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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신의 예술여정

장원신의 예술여정

장원신 (지은이)
이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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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신의 예술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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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장원신의 예술여정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화집
· ISBN : 9788997714537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15-09-20

책 소개

2007년 텐진인민출판사에서 중국어판으로 출간한 장원신의 회고록 <나의 예술여정>의 개정증보판으로 한 예술가의 일생을 통한 창작과 인생에 대한 진실한 회고일 뿐만 아니라, 중국예술의 역사적 자료로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목차

서 문 12

중국의 위대한 화가 장원신 리얼리즘의 새로운 시대를 열다 14
장원신의 예술 여정 17
고난의 어린 시절, 예술에 눈을 뜨다 17
멍에를 메고 20
조국의 승리 21
화베이 대학의 제1부와 제3부 23
베이징대학 24
예술의 길로- 베이징시 인민미술작업실 간부작가가 되다 25
유화 [소년의 집에서]를 통해 살펴 본 창작 기법의 탐구 27
[공사열차]의 창작 31
막시모프 유화강습반과 1955년~1956년의 유화 몇 작품 36
지식인의 하방노동 41
[루쉰상] 조각 51
농촌소재의 그림들과 유화 [모솎음] 54
비 내리기 전 산기슭의 술렁거림 67
문화대혁명 70
활로를 모색하다 77
70년대 유형으로 창작한 몇장의 유화 89
간쑤성 남쪽 지역 여행 스케치 94
웅장한 태항산 103
초상화 116
1980년대의 변화 133
풍경 152
풍경화의 정신적 의미 167
미국 여행 194
미국에서의 예술 활동 198
리얼리즘 회화가 미국 시장에서 주류가 되다 202
중국 화가들이 미국 예술계에 미친 주목할 만한 영향들 213
귀국 249
History of Zhang WenXin 329
장원신 연표 331
1987~2004 작품 활동 내역(미국) 336

평론 발췌 337
작품색인 349

저자소개

장원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8년 톈진출생. 1949년 화베이대학 미술과를 졸업, 1951년까지 베이징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1951년에 베이징시 미술작업실의 상임예술가로 임명되었고, 1956년에는 중국미술가협회의 회원, 1964년에는 베이징예술원의 화가가 되었다. 그는 1950년대 초에 스쟈좡 열사묘역조성사업에 참여하였고, 천안문 인민영웅기념비를 조각하는 등 조각부문에서 명성을 차지하기도 하였으며 중앙미술가협회의 베이징예술원에서 러시아의 유명한 교수 막시모프(1913-1993)의 지도를 받았다. 1950~1960년대 그의 대표작으로는 [공사열차] [모솎음]과 [루쉰상] 조각 등이 있다. 1970~1980년대 대표 작품 등으로 교육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중국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웅장한 태항산] 이외에도 [용왕매진] [전우] 등의 대형 유화작품이 있는데 현재 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80년대에는 풍속화, 초상화, 풍경화를 많이 그렸는데, 그 작품들은 세계 각지의 미술 애호가들이 소장하고 있다. 1987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GWS 출판사의 전속화가로서 강의를 하면서 수십 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고, 이를 전후해서 '오클라호마 내셔널 아카데미', '덴버 아메리카아티스트', '와이오밍 박물관' 등의 권위있는 미술대전에 참가하였다. 1994년에는 미국유화가협회의 명예회원으로, 1995년에는 마스터 회원으로 추대되었으며, 연속해서 10차례나 상을 받으면서 오클라호마 네셔널 아카데미, 덴버 아트 인스티튜트, 잭슨연구소 등에서 강의를 했다. 미국에서는 '예술가 중의 예술가'라는 영예를 얻은 한편 예술잡지 아트토크에서는 그를 가리켜 '중국의 살아있는 미켈란젤로'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장원신은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예술활동 무대를 이원화하여 중국에서 다수의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였고, 여러 미전에 출품하여 각종 권위있는 상을 수상하고 2004년도에 귀국하였다. 2008년 러시아 레핀 미술대학에서 명예교수직을 수여받았고 군사과학학교인 PLA와 연계된 예술학원의 고문으로 정식 지명을 받았다. 2009년 중국국가미술관에서 장원신 작품회고전을 개최하였고 파시즘 승리 60주년 기념 미술 전시회에서는 "비가"라는 작품으로 미술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2012년 북경의 국립대극장에서 대규모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유화작품인 "바이투안 전투에서의 팽더화이(彭德懷)"는 스좌장미술관에서 소장되었고 "주총지와 원주율"는 중국문화부에 의하여 중요한 역사적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저서로는 [장원신 유화선] 2권, [장원신 여미유화선] [중국 당대 유화가 풍경사생화집, 장원신] [중국 당대 유화가 정물화집, 장원신] 등 7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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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는 오늘날까지도 풍경화를 그릴 때 사진에만 온전히 의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아름다운 산길에 이젤을 세우고 날씨만 좋다면 며칠 동안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운좋게 사생화 한 장을 완성하는 것은 내게 최고의 기쁨이었다.
당시 양식이 주민들의 몫도 부족할 지경이라 마을에서는 우리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줄 수 없었다. 일정 시간마다 우리는 함께 산을 내려가서 식량을 사서 짊어지고 돌아와야 했다. 양식의 공급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밥을 먹을 때마다 마을 주민들이 우리에게 준 밀전병을 손저울을 이용해서, 각자 정해진 양에 따라 나누어야 했다.
한 달여 동안 많은 풍경을 그렸고, 볼펜(만년필은 연필처럼 문지를 수도 없고 시간이 지나면 잉크가 퍼지기도 해서 부식 동판 효과가 난다)을 이용한 스케치도 많이 하였지만, 여전히 주제가 있는 그림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다싱 옥수수 밭에서 일하는 농민들과 햇살이 묘하게 어울린 멋진 장면을 마주했다. 스케치를 하지는 못했었지만 그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겼고, 한동안 그것은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풍경을 그리는 나날은 금방 끝이 나고 말았다.
산에서 내려온 뒤 의식적으로 작업 장면을 찾아 스케치하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내 미래 작품 구도의 뼈대가 되어 주었다. 이것이 나의 작품 [모솎음]의 시작이었다.
넓은 의미로 나의 모든 작품은 모두 스케치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눈에 보이는 이미지와 그 안에 담긴 깊은 의미를 재빨리 잡아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스케치는 정확히 말하자면 완벽하게 그린 그림이 아니라 가장 단순한 도구들로 짧은 시간 내에 완성해낸 그림들이다.
스케치는 명확한 목적성을 가져야 한다. 말하자면 대상의 어떤 한 측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스케치는 대상의 동작에 초점을 맞추고, 개별 인물 혹은 관련된 여러 인물들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스케치는 미래의 이미지 창조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작가가 이미지에 대한 사고 영역을 확대할 수 있고, 다양하고도 폭넓은 방법으로 그 이미지를 확산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종이 한 장이 그림이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하지 않다. 베이징인민예술출판사의 전 의장이자 스케치 화가인 사오위 선생의 모든 스케치에는 타이틀이 붙어 있을 때만 드로잉작품으로 간주되었는데, 이번 스케치에는 타이틀이 없었지만 그게 나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타이틀이 붙은 드로잉작품이 아니라 앞으로 나의 창작 활동에 도움이 될 만한 이미지의 한 부분이면 되기 때문이었다.
스케치가 ‘매우 빠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케치를 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찾아서 관찰하고, 잡아 내 는데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연필 스케치 한 장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사실 유화로 그럴듯한 풍경화 한 장을 그리는 시간과 맞먹을 수도 있다.
56페이지 앞부분에서 언급한 역광 칼라 스케치는 또 다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동작의 각도와 구도는 작업 배치 이후에 대비될 색채와 배경의 조도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결정된다는 점이다.
사실 확실한 정황을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은 몇 장 그리지 못하고, 움직이거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또는 일을 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그렸다. 이 스케치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그리고 각 사람들은 어떤 동작을 취하게 할 것인가를 구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연필로 스케치한 이미지는 한층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모델을 구해서 화실의 위에서 비추는 조명 아래에서 나중에 그림에 등장할 왼쪽 첫 번째 인물을 스케치했다. 이어 두 번째 인물도 스케치했고, 또 간략하게 유화 스케치를 했다. 이 스케치는 짙은 녹음을 배경으로 한 역광이 포인트였다. 나는 역광에서 색의 대비가 어떻게 되는지 이해해야 했다. 세 번째 여인과 웃통을 벗은 남자는 마란산의 정상에서 볼펜으로 스케치한 것 중 하나이다. 이러한 재료를 이용해서 앞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일을 하고 있는 인물들을 그려냈다. 그들 몸의 윤곽을 통해 그림의 세로선이 아닌 평행선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인물들을 조합하고 연결해서 동선을 결정하는 방법은 흔히 사용되고 있었지만 내가 이 방법을 써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었다. 이 방법은 내가 구도를 짜고 스케치를 할 때 동선에 어울리는 동작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재료를 모으고 선택하는 일은 구도 능력 향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좋은 재료는 구도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특히 주인공과 배경의 경계를 뚜렷이 나타내고자 할 때는 재료의 선택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초록색이 색조가 비교적 비슷하기 때문에 인물들을 밝게 도드라져 보이도록 함으로써 주요 인물들과 배경을 뚜렷하게 나타내주었다. 그리고 키가 작은 나무 몇 그루는 밝게 표현하고, 큰 나무의 윤곽선으로 인물들과 배경을 단조롭지 않게 해줌으로써 서로 잘 어울리게 해주었다.
여름철의 눈부신 햇살이 사람 몸에 부딪치면 밝게 반사된다. 뿐만 아니라 지면에 부딪쳐도 강하게 반사된다. 땅의 어린 싹들을 옆에서 보면 녹색이다. 그런데 그것을 위에서 수직으로 보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크지 않다. 대부분의 반사광은 땅에서 반사된 것이다. 인체에 비친 반사광 색상은 매우 따뜻하다.
이 그림에서는 1:2.5의 평면구도를 사용하여 시선을 매우 낮게 표현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일꾼들과 같은 장소, 동일한 높이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배나무, 복숭아나무 그림은 웨탄 공원에서 그렸다.
이 작품은 미술관의 정원에서 폭이 2미터인 캔버스에 스케치를 했었다. 그러나 유화가 너무 크고 내가 그리고자 했던 대상과 모델이 너무 달랐다. 그래서 나는 150X50센티미터의 캔버스에 다시 그렸다. 이 정도의 크기는 내가 자전거를 탄 채 한 손으로 들고 교외로 나갈 수 있었다. 작업실은 현재 타이양궁이 위치한 채소밭 옆쪽이었고, 모델은 채소밭에서 일하는 농민들이었다. 나는 인민공사작업팀에 대가를 지불하고, 작품에 필요한 농부를 한 명씩 불렀다. 그리고 잠시 일손을 놓고 내 이젤 앞에 앉아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림 속 동작은 이미 정해두었기 때문에 모델이 동작을 취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나는 신체 일부분의 스케치만 필요했기 때문에 모델은 편안하게 작은 걸상에 앉아서 수다를 떨며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도와주면 되는 일이었다.

"중 략“

의심할 여지없이 나는 단순히 미국 미술가의 지위에 들기 위해 미국에 갔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그 곳의 생활과 문화에 나 자신을 몰입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고자 최선을 다했다. “현지의 화가와 같이 생활하며 일하고 내 작품을 전시함으로서 시장에 진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러나 나는 당시 시장상황에 대해서 잘 몰랐고, 오래되지 않아서 내 작품들이 예술의 대상이며 동시에 일상 상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미국의 친구들이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나에게 물었었다. 어떻게 동양에서 온 화가가 동양의 느낌과 정감을 가지고 서구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지?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였다 ‘중국과 서구는 언어나 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데, 미국인 화가들과 내가 예술적 표현과 조형 예술과 같은 언어에 대하여 같은 관념과 개념을 공유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세계의 서로 다른 예술적인 견해와 개인적 신념을 가진 화가들은 그들의 다양한 국가의 예술과 사회, 예술과 생활의 상호 관계 측면에서 일반적인 대중들과는 크게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나에게 있어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예술은 형태에 있어서 다원론적이지 반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있었던 10년 동안 성격이나 규모면에서 다른 특징을 지닌 많은 전시회에 참여하여 많은 괄목할만한 평가와 상을 받았으며 나의 작품이 발표되고 제한 부수로 인쇄되기도 하였다. 그중에서도 미국유화협회(OPA)는 명예의 카우보이 홀이나 역사 미술박물관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미국 화가협회(Denver 로타리 클럽)나 오클라호마의 “the Prix de West”와 같이 세계적인 권위가 있는 기관으로 OPA에서 받은 「People’s Choice Awards」는 가장 의미가 있는 상이다.

OPA는 지역 미술관의 지원을 받는 기관으로 동부의 워싱톤, 서부의 카멜, 북부는 빌링스 남부에는 휴스톤의 도시 등 매년 각각의 도시들을 순회한다. 전통적으로 정규 회원의 작품은 작품을 전시하며 심사위원들의 작품을 평가를받게 되는 한편 명예회원과 마스터회원(Master Signature Members)의 작품은 별도로 전시되고 관람객들에 의하여 「People’s Choice Awards」으로 선정되게 된다. 처음에는 명예회원으로 다음 해에는 마스터회원 자격으로 12년 동안 OPA전시회에 참여하여 11번의 「People’s Choice Awards」을 수상하였으며, 그 중 8차례의 최우수상을 수상하였지만 유감스럽게도 전시회의 개회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더욱이 상을 받은 작품 중 한 점을 제외한 모든 작품은 중국을 소재로 한 리얼리즘 장르의 작품들이다. 이것은 관객들의 리얼리즘 인물화에 대한 기대와 열정이 각별함을 말해주는 것이며 동부, 서부, 북부 등 각기 다른 지역의 전시장소, 다른 지역의 관객임에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은 사람들의 의견이 보편적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인과 외국의 생활 스타일과 익숙하지 않은 잠재적인 문제점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나의 정체성과 완전히 생소한 미국의 관객들, 그들과 내 그림에 묘사된 인물사이의 정서적 유대와 친밀한 교감이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진 것으로 생각되며 그들의 지지 투표는 내 작품의 가장 높은 명예이자 지원이고 더 나아가 나의 예술적인 신념을 확인하는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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