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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독백

수줍은 독백

박봉옥 (지은이)
  |  
샤인텔
2014-06-13
  |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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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독백

책 정보

· 제목 : 수줍은 독백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6751755
· 쪽수 : 205쪽

목차

1부
애리조나의 사보텐

12 애리조나의 사보텐
18 슬픈 기억
23 서생역에서
28 천전리의 봄
34 후지산 바보
39 꿈꾸는 고물상
44 사랑의 출발점
49 여름 바다 일광
54 산복도로 사람들

2부
소유권 이전

62 소유권 이전
67 사천왕
72 수선화
77 한때 거기 사랑이
82 그해 겨울로
87 고래 바위의 추억
93 시산도에서 하루
98 31번 국도 풍경
103 그리운 시냇가

3부
보랏빛 추억

110 보랏빛 추억
114 단편
118 10월의 해변에서
120 열차를 기다리며
126 푸른 파도여, 언제까지나
135 귀여운 털보
141 인과응보
146 손목시계
151 크리스마스와 고무장화

4부
F코드

158 F코드
163 동해, East Sea
168 모든 길은 인터넷으로 통한다
173 비록 내 어머니가 문둥이일지라도
179 2000년 겨울
184 공무원
189 스승이 죽지 않는 이유는 그 제자들이 살아있는 까닭이다
196 용호농장
201 장마

저자소개

박봉옥 (지은이)    정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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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애리조나의 사보텐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비행기 조종사가 되겠다는 아들의 꿈은 잿속의 불씨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었는지 되살아나 불꽃처럼 튀었다.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아들의 열정에 내 주장을 접기로 했다. 그 꿈은 진정 아들의 것이기에……. 직장 잘 다니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으면 하고 바랐는데 역부족이었다.
공항에서 보안구역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돌아서니 미지의 세상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딘 아들에게 진즉 적극적으로 용기를 북돋워 주지 못한 후회가 밀물처럼 서서히 밀려왔다. 직항이 아닌 일본을 경유하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오랜 시간 비행 후에 아는 이 하나 없는 공항에 내려서 큰 가방을 들고 어디로 나서야 할지 두리번거릴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아팠다. 집에 돌아와서 잘 도착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어 미국 비행학교 쪽에 국제전화를 해댔지만 깜깜무소식이었다.
아들이 미국에 건너간 지 다섯 달이 지났다. 그동안 안착했다는 전화를 하고 수차례 이메일로 사진과 글을 보내왔다. 갓 도착하여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인근의 마트에서 산 토마토를 들고 있는 어정쩡한 모습, 모래 바람이 돌아다닐 것 같은 설렁한 마을 풍경, 4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숨이 턱 막히고 걷기가 힘들다는 푸념을 전해왔다. 저렴한 비용의 아파트를 구해야 하고 숙소와 비행학교를 오갈 자동차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처음 뒷자리에 탑승한 비행훈련에 크게 들떠 있었고, 연이은 비행훈련이 적성에 맞을뿐더러 미국인 교관이 소질이 있다고 칭찬을 해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번엔 멀리 떨어진 다른 공항을 혼자서 비행기를 몰고 다녀오는 솔로 크로스컨트리 비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기쁨을 전해왔다. 직접 몬 경비행기를 배경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첫 단독비행에 성공했다는 자부심과 비행의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안도감이 교차한 듯 보였다. 난 자랑스러운 아들이라고 단박에 답신을 보냈다. 하지만 아들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아들의 마음엔 뒤늦게 뛰어든 만큼 빨리 조종면허를 따야 한다는 강박감과 비행학교를 수료 후 취업문제가 복합적으로 자리 잡고 있을 테니 이리저리 마음이 편치 못하다는 걸 난 잘 알고 있다.
가끔 비행학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교 생활과 취업 상황을 눈여겨보곤 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아무개가 국내의 항공사에 취직되었고, 국내 항공사의 수습조종사들이 이곳 비행학교에 입교하여 훈련을 받는다는 이야기, 한국에 있는 비행학교 훈련생이 선진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와서 위탁훈련을 받는다는 소식이 올라와 있다. 그 외에도 아들처럼 직장을 관두고 아름다운 비행을 하고 싶어 꿈을 찾아 애리조나로 온 학생들의 이야기도 있다. 그들에 비해 아들은 갈 길이 멀다. 그런 점에서 행여 아들이 위축될까 봐 걱정이 앞선다.
처음엔 비행교관의 칭찬에 다소 의기양양하더니만, 시간이 갈수록 차츰 어려운 과정에 접어드는지 아들의 말투가 곱지 않다. 우선 착륙이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깃털이 아닌 바에야 착륙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동체에 붙은 조그만 바퀴로 울퉁불퉁한 활주로를 미끄러지듯이 내려앉아야 하니 그게 쉬운 일인가. 그건 마치 체조 선수나 피겨 선수가 공중을 뛰어오른 후 착지하는 것처럼 만만치 않을 것이다. 관제탑과 통신도 어휘력 부족으로 힘들다고 했다. 게다가 가자마자 구입한 중고 자동차가 말썽을 부린다며 멀리 갔다 오기가 겁난다고 투덜대고, 차수리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또 몇 해 전에 때운 아래 어금니가 탈이 났지만, 의료비가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외지에서 홀로서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들은 애리조나의 폭염처럼 뜨거운 맛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괜찮은 자동차 연구소를 박차고 나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고 미국행을 택할 정도로 그 각오는 대단하지만, 세상사가 그리 만만치 않다. 쉬운 일이 있다면 자주 해봐서 이미 경험이 쌓인 일일 것이다. 더구나 익숙한 일도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애리조나 사막에 있는 비행학교는 사방이 트이고,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맑은 날씨, 겨울철에도 기온이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기후 등으로 비행훈련엔 적지인 모양이다. 아들이 수시로 안부차 보내준 사진엔 쭉 뻗은 활주로와 푸른 하늘이 맞닿은 듯 펼쳐져 있었고, 공중에서 본 황량한 들판과 마을 풍경, 서부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낯익은 산이 단골로 등장했다. 성인의 키를 훨씬 웃도는 사보텐도 있었다.
도깨비 방망이 같은 삼지창을 들고 서 있는 사보텐을 처음 봤을 땐 매우 이국적이라 관심 밖이었지만, 여러 번 볼수록 대단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쑥 그리고 차츰, 그의 생존력을 높게 보기 시작했다. 고온 건조한 사막에서 떡 버티고 있는 녀석이니 강한 놈임엔 틀림없다.
아들이 그런 사보텐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막이란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우뚝 선 사보텐처럼 어려운 상황에 좌절하지 말고 꿋꿋하게 자신의 의지를 지켜갔으면 싶다. 노력이 자신을 만드는 만큼 낯선 곳에서 긴장과 설렘의 나날들이 훗날 아름다운 비행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극복해야 할 것이 많을 게다. 머지않아 아들의 꿈이 창공에서 영그는 그 날이 오리라 확신한다. 부디 아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빈다. Roger!


천전리의 봄

초봄이지만 산골이라 그런지 서석곡의 바람은 차다. 응달진 곳에는 겨울의 객기가 채 가시지 않은 것 같다. 비탈에 선 나무들 사이로 여전히 산의 속살이 드러나 보인다. 하지만 춘삼월 햇살의 간지러움과 대지를 적시는 봄비의 재촉에 초목들이 새순을 틔우거나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어 만물이 소생하는 기운이 역력하다.
드문드문 양지바른 산 중턱이나 강가에 자리 잡은 진달래 무리는 봄을 환영하기라도 하듯 진분홍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강가에 내려선 나무들에도 새순이 돋아나고 있어 연둣빛이 파스텔처럼 번지고 있다. 엊그제 나의 심상을 무던히 어지럽히던 봄비가 여기 초목들의 영혼을 부지런히 일깨워 주었나 보다. 머지않아 이파리들이 나비처럼 날개를 펼치면 이 일대는 그야말로 봄의 향연이 벌어질 것이다.
각석으로 가는 도중에 시냇가에 선 버들강아지를 만나니 무척 반갑다. 참 오랜만이다. 따스한 봄 햇살에 시큰둥해져 늦게 찾아온 나를 나무라는 것 같아 부끄럽다. 두터운 얼음장 밑으로 물이 힘차게 흐르고 찬 기운에 코끝이 매워야만 녀석의 강인한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일찍 찾아 나서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구량천 냇물들이 힘찬 행보를 하고 있다. 저마다 조잘거리며 크고 작은 바위들 사이로 빠져나가고 너럭바위 곁을 스쳐 가며 높은 암벽 아래 짙푸른 소에서는 잠시 머문 듯하더니만 이내 다리 아래를 지나 저만큼 나를 앞서 달려가고 있다.
천전리로 들어서면서 만난 강인한 버들강아지, 수줍은 진달래, 요염한 홍매화, 청순한 야생화들을 보니 저절로 흥에 겨워 노래라도 부르고 싶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홀로 꽃을 피워 색향을 뽐내며 행인들에게 감흥을 주니 대견스럽고 그저 고마운 일이다.
도심지 주택가나 차로변에 활짝 핀 노란 개나리의 모습에 봄이 왔음을 실감하였지만, 산골짜기에 핀 이들을 보니 사뭇 감정이 다르다. 찾아오지 않았다면 분명 섭섭해할 그들이다. 골방에서 지루하게 책을 읽다 내팽개치고 이곳으로 막 달려온 것이 다행스럽다. 이 화사한 봄날에 글이 어디 마음대로 쓰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멀리 있는 지우들에게 내가 누리고 있는 봄기운을 마냥 전해주고 싶다.
먼 옛날 사람들이 이런 심심계곡을 찾아 병풍 같은 바위에 각종 문양을 새겨 놓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여러 형태의 아리송한 문양들이 나에게 뭘 말하려고 했건만 그 뜻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문양을 가슴에 품고 있는 각석만 그때의 사연들을 알 것 같다.
애틋한 사랑 때문일까, 각석에 새겨진 신라인들의 명문에 유독 관심이 간다. 명문에는 신라 왕족인 사부지갈문왕이 525년 6월 18일에 이곳으로 놀러 와서 계곡의 이름을 서석곡이라 짓고 그가 사랑한 사촌 누이 어사추여랑과 함께 다녀갔다고 적혀 있다. 그 후 14년이 지나서 다시 그의 부인인 지몰시혜비가 후에 진흥왕이 된 아들과 함께 이곳에 와서 이미 고인이 된 남편 사부지갈문왕의 체취를 느끼며 그를 그렸다는 것이다. 사부지갈문왕이 사랑했던 어사추여랑도 이미 세상을 떴다고 한다. 오래전에 있었던 그들의 사랑이 세월이 무수히 흘러간 지금에도 생생하게 묻어나니 가슴이 찡하다.
그들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 넋이 빠져 한참이나 각석 주변을 서성대다가 허둥지둥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각석 앞엔 구량천이 무심히 흐르고 있었다. 백 년의 세월이 저 달리는 시내와 같으니…….
구량천을 따라 난 오솔길을 걷는다. 눈에 가득 찬 서석곡의 풍광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어디선가 꿩 우는 소리가 짧게 들려온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현호색, 얼레지, 노루귀가 방긋이 나를 반겨준다. 순수 미인들이다. 누가 보든 말든 자신의 위치에서 꿋꿋이 엄연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는 그녀들이 사랑스럽다. 그들의 아름다움에 반해 집에 가져가려는 도둑심보가 발동한 나 자신이 초라할 뿐이다.
어쩜, 그들은 반구대로 가는 이 길을 거닐면서 속삭이고 노래하며 봄날처럼 순수하고 달콤한 사랑을 나누었을 것이다. 사랑! 동서고금을 통해 영원한 주제가 아닌가.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어허둥둥 니가 내 사랑이지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우리 둘이 사랑타가 생사가 한이 되어 한번 아차 죽어지면
너의 혼은 꽃이 되고 나의 넋은 나비 되어
내 삼월 춘풍시의 뉘 꽃송이를 내가 앉고
두 날개를 쩍 벌리고 너울너울 춤추며는
네가 나인 줄을 알려무나

나도 몰래 ‘사랑가’가 터져 나오는 신명나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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