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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3489965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20-07-21
책 소개
목차
제1부 불안/ 11
제2부 모험/ 35
제3부 위기/ 67
제4부 돌발/ 127
제5부 쇼/ 179
제6부 결백/ 251
제7부 무위/ 327
추천사 얼굴, 인간, 인생/ 352
정병설(서울대 국문과 교수)
저자소개
책속에서
마흔일곱 살 생일 아침, 홀로 어슴푸레 잠을 깬 P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흐릿하게 보이는 천장이 마치 흙더미에 눌린 관 뚜껑처럼 느껴져, 질식할 것처럼 숨이 가빠왔다. 그는 이러다 세상에 이름을 한번 알려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원장님 제발 부탁이에요. 인터넷에 이미 퍼진 얼굴을 일일이 지울 수도 없으니, 차라리……. 차라리 제 얼굴을 지워주세요.
“원장님 최대한 빨리, 최대한 다른 얼굴로 만들어주세요.”
“새로운 얼굴로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얻으세요. 이제까지 알려진 얼굴로 힘든 삶을 살고 계신 모든 유명인들에게 새 얼굴과 새 삶을!”
그의 병원에는 더 예뻐지기 위해, 혹은 더 유명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유명해진 얼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날마다 더 많은 연예인들이 방문했다. 성공과 바꿔버린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되찾기 위해 그들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사람들은 한 사람의 영혼이 바로 그의 얼굴에 들어 있는 것처럼 얼굴을 보고 반응하니까. 그래서 더럽혀진 인격을 회복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희생시켜야 할 것도 바로 그 얼굴이었다.
“형! 변장 성형, 변신 성형 정말 대박 났어요.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셨어요?” J가 천장에 닿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만약 정말로 도망 중인 범죄자의 얼굴을 수술해준 거라면? 무슨 죄를 짓는 게 아닐까? 내가 일부러 그렇게 해준 것도 아닌데 그게 죄가 될까? 아, 정말 미치겠네.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는 그의 의식 속에, 그 탐욕 덩어리가 무너지고 난 뒤 피어난 뽀얀 먼지 위로 잊고 있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나이 마흔까지 노총각으로 퇴짜만 맞다가 수술 후 드디어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들고 왔던 남자 환자의 얼굴, 오디션만 수십 번을 보다가 수술을 받고 나서 이제 데뷔하게 되었다며 환하게 웃던 배우 지망생의 얼굴, 뺨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난 칼자국을 수술로 지우고 나서 행복해하던 어린 여학생의 얼굴, 얼굴, 그 얼굴들…….
마흔일곱 살 생일 아침, 홀로 어슴푸레 잠을 깬 P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