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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잡지 > 대중문화/예술
· ISBN : 9788994027555
· 쪽수 : 136쪽
· 출판일 : 2016-06-20
목차
특집 1 : 이미지, 먼지와 기념비 사이에서
먼지와 기념비 사이의 ‘콘텐츠’: 오디오비주얼 이미지의 진동 ..... 곽영빈
이미지의 영도를 개념화하기: <보이지 않는 가족>전의 영상들에 대한 고찰 ..... 조지훈
자기파괴(self-destruction)로부터: 행위-영상의 수행적 매개 ..... 이한범
특집 2 : 페드로 코스타
맨눈으로 세계를 지각할 수 있을까 : 페드로 코스타의 <반다의 방>과 <행진하는 청춘>을 중심으로 ..... 김보년
모든 것이 달라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 ..... 페드로 코스타
지하로부터의 수기: 페드로 코스타의 <호스 머니> ..... 유운성
Interview
질감들 : 오민욱 × 백종관 대담 ..... 진행: 정민구, 이한범, 박이현
Critic
지옥에서 돌아온 : 김웅용의 영상 작업에 대하여 ..... 강덕구
Correspondence
아다치 마사오를 사이에 둔 편지 ..... 김태용, 박솔뫼
저자소개
책속에서
“‘작품’의 위상이 이렇듯 자신을 붙들어 주던 전통적인 개념적 정의의 경첩들로부터 느슨하게 풀려나는(unhinged) 과정은, 영화와 미술과 미디어 연구라는 개별 분과학문들을 가로지르는 거시적 흐름 속에서 ‘콘텐츠’라는 단어가 갖는 문제적 위상을 보다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이 유용한 개념이라는 게 아니라 전통적 분과학문의 경계와 연동했던 매체의 특정성들(medium specificities)이 점차 탈각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거대한 블랙홀, 혹은 ‘쓰레기 하치장’과 같은 위상을 부여받고 부상한 것이 바로 ‘콘텐츠’라는 것이다. 이경규의 ‘눕방’과 ‘낚방’영상은 강정석 작품의 배다른 짝패로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동하지만, 그들은 전통적으로 텔레비전이나 영화, 혹은 갤러리 공간에서 상영되는 싱글채널 비디오라는 매체적/비평적 특정성의 칸막이에 더 이상 가둬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잠정적이고 임시적인 ‘콘텐츠’의 세계에서, 이 둘은 자신의 반대극에 서 있는 “기념비적인 것”에 대한 도약의 욕망을 드러내고 (이경규의 경우가 웅변하듯) 때론 성취하기도 하지만, 그 둘은 자신들이 ‘콘텐츠’의 평면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며, ‘폐허(ruin)’로서의 영상 텍스트를 이루는 양 축으로 진동한다. 먼지와 기념비 사이에서 진동하는 수많은 ‘콘텐츠’들. 우리가 보고 듣는, 아니 둘러싸여 있는 ‘오디오비주얼 이미지’들은 바로 이 두 극단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을 것이다.” (곽영빈, “먼지와 기념비 사이의 ‘콘텐츠’: 오디오비주얼 이미지의 진동”, 『오큘로』 제 2호
“설명 불가능한 작품들을 하나로 묶어 놓고 “저자의 죽음과 의도의 부재”로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기획(혹은 비평)의 직무유기이자 작품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보이지 않는 가족?전은 ‘이미지의 영도’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도의 이미지’를 전시하고 있다. 이는 관람객의 질문을 막아 버린다는 점에서 피상적인 접근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지의 영도”라는 개념을 불러온다면 이것을 이미지화한 작품을 전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다시 개념화할 필요가 있다. 의미를 유보하는 실천으로서의 영도는 영상을 별 볼일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장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과 생각하기 어려운 너무나 당면한 과제 앞에서, 잠시 쉼표를 찍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집회에서 희생자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 옆을 지나가는 대중들의 다양한 시선을 “구경꾼”으로 낙인찍지 않고 하나로 담아내어 보는 이를 동요시키게 하듯 말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말 그대로 집회에 대한 이미지가 하나의 방향이 아니라, 수많은 방향으로 다시 이미지화될 영도를 향하게 되는 것이다”(조지훈, “이미지의 영도를 개념화하기: ?보이지 않는 가족?전의 영상들에 대한 고찰”, 『오큘로』 제 2호
“앞서 당대의 기술, 환경적 조건과 기록 방식의 조작으로 인해 행위-영상이 더 이상 나르시시즘적인 것으로 남지 않고 자기 파괴적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자기파괴는 프레임 내에서의 삶의 구성과 삶으로의 지시가 불가능하게 되고, 이미지가 무한히 유포, 저장되어 도처에 존재하게 된 상황에 따른 수동적 결과이이지만, 오히려 그 상황을 우회적인 방식으로 저항하는 가능성을 배태한다. 즉 프레임 안의 신체, 그리고 신체를 담은 프레임의 이중구조는 징후임과 동시에 이를 마주하기 위해 고안된 하나의 정치다. 스스로를 화면 안에 통제하면서도 삶의 감각을 생성하기 위해 표면을 뚫고 나오려는 시도는 이중적인 태도로 비치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존재로의 회귀로 읽힌다.” (이한범, “자기파괴(self-destruction)로부터: 행위-영상의 수행적 매개”, 『오큘로』 제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