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나무

9집을 펴내면서 5

젊은 시인들 신작시

김혜영얼굴이 지나갔다 외 1편 12
박일만인수봉 외 1편 15
박종인소문이라는 검은 때 외 1편 17
배옥주백조 외 1편 20
안효희아침에서 저녁까지 외 1편 22
유승영폭우 외 1편 25
이선행봄 강 외 1편 27
이은주떠도는 말 외 1편 29
이일림저녁의 성향 외 1편 32
이정모영혼 외 1편 36
이창하존속살인 기사 외 1편 39
장인수총각 선생님 외 1편 42
전건호양수리엔 구름이 머문다 외 1편 45
정연탁검열 외 1편 49
정이랑언니 외 1편 53
정훈교움직씨가 죽고 이름씨만 남았다 외 1편 55
하재청구름 도시 외 1편 58
한보경어쩌면 다음 생에 외 1편 61
한해미시가 날아간다 외 1편 65

이 달의 시인 시선

김추인모래의 노래 68
이 원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69
박남희물을 여미다 71
홍일표위독한 연애 73
송종규공중을 들어올리는 하나의 방식 74
오정국禁書 75
이상옥유리그릇에 관한 명상 77
채 선삐라 ―부재의 구성 78
이승희결 79
김희업책 읽는 여자 81
여 정봄, 너무나 개인적인, 꽃 83
최광임자이언트 85

젊은 시인 시선

황혜경두부의 규모 88
박선경오후 세시 90
김지율포옹 92
김이듬만년청춘 93
임재정물속 경주 남산 95
홍순영나무의 자궁 97

초대시인 시선

김길녀이별에 대한 예의 100
손순미벚꽃 십리 102
조 민주먹이 운다 시즌 3 103
김미령봄의 행로 104
진명주길을 내다 106
박승민감나무사다리 108
오혜정까꿍 109
도복희자전거 나라 110
장이엽등等 111
박현주식물 채집하는 여자 113
이화영당신이 누구든 ―지렁이 115
박수빈비오는 날의 탱고 117
한성례고향 우물 118
이가을냄새의 무반주 120
한성희유목인의 잠자리 122
김명서마술적 우울 123
현택훈밤비행기 124
김다희내부로부터의 안부 126
김병호자전거보관대 127
최영욱독毒 128

김동현어느 연주회에서 ―이루마 129
이주언어쩌겠어, 블랙립 131
김 안연흔漣痕 132
이창수등 134
박현솔우주의 시간 135
최서진양떼들에 대한 편견 136
정 선그대에게 가는 배 한 척을 세우기 위해 137
김화순낙양고분박물관 139
김기주내가 내 속의 나보다 겉에 있다 140
석정호언제나 샌드위치를 만드는 당신 142
최석균냄새의 습관 143
조은길맨드라미 144
유희선매직로즈 145
김승강심수봉의 눈물 147
김은후마분지 149
박홍점눈으로 풍경 바라보기 150

젊은 시인들 추천시

하재청
이민하감은 눈 154
주강홍점안 157
김이듬우리 160

장인수
박 준누비 골방 164
조용미메밀꽃이 인다는 말 167
이병일옆구리의 발견 170

얼굴이 지나갔다

김혜영

별이 빛나는 하늘이 차다
흐릿한 눈을 뜬 촛불이 걸어간다
책상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계절이 지나갔다
이불을 덮어 쓰고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얼굴이 지나갔다
컴퓨터 모니터를 켰다
불합격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울지 않았고
웃음을 지었다
빨간 고무장갑이
가만히 어깨를 두드린다
지독한 수렁에
발이 푹푹 빠지던 나날
컴퓨터 모니터를 차버리고
바
닷가로 나간다
벌레가 기어 다니는 낡은 하숙집에서
다친 무릎을 안고 있는 소년

미안해, 엄마

소년의 뺨을 어루만지는 저녁달

그레꼬로망

김혜영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
귓바퀴가 일그러진 얼굴
시큼한 땀 냄새 풍기는 이야기

작년에 장가든 선배는
아기 기저귀 값을 벌었다며 웃는다, 싱긋

상대 선수의 옷깃을 잡아채 바닥에 휙 던지고
상대의 어깨가 바닥에 닿도록 힘껏 누르던 사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버티던

원형경기장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결투하던
고대의 병사들이 환생한 것일까

문턱에서 좌절한 선수의 눈물
메달이건 밥줄이건
실패한 얼굴에 영광 있기를

강철 같은 슈퍼맨이 아니라
무릎 연골이 다 닳은 장애인이라는 고백

귀가 찢어지고

팔꿈치가 뭉개진 채 절룩거리며 퇴장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