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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6643074
· 쪽수 : 254쪽
책 소개
목차
정지비행_송수권 -------------------13
중심_송종규 -----------------------16
나는 오늘도 나를 염殮한다 _손현숙----18
봄밤_이재무------------------------21
그 골목에 하모니카 소리_김선태-------25
안개당신_김왕노--------------------28
통화권이탈지역_고형렬--------------30
몸의 맛_황동규---------------------33
화창한 날_신현정--------------------36
수평선_송재학----------------------39
피아노_장태숙----------------------41
꽃과 저녁에 관한 기록_고영민---------44
떠나는말_박흥식--------------------46
혀와 내장과 그 거리_차주일-----------49
집시파워_정재분--------------------52
목백일홍_정영선--------------------55
생수_최금녀------------------------58
벽돌공장 그녀는_길상호--------------61
그 무엇이 자꾸 그릴 이긴다_문인수-----64
먼지아버지_이경림------------------67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_이기철-----70
나비의 이륙_허만하------------------73
거울_구석본------------------------76
춘방다방_노향림--------------------79
외로움도 스트레칭을 한다_신달자------82
말에 관한 각서_이기철---------------85
받아들인다는 것_도종환--------------89
새까만 정장_정진규------------------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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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의사의 고뇌는 병마와의 싸움에서 시작된다.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우선 정확한 진단이 필수적이다. 첨단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진단기술의 발전은 웬만한 병들의 양태를 매우 자세히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으며 병의 원인과 치료에 고심해야 할 현실적 어려움은 우리 의료진의 마음을 무겁게 억누르고 있는게 사실이다. 즉 수수께끼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착된 현실파악은 현 세계의 첨예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아랍세계와 서방세계의 갈등을 연상시킨다. 언제 어떻게 해결될지 모르는 뜨거운 아젠다인 것이다.
엉뚱한 시간에 잠이 깨어 살그머니 거실로 빠져나왔다/ 까치발을 들고 조심조심했으나 방문 여는 기척에 아무래도 약간 건들린 것인지/ 아내의 잠결이 두어 겹 멈칫, 멈칫, 주름 잡혔다. 다시/ 고르게 코를 골 때까지 기다린 그 몇 각刻//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가 내 마음에 담아 씹는 말 내가 듣는// 죽음에 달린 어느 날의 새벽이 또한 잠시/ 저 산/ 방올음산* 꼭대기에 걸려 새파랗게 쫑긋했으면 좋겠다.
*나의 고향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의 북단에 시퍼렇게 솟은 산.
- 문인수, '귀' 전문
인간은 영혼의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할 가치가 있다. 인간은 영혼으로 말미암아 규정지어지는 존재이다.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들이 영혼의 삶을 살았다는 것만 보아도 영혼의 존재와 가치는 명백해진다. 또한 이들의 영적교류는 아름답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사람은 자기자신의 장 속을 빤히 들여다 보면서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자기 몸 속 장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변화와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현대의학에서는 다른 장기의 변화와 움직임도 모두 관찰할 수 있다. 이는 모두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온 의학의 발달 덕분이다. 하지만 영혼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불가사의의 핵. 그것의 수용체와 감각기관은 어떤 의학과 과학의 발달도 결코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다. “내가 내 마음에 담아 씹는 말 내가 듣는”다는 것은 영혼과의 대화로 나아가는 과정이리라. 영혼과의 대화에서는 죽음을 볼 수도 있으며 죽음을 달관할 수도 있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허물 수도 있다. “죽음에 달린 어느 날의 새벽이” 오히려 “새파랗게 쫑긋”하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은 죽음에 대한 긍정적이고도 초연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최첨단 과학이 인류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할지라도 “새파랗게 쫑긋”한 귀만은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엔 하모니카를 잘 부는 머슴이 한 명 살았습니다. 그는 저녁이 오면 마을 골목길을 느릿느릿 휘돌며 하모니카를 불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하모니카를 불었습니다. 청승을 타고 났는지 그가 부는 노래는 무엇이건 모조리 슬펐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구성진 그의 하모니카 소리를 좋아하였습니다. 저녁밥을 물리고 나면 으레 그 하모니카 소리를 기다렸습니다. 모두들 하모니카 소리를 듣다가 깜박 잠이 들곤 하였습니다. 그 애잔한 하모니카 소리에 덥혀 나의 잠도 일찌감치 슬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늦가을 하모니카 소리가 뚝 끊겼습니다. 알고 보니 그가 홀연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바보같이 아직 총각 딱지도 떼지 못한 채 떠나버렸습니다. 그 후로 골목엔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았고 사람들도 하나둘씩 마을을 떠나갔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는 마을 사람들의 가난과 슬픔을 달래준 가수였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폐허의 빈 골목을 거닐다 보면 옛날 그 하모니카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는 듯합니다.
-김선태, '그 골목에 하모니카 소리' 전문
나는 어렸을 때 무척 하모니카를 좋아하였다. 그 시절 학생이 있는 집이라면 어디든 하모니카 하나 쯤은 갖고 있었으리라고 생각되는데 동네 여기저기에서 하모니카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런 하모니카가 갖고 싶어서 어머니를 졸라댔지만 폐가 나빠진다는 이유로 사주지 않으셨다. 할 수 없이 나는 용돈을 모아 겨우 한 옥타아브만 있고 떨림판도 한 줄만 있는 작은 하모니카를 구할 수 있었다. 그걸로 제법 “구성진” 가락도 읊곤 하였는데 그 머슴이라면 아마도 나의 하모니카 선생님으로 모셔도 됐을법한 생각이 든다.
어느 날 신명이 사라졌다. 양념이 없어졌다. 소금이 사라졌다. 덩달아 마을 사람들도 떠나갔다. 왜 “바보같이” 그는 떠나버렸을까? “마을 사람들의 가난과 슬픔을 달래준 가수”가. 아무튼 그는 마을의 ‘박지성’이었고 ‘백건우’이었고 ‘사라 장’이었다. 그 “청승”맞은 하모니카 머슴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