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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6777137
· 쪽수 : 348쪽
· 출판일 : 2022-08-22
책 소개
목차
유리잔 속에 든 마을
부운의 여행지
방층망 없는 방
유년의 빚
공간에서
나비의 천국
여섯 번째 손가락
봉질댁
낡은 구두의 시간
<평론>
고명철 / 광운대 교수
-비관주의를 넘는 사랑의 정동과 소설의 윤리학
강준용 /소설가
-기호학으로 만든 맑은 의식의 공간
저자소개
책속에서
[공간에서]
우리는 모눈종이위에 서 있다. 서로 거미처럼 모눈종이 위에 새로운 영역을 새끼 친다. 공간은 공간속에 있고 또 다른 공간속에 있다. 그는 그의 공간을 몇 겹으로 만들고 나 또한 알게 모르게 나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저마다 끊임없이 각자의 공간을 만들기에 동일한 공간속의 우리를 발견할 수가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공간을 만들어야 했고, 남은 공간은 점점 좁아져 갔다. 이제 나에게는 내가 서 있는 곳만큼의 공간 외에 타인에게 내어줄 공간이 없어졌다. 그에게 가기 위해서는 내가 만들어 둔 공간을 열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공간은 그의 것으로 환원되고 나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된다. 결국 우리는 같은 공간속에 존재할 수가 없다. 우리의 말은 그 많은 겹겹의 공간을 거치므로 직선으로 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늘 배가 고프다.
[낡은 구두의 시간 ]
양치질을 하루에 세 번씩하고 얼굴이 건조해지지 않게 로션도 듬뿍 바른다. 그렇다 해도 사람들은 언젠가는 노인 앞에서 손으로 그들의 코를 가리거나 입을 돌릴 것이다. 뇌는 점차 정지되어 버리고 건조한 혀는 마른 낙엽처럼 쉽게 부서지겠지. 황량한 빈 몸을 차지하는 것은 바람뿐일 테지. 노인은 자신의 숨소리를 듣는다. 살아있다. 구두 수선 일을 그만두지 말았어야 했을까. 선샘이 치솟듯이 그 일은 금세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노인을 사로잡는다.
늙은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종류의 시간들이 늙은이를 할퀴며 지나가야 한다. 적응이란 젊은이를 위한 말이다. 늙은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나이만큼의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부운의 여행지]
사냥꾼이 다가가도 두려워하지 않은 무스는 자연의 일부였다. 무스는 파괴의 핵심인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살아가는 선한 동물이다. 돋아난 풀과 나뭇잎의 일부를 먹이로 삼아 먹잇감이 죽지 않고 지속적으로 자연을 순환시킨다. 착하고 선한 동물일일수록 사냥꾼의 표적 대상의 우위에 선다. 망원렌즈 가늠쇠에 올려진 무스는 순진한 성격과 의심이 없는 덕에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다. 나를 비정하게 만든 것은 무스가 아니라 사냥꾼이다. 입에 선혈을 토하면서 죽어 있는 무스를 보며 사녕꾼들은 서로 부둥켜안거나 하이파이브를 해댔다.어떤 여자 사냥꾼은 감격에 벅차 눈물을 흘린다. 죽은자에 대한 환희, 나는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 미국으로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