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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집
· ISBN : 9788994027630
· 쪽수 : 127쪽
· 출판일 : 2016-11-30
책 소개
목차
경기도 신갈 55
만남의 장 73
시간은 흐른다 115
픽션 없는 사진들을 위한 모험, 그리고 흔적에 대한 책임 121
저자소개
책속에서



2008년 경기도 신갈. 며칠째 나는 계속해서 이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2008년 11월 말 경기도 신갈 부근의 약 23만 8000m2에 이르는 지역은 재개발을 앞두고 비워진 집들이 비탈길을 따라 들어서 있었다. 동네의 가장 남쪽을 가로지르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북쪽으로는 사람들이 더 이상 살지 않은 빈집들이 보였다. 이따금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한 몇몇 이와 마주쳤지만, 그들은 카메라를 메고 이 동네를 서성이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처음 필름을 발견한 곳은 동네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공터 옆, 텃밭을 끼고 있는 초록색 대문이 달린 집이었다. 대문 한쪽은 뜯긴 채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자 회색빛의 단독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난 이곳에서 꽤 시간을 보내며 집 안팎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잠시 현관 계단에서 숨을 고른 뒤, 현관 왼쪽에 있는 작은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보윤, “경기도 신갈”)
조금 달리 말하자면, 그 자체로는 그것을 바라보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주장하지 못하는 이 진부한 사진들은 인물과 관련된 픽션을 수반하지 않는 사진들 - ‘픽션이 아닌(nonfiction)’ 사진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픽션 없는(fictionless) ’ 사진들 - 이라고 할 수 있다. 장보윤은 자신이 쓴 글들에서 사진을 찍거나 사진에 찍혔으되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로 남지 못한 이들의 부재가 그 사진과 관련된 장소로의 여행을 촉발시켰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여행이란 사실 픽션 없는 사진을 위해 픽션을 찾아나서는 여행이었다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담담하고 기술적인 어조로 씌어졌지만 돌연 억누를 길 없는 감상을 드러내기도 하는 장보윤의 글들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은, 사진의 멜랑콜리는 그것과 결부된 인물이 사라졌거나 더 이상 없기 때문이 아니라 픽션과 맺는 관계가 단절된 데서 비롯된다는 날카로운 인식이다. 그녀에게 있어 “사진 인화지 위에 남겨진 생생한 이미지는 […] 계속해서 어떤 환상 내지 상상을 만들어내도록 부추”기는(「마운트 아날로그」) 것이며 “여행은 […] 존재와 부재의 사이를 오가며 […] 보고 느낀 경험들을 바탕으로 스스로 보다 적극적인 내러티브를 만들 기회를 마련”해 주는(『밤에 익숙해지며』) 것이다. 우리가 그녀의 작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결핍에서 비롯된 감상이 아니라 단절이 추동하는 픽션에 대한 의지다.
(유운성, “픽션 없는 사진들을 위한 모험, 그리고 흔적에 대한 책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