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처럼 동그란 내 얼굴

목차가 없는 도서입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면서 설탕도 넣지 않은 채 마시고 있던 차를 엎었다. 그리고 부엌 유리문을 꽝 닫고 나가서는 위층으로 올라가 내 방문도 꽝 소리가 나게 닫았다. 내가 전부터 누누이 강조했던 사실을 부모님이 잊지 않도록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기 위해서였다.
바로 내가 청소년이고, 이 세상에서 행복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나는 내 방 안에 은밀한 저장고도 마련해 두었다. 바로 책장 안쪽의 빈 공간이었다. 그곳에 둔 음식들은 워낙 빠른 속도로 사라졌기 때문에 개미가 꼬일 염려도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먹는 것에 대한 나의 집착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아니, 나 자신이 점점 커져만 갔다.
나는 이것이 단지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지속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마치 장기 흡연자처럼 나는 매일 결심했다. 내일부터는 그만 먹어야지. 하지만 늘 다짐으로 끝나곤 했다.

‘사스키아 베녜’ 사건 이후로는 더 이상 안경을 쓰지 않았다. 낯선 이처럼 보이는 나를 마주하고 싶지도, 또 나를 비난하는 다른 이들을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흐릿하게 세상을 본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선명한 현실의 윤곽을 거부함으로써 현실을 부정하는 한편 행동해야 할 순간을 미룰 수 있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