

책속에서

임금 선조가 17개월 만에 다시 본 서울은 이와 같은 수라장이었다. 환도를 주저하던 임금이었으나 참담한 현실을 눈으로 보고는 사람이 달라졌다.
“백성들이 굶어서야 쓰겠는가?"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양곡을 구해다 진제장에 배정하고 친히 진제장에 나가 지친 백성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모든 것이 내 죄로다."
감격한 백성들은 목을 놓아 울었다.
임금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전적지를 찾아 전사한 장병들의 영전에 제사를 지내고 한강, 백악(白岳) 등 명산대천에 머리를 조아려 나라의 부흥을 빌었다.
살벌하던 서울의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문제는 산적해 있고 어느 것 하나 어렵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먼저 손을 대야 할 것이 군대의 정비였다.
대세는 평화로 전환하는 듯하였으나 조선으로서는 마음을 놓을 처지가 못 되었다. 일본군이 서울에서 철수하기에 그들의 본토까지 물러가는 줄 알았었다. 그런데 별안간 돌아서 진주를 치고는 경상도 남해안에 크고 작은 성들을 쌓아 올렸다. 그것도 임시로 묵을 허술한 시설이 아니고 돌로 쌓은 튼튼한 성들이었다. 물러갈 태세가 아니었다.
조선이 걱정하는 이유는 그 밖에도 또 있었다. 명나라 사람들의 입으로 흘러나오는 화평 조건이었다.


“그동안 생각해 낸 방책이 이것이오?"
“진정하시오. 지금 국면은 꽉 막혔소. 타개하자면 이 방법밖에 없소."
“……."
“이 웅천에서 서울은 1천 리 길이오. 서울에서 북경은 3천2백 리, 도합 4천 리가 넘는 거리요. 항표가 왔다면 이 4천 리 연변의 입들이 오죽 떠들겠소. 거기다 북경의 조정처럼 게으르고 말이 많은 고장도 없을 것이오. 항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결론을 내리자면 여러 해 걸리지요. 아마 결론을 내리기 전에 일본에서는 늙은 태합이 죽고 전쟁은 슬그머니 끝난다―나는 앞날을 이렇게 내다보고 있소."
“……."
“지난여름 당신네는 태합이 우리 명나라에 보내는 국서를 깔아 버리지 않았소?"
“……."
“죄로 말하자면 깔아 버리는 것이나 조작하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오."
“……."
“그때는 보내서는 안 될 문서를 깔아 버린 것이고, 이번에는 보내야 할 문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오. 안 될 연유를 말해 보시오."
듣기만 하던 유키나가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일이 탄로되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우리는 이미 한배에 타고 있지 않소? 허허허."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술이나 듭시다."
유키나가는 그를 가로막고 술을 권했다. 심유경은 인물인가, 사기꾼인가?
(……) 다음 날부터 중 겐소와 법석타는 옛날 중국 문헌들을 상고하여 항표를 짓기 시작했다. 썼다가는 지우고, 의논하고, 다시 쓰고―밤과 낮이 몇 차례 바뀌어도 그들은 골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히데요시가 관백의 자리에 오른 것은 10년 전인 1585년, 최종적으로 전국을 통일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인 1590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년 전이었다.
한 가지 일이 끝나기 전에 다음 일을 꾸미고 서두르는 것이 히데요시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때에 처결하는 것은 장점이었으나 시일을 두고 지켜볼 것은 지켜보고 다질 것은 다져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는 것이 그의 단점이었다.
무력으로 나라를 통일했으니 억울하게 당한 자도 있고, 힘에 눌려 어쩔 수 없이 굴복한 자도 있게 마련이었다. 또 그 어느 편도 아니고 형편상 복종을 가장하고 기회를 노리는 축도 없지 않았다. 무마를 하든 탄압을 하든, 시일을 두고 이들을 정리하여 분란의 소지를 일소하고 정권의 기반을 굳힐 생각을 못하고 전쟁부터 일으키고 말았다.
이들 중 국내에 남은 자들은 전쟁을 남의 일같이 관망하면서 은근히 힘을 기르고, 할 수 없이 조선으로 출전한 자들은 그들대로 이를 갈았다. 잔나비가 사람을 짓밟더니 이제 사지로 몰아 넣는구나.
충신들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등은 처음부터 충신이었다. 그런데 전투에 앞장서서 병력을 가장 많이 소모한 것이 이들이었고, 전비(戰費)를 마련하느라 영내의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다. 태합의 이 전쟁은 장님이 제 닭을 때려잡는 격이 아니냐?
일본의 내막은 이처럼 단순치 않았다.
이와 같은 물정을 말없이 지켜보는 사나이가 있었다. 제2인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였다. 히데요시보다 6세 연하인 54세, 아주 건강하였다. 하늘이 실수를 하지 않는 한 히데요시는 자기보다 먼저 죽게 되어 있고, 죽으면 정권은 자기에게 굴러온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추파를 던져 오는 자도 있었으나 그는 내색을 하지 않았고 서두르지도 않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는 반대로 고니시 유키나가는 히데요리를 받들고 그와 운명을 같이할 생각이었다.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하루 속히 히데요시가 죽어 주어야 했으나 그 아들까지 망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기왕이면 그 그늘 밑에서 자기도 크게 날개를 펼 궁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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