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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6975458
· 쪽수 : 148쪽
책 소개
목차
취직을 기다리는 시인_7
해피 뉴 이어_41
김명수 추모사_75
당신의 자유여행_109
작가의 말_144
저자소개
책속에서
지난달까지 나는 보험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대학 졸업 직후 입사한 첫 직장이었다. 직함은 ‘상담원’이었다. 전화상담원. 주 업무는 불편사항 신고 접수였다. 아무 죄도 짓지 않고 하루 종일 욕을 먹을 수 있는 감정노동자였다. 햇살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칸막이에 갇혀 얼굴 모를 상대와 입씨름을 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많이 불편하셨겠어요. 입에 달고 살아야만 했던 인사말들 중 하나였다. 말이 좋아 인사말이지, 나에게는 그저 내가 동네북이 되어도 좋다는 암묵적인 신호일 뿐이었다. 사람 상대하는 일이 다 그렇다, 하루에 한 번씩 타의로 부처가 되었다. (「해피 뉴 이어」)
나는 너를 오빠라 불러본 적이 없었다. 보통은 야, 너. 도움이 필요할 때는 톤을 높이고 콧소리를 섞어 너의 이름을, 명수야, 불렀다. 너는 나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강요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부르지 않느냐고 따지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사 분이라도 먼저 태어났으면 오빠라고 해야지, 이런 싸가지 없는 년. 명절이면 할머니는 내 등짝을 때리기 바빴다. 오기였을까. 객기였을까. 나는 좀체 내 버릇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제 쓴 편지에서까지도 너는 나에게 ‘너’로 불리고 있었다. (「김명수 추모사」)
맥도날드 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집어든 아버지를 상상했다. 낯설고도 불편했다. 그 많던 퇴직금을 벌써 다 썼나. 궁금했다. 내가 모르는 여자 친구가 있을 수도 있었다. 돈을 많이 요구하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자식 된 도리로서 당장 헤어지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주식을 해서 탕진했을지도 몰랐다. 내게 단 한 번도 주식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지만, 뉴스에 나오는 누군가처럼, 아버지 역시 그럴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렇지. 정말로 다 써서 돈이 없었다면 나에게 말해도 되지 않았나. 이 여행이 그렇게 가고 싶었다면. (「당신의 자유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