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1075795
· 쪽수 : 248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을 위하여 6
1. 단 한 사람을 위한 음악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입맞춤 22
자유로운 영혼의 ‘잡놈’ 할아버지 31
눈물 대신 평온함 가득했던 이별 41
두려움 없이 사랑하다 함께 떠난 노부부 49
노래하며 견딘 마지막 시간들 59
2. 사랑의 식탁을 차리며
사랑의 통로가 된 재희 78
말기 암도 엄마가 되는 걸 막을 순 없었다 87
사막에서 피어난 초록 생명 같은 지민이 96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108
아버지를 위한 사랑의 요리 120
12년 만에 만나는 몽골인 부녀를 위한 밥상 132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제일 두려워요 141
3. 삶의 마지막 축제를 위하여
암에 걸린 언니를 위한 첫 호스피스 요리 156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배우고 싶은 것 167
마지막 나들이, 마지막 추억의 밥상 179
사랑의 묘약, 단추 수프 193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줘서 고마워 204
어떤 기억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 219
‘구름이 머무는 숲’에서 228
에필로그 : 하늘빛 동창회에 띄우는 편지 239
저자소개
책속에서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지인의 부탁으로 난생처음 호스피스 센터를 방문하게 되었다. 어느 말기 암 환자의 임종 자리였다. 나는 부탁을 받고 그곳에서 말기 암 환자의 마지막을 함께하면서 그분만을 위해 플루트를 연주했다. 단 한 사람을 위한 음악회……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플루트를 연주하는 내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강렬하고 특별한 느낌이, 멋있고 화려한 무대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벅찬 감정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제 곧 세상과 작별할 이가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마지막 시간을 정리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나로서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분의 얼굴에는 사랑과 감사, 용서와 화해의 감정이 두루 서려 있었다. 삶의 마지막 30분, 10분, 5분……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가족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던 그분은 플루트의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평안하게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하잘것없는 나의 음악이 한 인생의 마지막을 그토록 편안한 길이 되도록 도울 수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고 발견이었다.
그분 역시 입으로만 숨을 쉬었기 때문에 입술은 말라서 갈라지고 입 속과 혀까지 다 헐어 있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때 아내가 혀를 조금 움직이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남편이 얼른 물 한 모금을 머금더니 아내의 갈라진 입술에 자기 입을 대고 촉촉이 적셔주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곧 아내의 벌어진 입 안에 한 방울 한 방울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잠깐 심장이 멈춘 듯했다. 감히 상상도 못한 입맞춤이었다. 그것은 두툼한 물 거즈를 입에 대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헐어 있는 입속이 아프지 않게 하려는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남편의 입술을 느낄 수 있었는지 아내는 한참 만에 혀를 움직이더니 입술에 묻은 물기를 핥아 입 안을 적신 뒤 물방울을 간신히 목으로 넘겼다. 아내의 반응을 지켜보던 남편은 조심스레 몸을 기울여 아내의 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사랑해요……”
또 죽음이 코앞에 닥치지 않을 때는 천국의 축복을 기다린다고 말하지만 막상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죽음의 문턱을 어떻게든 넘어서지 않으려는 분들도 많았다. 그런 분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무엇보다 삶에 대한 집착이 커 보였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삶의 환상에 갇혀 이 세상을 떠나기 힘들어했고, 역시 스스로 만들어낸 죽음에 대한 환상 때문에 다가와 있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떨고 있었다. 나는 삶에 대한 집착과 환상에서 자유로운 사람일수록 죽음에 대한 잘못된 환상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 죽음을 그저 삶의 또 다른 면으로 보고 편안히 받아들인다는 것을 그들을 보며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