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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96888833
· 쪽수 : 294쪽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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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여기는 왜 안 되죠?”
“당신이 나를 버리게 될 것 같아서. 이곳에서 난 한때 꿈이 있었지.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아직도 조금은 남아 있소. 난 내 꿈이 계속 이곳에 머물길 바라거든.”
그녀는 서둘러 일어나서 코트를 집어 들었다. 나는 그녀가 코트 입는 것을 거들어주었다.
“미안하오.”
내가 말했다.
“미리 얘기했어야 하는데.”
그녀는 고개를 휙 돌려서 내 얼굴 가까이에 들이댔다. 그래도 난 손 하나 대지 않았다.
“당신에게 꿈이 있고 그걸 계속 살려두고 싶다는 게 미안한가요? 나도 꿈이 있었어요. 하지만 내 꿈은 죽었죠. 꿈을 살려두겠다는 마음도 사라진 거죠.”
“꼭 그런 꿈만은 아니오. 여자가 있었소. 부자였지. 그녀는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소. 잘 되지는 않았소. 다시는 그녀를 못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겐 기억이 있소.”
LA를 출발한 나는 오션사이드를 우회하는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LA에서 오션사이드까지는 6차선 고속도로로 3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고속도로 곳곳에는 부서지고 찢기고 버려진 자동차 잔해들이 높은 둑 근처에 널브러진 채 실려 나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에스메랄다로 돌아가는 이유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원점부터 다시 시작이었고 내가 맡은 사건도 아니었다. 탐정을 하다보면 쥐꼬리만 한 돈을 주면서 너무 많은 정보를 요구하는 의뢰인이 있다. 상황에 따라 일을 받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한다. 돈에 따라 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은 필요한 정보 외에도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기껏 찾아갔는데 사라져버린 발코니의 시체와 같은 이야기 말이다. 내 안의 상식은 집에 돌아가서 다 잊어버리라고, 들어오는 돈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식은 늘 한 발 늦다. 상식은 이번 주 범퍼를 들이받기 전 지난주에 브레이크를 새로 갈았어야 했다고 말하는 자다. 상식은 주말 풋볼 시합에서 자기가 뛰었다면 이겼을 거라며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월요일 아침 쿼터백이다. 하지만 그가 뛰는 일은 결코 없다. 그는 허리춤에 술통을 차고 관람석 저 높은 곳에 앉아 있을 뿐이다. 상식은 덧셈에 절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회색 양복 차림의 좀팽이다. 하지만 그가 더하고 있는 돈은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자네는 신을 믿는가, 젊은이?”
아주 길게 돌아간 길이었지만, 난 빠르게 지나가야 할 것 같았다.
“만약 전지전능한 신을 말씀하신 거라면, 그래서 현재가 그 신이 의도한 것이라고 한다면 저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걸세, 말로. 그건 굉장한 안정감이야. 우리 모두는 그런 상태가 될 걸세. 결국 우린 죽어 흙으로 돌아가게 되니까. 아마 개인으로선 그것이 끝이겠지. 물론 아닐 수도 있네. 사후의 삶은 무척이나 어려운 문제야. 난 아무래도 천국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거기선 콩고 피그미 족이나 중국의 막노동자나 레반트의 카펫 행상인이나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감독과 같이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나는 속물이네. 그런 것 같아. 물론 누가 그렇게 얘기하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나는 신이라고 불리는 흰 수염을 늘어뜨린 자애로운 존재가 천국을 다스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네. 이런 건 비성숙한 사람들이 생각해낸 어리석은 개념들이야. 물론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그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도 있겠지. 당연한 얘기지만 내겐 천국행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할 만한 권리는 없네. 따분한 얘기지. 인정하네. 그런데 아이가 세례 받기 전에 죽은 아이가 청부 살인업자나 유대인 학살을 지시한 나치나 소련 공산당원들과 똑같이 타락한 자의 위치를 갖는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지 않는가? 아무리 인간이 작고 보잘 것 없는 동물에 불과하더라도, 인간의 순수한 열망, 숭고한 행동, 위대하고 이타적인 영웅심, 험난한 세상 속의 일상적 용기가 그래도 숙명이란 걸 조금은 개선시킬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여기엔 합리적 설명이 필요하다네. 정의감이 단지 화학적 반응이라거나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이 단순히 행동 양식을 따르는 것이라는 말은 하지 말게. 신은 독을 먹고 광고판 뒤에서 경련을 일으키며 홀로 죽어가는 고양이를 보며 행복할까? 신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만족할까? 무엇에 적응하라는 거지? 아니, 전혀 아닐세. 신이 진정 말 그대로 전지전능하다면 굳이 우주 자체를 만드느라 애쓸 필요가 없었을 걸세. 실패의 가능성이 없으면 성공도 없고, 매개물의 저항 없이는 예술도 없다네. 어느 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 신이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고 신의 하루하루가 지겹도록 길다고 말한다면 그건 신성모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