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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디자인/공예 > 디자인이야기/디자이너/디자인 실기
· ISBN : 9788992483230
· 쪽수 : 315쪽
· 출판일 : 2007-08-1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세상을 열정으로 디자인하라
1부 '노명자'에서 '노라 노'로 1928~1947
멋내기 디엔에이 / 어머니의 로맨스 / 오남이 색시와 용호 / 오간디 원피스 / 여우 목도리 / 최승희의 춤사위 / 아버지의 회초리 / 꿈꾸는 여고생 / 하이힐을 신고 / 아랫집 아저씨 여운형 / 학도병과 정신대 / 신랑 / 출정 명령 / 면회 / 현해탄의 스파이 / 오키나와에서 온 엽서 / 생인손 / 원자폭탄 / 해방 / 밀전병 도시락 / 신랑 돌아오다 / 미용실 / 이혼 / 미스터 스미스 / 빛바랜 사진 한 장 / 파티 드레스 / 미국 유학
2부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1947~1953
철창 안에서 / 할리우드 / 사교계 / 패션 공부 / 고물차 시보레 / 영화배우 필립 안 / 캘리포니아 유전 / 이혼은 연애 경력 / 자존심 / 잠 못 드는 밤에 / 다시 한국으로 / 문학소녀는 가고 / 의상실 개업 / 사리 드레스 / 말동무 / 무대 의상 / 곗날 다음날 / 육군병원 / 짐 휜클 소령 / 별을 달고 / 키스 오브 파이어 / 퇴계로 부티크 / 아버지의 충고 / 쇼, 쇼, 쇼 / 연극 '햄릿' 의상 / 팬클럽의 원조 / 가장 역할
3부 도전으로 세상을 디자인하다 1954~1971
첫 파리 여행 / 윤이상 선생 / 패션의 도시 / '잠수함' 수트를 입고 / 롱샹 경마장 / 스페인으로 / 빠에야와 투우 / 프랭크 시나트라 / 마요르카 섬 / 교향과 마피아 / 가이드에 반하다 / 우리 옷감 / 무에서 유를 / 최초의 패션쇼 / 엄앵란과 오드리 햅번 / 전속 계약 / 샤프론 / 미스 유니버스 대회 / 최종 심사 / 스크린 테스트 / 영 패션 /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 하와이 패션쇼 / 핸들슨 부부 / 기성복 시대 / 윤복희와 펄 시스터즈 / 목화 아가씨
4부 열정 창조자, 패션 패셔니스타 1971~2007
코코 샤넬 / 미국 시장을 뚫다 / 패션 야화 / 기성복 코너 / 운명의 실크 / 와인과 벗하여 / 여배우 최은희 / 뉴욕 7번가 / 새 물류 시스템 / 반월 공장 / 히트작 / 노바 파크 / 「보그」와 「바자」 / 선의 미학 / 유일한 사치 / 중국으로 노라노 재팬 / 청담동 사옥 / 이북 친구 여연구 / 굿바이, 뉴욕 / 인연의 끝 / 마지막 용기 / 김수임과 그녀의 아들 / 영부인들 / 영세 / MBA 출신과 결혼을 / 브라운 대학 강연 / 세계패션그룹 대상 / 우먼 파워 / 패션 반세기
에필로그 : 나는 최고의 행운아였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기성복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캐치프레이즈로 「한국일보」 장명수 기자(훗날 한국일보사 사장을 지냄)의 도움을 받아 '마음대로 입어보고 골라 입는 옷'으로 정했다. 맞춤복의 단점은 눈으로 보고 예상했던 느낌과 실제 입었을 경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옷을 구입하기 전에 입어볼 수 있다는 것은 당시 소비자들에게 상당한 매력이 아닐 수 없었다.
신문에 "기성복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기사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요즘 패션 기자들은 이 기사를 보고 "웃기는 기사"라며 재미있어 한다. 하지만 그땐 그랬다. 드디어 백화점 매장을 오픈하는 날이 되었다. 백화점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2층 기성복 코너로 몰려들었다. 고객들을 위한 간단한 쇼가 끝나자 기성복을 입어보느라 한바탕 난리가 났다. 모델들이 입었던 옷을 당장 자신이 입어볼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던 것이다. 준비했던 기성복들이 당일 모두 팔렸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제품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1966년,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 여성복에 기성복 시대가 열렸다. 기성복이 짧은 시간에 자리를 잡게 된 데는 1956년에 첫 전파를 탄 텔레비전 방송이 한몫 거들었다고 생각한다. ... 사람들의 관심은 영화에서 텔레비전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나는 이 점에 주목하고 인기 프로그램에 의상을 협찬한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영화와 달리 텔레비전 의상은 하루 정도만 빌려주면 되기 때문에 부담도 적었다. 텔런트들은 의상비가 절약되었고 나는 나대로 빠르게 컬렉션을 홍보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 프로그램 말미에 '의상 노라 노'라는 자막을 반드시 올릴 것을 주문했다. - 본문 217~218쪽, '도전으로 세상을 디자인하다 1954~1971' 중에서
하루는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재무국장의 부인 배 여사가 나를 불렀다. 미국에서도 할리우드에 살았다는 배 여사는 멋쟁이로 소문난 분이었다.
"미스 노, 당신이 입는 옷들은 어디서 구하는 거지?"
나는 약간 주춤거리며 대답했다.
"거의 제가 만들어 입습니다."
그러자 배 여사는 내 손목을 잡고 미스터 스미스에게 다가갔다.
"스매리(미스터 스미스의 애칭), 당신은 정말 보는 눈이 없군요. 이 아이를 보세요. 항상 이렇게 멋진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나타나는데, 지금 물어보니 자기가 직접 만들어 입는다고 하잖아요."
배 여사는 주위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 이 아이가 패션 디자이너로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미스 노를 디자이너로 만들자고 했다. 사람의 운명은 순간에 결정된다. 배 여사의 이 한마디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내 길을 열어주었고 나의 반세기를 결정지었다. - 본문 76쪽, '노 명자에서 노라 노로 1928~1947' 중에서
그런데 '간디'의 막이 오르던 날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른 새벽, 극단장이 우리 집 문을 두들겼다.
"노 선생, 큰일 났소! 시나리오가 검열에 걸려 반 토막이나버렸지 뭐요. 쇼라도 해서 30분을 때워야겠으니 긴급히 무용복을 만들어 주셔야겠소!"
무용수는 열 명쯤 되고 공연 시간은 정오였다. 다섯 시간 안에 무용복 열 벌이라니,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슨 무용을 하는데요?"
"룸바춤이요."
... 드디어 막이 올랐다. 신나는 룸바 리듬이 흐르면서 무용수들이 춤을 추었다. 조명을 받은 새틴 옷감이 번쩍거리며 갖가지 색깔이 물결쳤다. 무용수가 움직일 때마다 타이트한 치마 옆으로 다리의 곡선이 슬쩍슬쩍 엿보였다. 이때가 1950년이었다. 모든 관중이 이 섹시한 장면에 흥분해서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이렇게 연극 '간디' 공연은 위기를 모면하고 뜻밖의 흥행 성과까지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흥행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 본문 120~121쪽,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1947~1954'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