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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97830763
· 쪽수 : 424쪽
· 출판일 : 2013-02-01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첫 수업 때 일이었다.
“그래서 대학은 갈 필요 없다고?”
“난 돈 버는 거 자신 있어. 어차피 돈 벌기 위해 대학 가는 거 아냐?”
“갈 필요가 없는 거야, 갈 자신이 없는 거야?”
“대학 따위 가고 싶지 않아.”
“대학은 가. 가고 그만두는 건 뭐라고 안 해. 하지만 가지도 않고 포기해 버리면 그건 네 평생의 콤플렉스가 될 거야.”
“누가 콤플렉스 따위를 가진다고 그래?”
“지금 발끈하는 건…… 콤플렉스 아냐? 좋은 대학을 가면 그만큼 돈 벌기도 쉬워. 기회가 더 많다는 이야기야. 당장 나만 봐도 좋은 대학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고수익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잖아?”
“그깟 돈 따위…….”
“그깟 돈? 지금 너한테 온 기회를 놓치지 마. 넌 지금 네가 얼마나 좋은 조건인지 몰라. 어차피 지금 당장 뭘 할 것도 아니잖아? 그럼 시간 낭비하지 말고 너의 능력을 시험해 봐. 설마 실패할까 봐 겁나는 건 아니겠지? 대학에 오면 기회는 더 많아. 더 많은 방법을 알려주거든.”
그 후로 민혁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공부…… 대학……. 한 번도 진중하게 고민했던 적이 없었다. 그저 공부가 싫었고, 따분했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부터 민혁이 공부를 하기로 한 이유는 미안하지만, 혜린이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설득한 내용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 종류의 설교는 수없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설교에는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민혁이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진짜 이유는, 바로 ‘이 여자가, 자신의 눈앞의 사랑스러운 이 여자에게 대학이라는 것이 중요하구나.’라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민혁은 혜린을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이 여자가 그토록 대학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한 번 가보지, 뭐.’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어차피 손해 볼 일은 그다지 없을 테니까.
“그래도 꾸준히 과제를 해 오는 거 보니까 기특하네.”
혜린이 희미하게 웃었다. 민혁은 그 웃음이 참 좋았다. 비록 희미한 웃음이지만, 그 움직임 하나에 민혁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혜린은 민혁이 제대로 과제를 해오는 것을 보자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그렇게 잠시 방어본능을 푼 사이에 민혁의 입술이 다가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본능적으로 피하려는 고개를 민혁이 꽉 잡았다. 부드럽게 달래듯이 입술을 톡톡 건드리며 동의를 구했다. 그 부드럽고 유혹적인 움직임에 혜린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민혁의 혀가 혜린에게 들어왔다. 먼저 치열을 핥으며 혀와 혀가 엉키기 시작했다.
격정적인 몸짓에 혜린도 슬그머니 빠져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폭죽이 터지는 듯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둘이 교감을 나눈 채 한동안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 영원 같은 시간 속에서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혜린이었다.
자신이 이럴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손이 벌벌 떨렸다. 쾌감을, 그것도 과외로 가르치는 학생에게 느껴 버린 자신이 원망스럽고 용서가 되지 않았다. 민혁 역시 충격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키스 한 번에 그대로 갈 뻔했다. 이 여자가 주는 쾌락의 늪이 상상보다 더욱 깊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 이런 기분은 생전 처음이었다. 내 여자다. 이 여자는 내 여자다.
탁!
혜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외는 그만둘게. 어머님한테는 내가 말씀드릴게.”
민혁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나가려는 혜린의 팔을 붙잡았다.
“안 할게, 이런 행동. 앞으로는. 그러니까 과외 그만두지 마.”
머릿속으로는 가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혜린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안 한다구. 절대. 내 말 믿어.”
너무나 간절해 보이는 말에 혜린은 주저앉아 버렸다. 그 순간 어이없게도 과외비가 생각난 것도 사실이다. 이미 과외비는 그녀의 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 후의 수업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혜린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나오는 대로 말하고 있었고, 민혁은 혜린의 얼굴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후…… 오늘은 이만 하자.”
혜린이 책을 덮고 일어서자 그제야 민혁이 혜린의 얼굴을 봤다.
“과외 그만두지 않을 거지?”
순간 민혁의 말에서 떨림을 느낀 건 착각이었을까? 그 간절한 바람에 혜린은 자신도 모르는 안도를 느꼈다.
“네가 약속만 지켜준다면.”
민혁이 씩 웃었다. 마치 여왕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기사처럼 밝게 웃으며 끄덕이는 민혁의 모습에 혜린은 조금 웃음이 났다. 아까 본 거친 사내는 이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애써 무표정을 가장했다.
“대신 약속해 줘. 대학 가면, 그땐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진심을 담은 맑고 검은 눈동자가 혜린을 바라보고 있다.
“약속해 줘.”
그 간절한 말에 혜린의 망설임이 길어졌다. 그럴수록 민혁은 더욱 초조했다. 긴 기다림 끝에 보일락 말락 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약속은 꼭 지켜. 그러니까…… 샘도…… 약속을 꼭 지켜줬으면 좋겠어.”
민혁으로부터 처음 나온 ‘샘’이란 말에 혜린은 살짝 웃음이 나왔다. 물론 민혁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혜린은 과외를 마치고 집에서 나오면서도 민혁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혜린은 또박또박 걸어가면서 애써 민혁의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나갔다. 어차피 과외가 끝나면 다시는 보지 않을 아이다. 등록금 내고, 그리고 공부할 수 있는 돈만 모이면 본격적으로 고시 공부를 할 생각이었다. 연애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