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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역사
· ISBN : 9788997760497
· 쪽수 : 892쪽
· 출판일 : 2013-07-3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부 예수 종파의 출현(기원전 50년-기원후 250년)
예루살렘 사도회의 | 기독교를 탄생시키기 위한 지적인 준비: 그리스 세계 | 로마 제국과 유대인들 |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유대인 | 유대교의 한계들 |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 | 세례 요한 | 역사적 예수 | 예수에 관한 초기 기독교 자료들 | 성경 사본들 | 예수의 가르침 | 예수 재판과 총독 빌라도 | 예수 운동과 유대교 | 사도 바울 |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 유대 기독교와 디아스포라 기독교 | 초기 기독교 공동체 | 영지주의 | 사랑과 정죄의 두 유형: 마르키온과 테르툴리아누스 | 몬타누스와 은사주의자들 | 정통과 이단 | 신약성경의 정경화 | 성직자의 탄생 | 정통 교회의 확립: 오리게네스와 키프리아누스 | 로마 교회의 탄생
2부 순교자에서 종교 재판관까지(250-450년)
밀라노 칙령 | 콘스탄티누스 황제 | 기독교와 로마 제국 |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 | 로마와 기독교의 제휴 | 기독교의 세속화 | 성직자 계급 | 도나투스파 사건 | 정통파와 분파주의 | 교회와 국가 | 삼위일체와 기독론 논쟁 | 종교적인 폭도? | 이교의 몰락 | 다마수스의 교권 강화 | 암브로시우스 | 히에로니무스 | 오리게네스 | 아우구스티누스 | 기독교 왕국을 위해서는 고문도 허용된다 |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 | 아우구스티누스, 중세의 선구자
3부 주교의 관을 쓴 군주들과 왕관을 쓴 성상들(450-1054년)
샤를마뉴 대제의 대관식 | 게르만족의 이동 | 주교 체제의 강화 | 그레고리우스 대제 | 성문법에 녹아든 기독교 | 기독교화, 로마화, 문명화 | 교회의 경제활동 | 사막의 수도사들 | 수도원 운동의 확산, 마르티누스와 카시아누스 | 아일랜드 수도원 | 베네딕투스 수도원 | 수도원, 농업경제의 핵심 | 시토 수도회 | 기독교 학문의 발전 | 문화의 전달자, 수도사들 | 유럽 문화의 기독교화 | 성물 숭배 | 성물과 타락 | 베드로와 로마 교회 | 황제교황주의 | 교황권과 왕권의 결합 | 샤를마뉴 대제 | 비잔틴 제국 | 동방과 서방의 세력 대결 | 불가리아의 개종 | 동방 정교회의 세력 확산 | 동?서방 교회의 분열
4부 왕권과 교황권의 대결(1054-1500년)
교권과 속권의 대결 | 세속권력의 위력 | 왕권과 교황권의 역전,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 | “세계는 하나의 교회이다” | 추악한 투쟁 | 절대권력이 된 교회법 | 헨리 2세와 베켓 | 주교권의 세속화와 쇠락 | 반성직주의의 출현 | 왕권과 교황권의 대결 | 교황권의 몰락 | 교회의 타락 | 성당 건축의 허와 실 | 성물들의 성소가 된 대성당 | 시골 지역의 미개한 기독교 | 고해성사 | 수도원의 흥망성쇠 | 정당한 전쟁 | 이슬람 세력 | 십자군 전쟁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나? | 십자군의 만행 | 십자군 운동의 실패 | 소종파들의 활동 | 종교재판 | 묵시적 종말론의 유행 | 급진주의자들: 천년왕국 운동과 평등공동체 운동 | 기독교의 위기와 대안
5부 프로테스탄티즘의 등장 (1500-1648년)
르네상스와 신학문 | 에라스무스 | 자국어 성경, 성경의 대중화 | 도덕 개혁과 제도 개혁, 에라스무스와 루터 | 평화주의적 개혁가 에라스무스 | 중세의 위기 | 마르틴 루터 | 협상 테이블에 앉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 | 장 칼뱅 | 양심에 관한 루터와 칼뱅의 입장 | 각 지역은 영주의 종교를 따른다! | 영국의 종교개혁 | 반종교개혁 | 트렌토 공의회 | 예수회, 가톨릭을 재건하다 | 예수회와 권력 | 종교재판소 | 마녀사냥 |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 제3세력의 등장 | 제3세력과 국왕들 | 세속 세계와 영적 세계가 분리되다
6부 신앙과 이성의 앙상블(1648-1870년)
기독교 권력의 소멸 | 기독교 합리주의자들 | 존 로크, 관용과 존중의 이름으로 | 지옥의 묵시록 | 교회에 스며든 계몽주의 | 블레즈 파스칼, 이성과 그 너머 | 볼테르의 도전 | 교황권의 약화 | 프랑스 교권의 허세와 몰락 | 이성 종교의 타락 | 나폴레옹의 화해 정책과 교황권의 부활 | 웨슬리와 감리교 | 복음주의자들 | 비평적 성경 연구 | 영국 국교회와 옥스퍼드 운동 | 예기치 않게 되살아난 로마 가톨릭 | 지옥의 공포 | 라므네와 로마 가톨릭 | 교황 지상주의와 대중주의의 독특한 결합 | 교황 무오류설
7부 거의 선택된 사람들(1500-1910년)
선교에 눈을 돌리다 | 라틴아메리카 선교 | 기독교는 어느 수준까지 원주민의 색채를 입을 수 있는가? | 선교사들의 독립운동 | 아시아에 눈을 돌리다 | 카스트 속으로 들어간 인도 선교 | 중국 선교, 과학을 선교의 무기로 | 일본 선교, 기대와 절망 | 신대륙에서의 위대한 승리 | 대각성 운동과 미국 정신의 형성 | 교리를 버리고 윤리를 택하다 | 미국 정부와 기독교 | 종교적 환타지 | 노예제 문제 | 프로테스탄트의 선교 사업 | 선교와 노예 무역 | 선교 제국주의 | 선교사들의 토착 문화 파괴 | 가톨릭 선교의 재개 | 선교와 폭력 | 지구촌 기독교화를 꿈꾸다
8부 끝나지 않은 역사(1870-1975년)
피우스 12세, 요새에 갇힌 교황 | 교황과 세속권력의 대결과 타협 | 교황주의자들 | 가톨릭이 우파의 손을 들다 | 피우스 10세, 교황청의 권위를 지켜라! | 가톨릭과 모더니즘 | 로마 교황청과 영국 국교회 | 제1차 세계대전과 무기력한 기독교 | 우파에 기댄 가톨릭 | 나치즘에 굴복한 기독교 | 히틀러가 기독교를 버리다 | 외로운 저항의 목소리 | 미국의 대중 기독교 | 아시아에서 기독교 토착화의 실패 | 아프리카의 토착 기독교 | 피우스 12세의 절대적 승리주의 | 요한 23세와 바티칸 공의회 | 성직자 독신제, 그리고 피임 문제 | 교회일치를 향하여
맺음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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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누가가 보기에 예루살렘 회의는 어느 교회에서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이 일이 지금껏 전개된 투쟁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고, 그 배후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두 개의 문제가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새로운 종교, 즉 진정한 종교를 창시했는가? 혹은, 달리 말해서, 그는 하나님인가 인간인가? 바울의 입장을 따른다면 기독교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그의 입장이 기각되었다면 예수의 가르침은 유대교의 한 종파에 그치고, 고대 신앙의 주류에 파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에 비해 성전은 타는 제물에서 나오는 연기로 자욱했고 여기저기서 겁에 질린 짐승들의 울음소리로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으며, 도살된 짐승들의 피가 배출구를 통해 흘러가면서 대단한 악취를 풍겼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은 그 규모만큼이나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마련해놓고 있었다. 한마디로 예루살렘 성전의식은 일종의 산업이었다. 그러니 디아스포라 유대교를 유대교의 전부로 알고 있었던 로마 지식인들의 입장에서는 팔레스타인에 파견된 로마의 관리들이 왜 그토록 유대인들을 혐오했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 후에 일어날 수 있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었다. 예수 운동이 유대교를 흡수하게 되리라는 기대가 하나의 가능성이라면, 좀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또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유대교가 기독교를 흡수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유대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종교였다. 유대교 체제는 전제적인 중앙집권 체제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유대교는 다양한 흐름(적극적인 열광주의자들로부터 소극적인 방관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향)을 용납할 수 있는 관용의 틀을 발전시켜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운동의 역동성은 너무나 크고 엄청나서 유대교 내부에서도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