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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93024676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24-04-24
책 소개
목차
1부 조선에서
1 색을 잃은 새
2 둥지를 떠나는 새
3 탁란하는 두견
4 흔하지 않은 참새
5 빛바랜 파랑새
6 날개를 펴는 짐새
7 새장에 갇힌 붕새
8 한 쌍의 앵무새
9 날개를 찢긴 비익조
10 갈퀴를 다친 물새
11 깃갈이하는 유조
12 떠나가는 철새
2부 심양으로
1 덫에 걸린 새
2 텅 빈 고목을 조는 딱따구리
3 달 없는 밤의 까마귀
4 종종대는 매추라기
5 알 품는 수탉
6 눈비 맞은 까마귀
7 펄펄 나는 꾀꼬리
8 큰 날개 그림자 아래 촉새
9 짝 잃은 기러기
10 도래하는 철새
3부 다시 조선에서
1 곁을 물들이는 짐새
2 날개 접은 백학
3 불을 삼킨 화식조
4 사람의 말을 하는 인면조
5 피를 토하는 탁목조
6 돌을 물어다 바다를 메우는 정위
작가의 말—애란의 편지
프로듀서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게 훨씬 낫겠다. 너는 너무 영민하구나. 슬플 만큼.”
“이 거래의 대가를 주세요. 제가 자유를 드리면 뭘 주실 수 있어요? 이 혼담이 엎어지면 아기씨 집안도 별 볼 일 없어지잖아요. 아기씨는 과거 응시도 못 하시고.”
“지금은 아니고, 언젠가 성공해서 이 은혜 꼭 갚을게.”
“뭘 할 건데요?”
“장사를 할까? 사행길에 올 때마다 나를 만나러 와 줘. 조선의 선비들에게 팔 만한 책을 골라 줄게. 〈목란사〉는 빼고.”
애란은 아직 팔에 걸치고 있는 도련님의 도포를 가리켰다.
“이 도포를 담보로 맡아 두지요.”
애란은 담보로 받은 도포에 얼굴을 묻고 동행하는 내내 도련님에게서 풍겼던 묵향을 맡았다.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시를 쓰는 계집이라니, 너무 영민하구나. 슬플 만큼.
“의원 집안을 통해서 저를 내의원으로 보내 주세요.”
“궁녀가 되겠다고?”
“입궁하여 내의녀가 되겠어요. 병을 앓아 심약해진 궁중 여인들의 비위를 맞춰 주고, 어느 후궁이 회임했는지 누구보다 빨리 알아내며, 내밀한 궁 안 사정도 전해 듣다 보면 운 좋게 임금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될 수도 있겠지요.”
“후궁이 되어 뭘 하려고?”
“임금을 꼬드겨 끈 떨어진 명나라에서 발을 빼고 새롭게 중원을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게 할게요. 그러면 아버지께서 호랑이 꼬리라도 잡아 밀무역에서 한몫 잡으실 수 있겠지요.”
애란은 후궁이 될 마음 따위 없었다. ‘왕의 여자’ 말고 ‘왕의 여자를 만드는 여자’가 될 것이다. 궁녀는 사내에게 시집가지 않으니 시집살이의 설움이 없고, 천인이든 중인이든 양반이든 다 똑같은 나인이 될 것이니 신분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양반이든 임금이든 사내 따위 시시하게 보는 애란에게 딱 맞는 자리다. 역관의 뒷배를 봐주는 걸로 만족할 생각도 없었다. 아버지는 꿈에 비해 그릇이 작았다. 후궁의 아비가 되어 임금을 움직여 얻고자 하는 것이 고작 돈푼이나 쌀섬뿐이니 산해진미를 막사발에 담고 점취를 계집종에게 쥐여 주는 격이다. 아버지가 아들처럼 키운 딸은 절대 아버지처럼 옹졸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가야지. 우리 둘 다 피란길에서 봤잖아. 청나라에는 끌려가서 노비가 된 백성들이 있어. 그런데 세자와 세자빈이 노비보다 훨씬 나은 처지인 인질로도 못 가겠다고 할 수는 없어.”
“패전하고 ‘오랑캐’에 굴욕당했다고 불쌍한 척하면서 도리어 백성들에게 동정받으려고 하는 임금은 세자가 ‘아비의 원수’인 청나라와 조금이라도 친하다면, 백성을 위해 뭔가 한다면 세자를 물어뜯을 거예요. 세자가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뭘 하려고 하면 할수록 조선의 조정에선 단지 세자를 겁박하기 위해 백성을 외면할 거예요.”
“세자와 세자빈이 함께 타향살이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낯선 타국에 끌려간 불쌍한 백성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겠니.”
“그렇게 아무나 다 불쌍하게 여겨서 구해 주고 싶어 하면 빈궁마마께는 뭐가 남아요? 알량한 우월감? 같잖은 동정심?”
“꼭 뭐가 남아야 해? 텅 빌 때까지 다 퍼 주면 안 되는 거니? 나는 내 나름대로 유복한 집에서 고명딸로 맘대로 살았어. 그런데 세상엔 안 그런 사람이 더 많잖아. 그럼 내가 누린 거 조금 덜어 줄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