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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레이크

스완레이크

신해영 (지은이)
  |  
로담
2011-06-14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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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레이크

책 정보

· 제목 : 스완레이크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96666004
· 쪽수 : 384쪽

책 소개

신해영의 로맨스 소설. 눈을 뜨면 한 사람이 생각난다. 눈을 감아도 한 사람이 생각난다. 그냥 살 수도 있겠지. 없이 살아도 아침 해는 뜨고 밤이 되면 달과 별이 하늘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지? 항상 옆에 있을 때는 옆에 있다는 거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게 너무나 당연하니까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던 거야."

목차

서막
1막
2막
3막
4막
5막
6막
7막
종막
backstage

저자소개

신해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처서에 태어난 수줍은 성격의 소유자 출간작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중매결혼≫ ≪시에스타≫ ≪에테시아 그 바람이≫ ≪나라를 구했다≫ ≪열일곱 번째 계절≫ ≪절반의 연애≫ ≪스완 레이크≫ ≪일식≫ ≪개도 사랑을 한다≫ ≪이모네 집에 갔는데 이모는 없고≫ ≪골든 베이비≫
펼치기

책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은 소름끼치게 좋았다. 뼛속 마디마디 스며 있던 술기운이 뜨거운 물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어째서 술을 마시면 몸이 찝찝해지는 걸까? 물을 받아서 목욕할 여유는 없었지만 진아는 한참을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내리는 샤워기 아래에 서 있었다.
내친김에 양치질까지 한 그녀가 약간은 개운해진 기분으로, 정리된 마음으로 욕실에서 나왔을 때 황지호는 깨어 있었다. 아니,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는 엉망진창, 얼굴은 허옇게 부은 채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것이다.
“……인사 자알~ 한다.”
그의 앞에 서서 계속 허리를 굽혔다 폈다하는 꼴을 구경하다가 한마디 하자 지호가 눈을 떴다.
“뭐해? 왜 누워서 자지 않고 앉아서 그러고 있어?”
“아…….”
정말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황지호는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정신을 차리고 싶어 미치겠는데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게 30분전의 그녀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더 자.”
쌀쌀맞게 말하고 진아가 돌아서려는데 또 지호가 그녀를 불렀다.
“잠깐만 있어봐.”
“?”
“너 어제 기억나?”
“……그건 내가 30분전에 너한테 물은 질문 아니야?”
내가 기억나면 왜 너에게 물었겠니, 라는 말을 진아는 덧붙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녀의 상태도 좋지 않았고 지호가 알아들을 만큼 정신을 차린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 여기까지 올라온 기억 말고……. 그건 나도 기억이 잘 안 나.”
“잘?”
“그게 중간 중간…… 네가 집에 가야한다고 했는데 내가 데려다 줄 수가 없어서 데리고 올라온 것도 같고…….”
점점 겸연쩍어지는 지호의 목소리에 진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그렇지! 그녀가 언감생심 꿈에서라도 집에 들어가지 않을 생각을 했을 리가 없었다. 말없이 외박이라니! 지난 25년간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아닌가! 통금이 해제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내가 조금만 자고 가자고 했더니 네가 안 된다고 몸부림쳐서 끌고 오느라…….”
황지호가 개쓰레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건 취소다.
진아는 이를 갈았다. 지금 황지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마정훈은 정말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뭘 어떻게 할지, 앞으로 그녀가 얼마나 갑갑해질지 그녀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저 무척이나 숨이 막힐 뿐.
“너 정말!”
그러고 보면 몸이 쑤셨던 것도 단지 부딪치고 굴러서만은 아닐지도 몰랐다. 황지호가 방으로 끌고 오는 와중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뭔가.
“하지만 정말로!”
큰 소리를 냈던 지호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 짓도 안 했어.”
“어제 나를 집에 안 들여보낸 것부터가 이미 엄청난 짓을 한 거야!”
“왜?”
양반다리 한 무릎 위에 손을 짚으며 황지호가 물었다.
“왜애?”
기가 막혀 되묻자 그는 진지하고 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 몇 살이야?”
“알아서 뭐하게?”
“말해봐. 할 게 있으니까 묻는 거 아니야?”
“……25살.”
“뭐? 너 나보다 한참 어리……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정신을 차리려는 듯이 지호가 고개를 마구 흔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25살이면 성인인데 하루정도 집에 안 들어간 게 뭐 그리 엄청난 일이야? 아무 일도 없었잖아? 그냥 잘 잤고, 오늘도 어제랑 조금도 다를 것 없는 하루 아니야?”
진아는 눈을 깜빡였다. 이런 종류의 발상도 있다는 건 생각해 보지 못했다.
확실히 황지호의 말은 옳은 데가 있었다. 외박을 하긴 했지만 별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녀는 어떠한 종류의 범법이나 위법도 저지르지 않았다. 오늘 아침의 태양은 어제와 조금도 다름없이 동쪽에서 떴다.
멍하게 서 있는 진아를 보고 지호가 침대 옆을 툭툭 두드렸다. 서 있지 말고 와서 앉으라는 뜻이었다. 홀린 것처럼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어제 너, 나랑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기억 나?”
진아는 인상을 찡그렸다. 꽤 많이 떠들었던 건 기억난다. 술을 그렇게까지 많이 마셨던 것은 단지 마정훈 때문에 열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뭔가 황지호와 통하는 것이 있었다. 같은 고민, 같은 생각……. 그와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신……자유주의?”
인상을 찌푸린 채 곰곰이 어제의 대화를 떠올리던 진아의 머릿속에 ‘신자유주의’라는 다소 황당한 주제가 떠올랐다.
“그래!”
지호가 손가락을 튕겼다.
“너나 나나 뭐랄까…… 그럴 이유가 없는 구속을 많이 당하고 살더란 말이야. 난 어머니로부터, 너는…….”
정훈을 지칭할 적당한 단어를 생각해 내지 못한 지호가 눈동자를 굴렸다.
“보호자라고 쳐.”
지난 20년간 마정훈은 그녀의 보호자였다.
“좋아, 보호자라고 치자. 어쨌든 그 사람이 지금 너에게 일반적인 보호자 이상의 간섭을 하는 건 사실이잖아?”
사실이다.
“우리 통하는 데가 많은 것 같지 않아?”
지호가 씩 웃었다.
진아는 그런 지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상태가 엉망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리고 성격도…… 나쁜 것 같진 않았다. 사실 황지호가 막 노는 험한 애들이었다면 어제 진아가 따라왔을 리가 없다. 아니, 그 전에 이미 말을 섞고 놀지 않았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사람은 사람을 가리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 꽤 괜찮은 놈인데…… 만나보는 게 어때? 서로 도움도 주고받고, 마음에 위로도 되고…… 내가 반항하는 법 알려줄게.”
잠시 진아는 할 말을 잃었다.
“만나?”
“그래. 뭐…… 정식으로 만나는 거야. 여태껏 나 이런 적은 없지만 넌 좀 특별한 것 같으니까.”
너무 쉽다 못해 당당하기까지 한 지호의 발언에 진아가 할 수 있는 반응이라고는 눈을 깜빡이는 것뿐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호는 혼자 신이 나서 떠들고 있었다.
“가만있자…… 네가 25살이랬지? 내가 29살이니까 내가 오빠네, 오빠. 그러고 보면 너 어제부터 오빠한테 내내 반말하고 있다? 오빠~ 해봐. 오빠~.”
결국 지호의 너스레에 진아는 피식 웃고 말았다.
“오빠 같은 소리 한다.”
진아가 손에 잡히는 베개를 그의 얼굴에 던지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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