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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7871636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23-11-08
책 소개
목차
소금
물의 시간
불의 시간
시간의 시간
기억에 대한 존중
·작가의 말
·해설: 80년대가 궁금하다고? 그럼 오승연을 만나 봐-남정욱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기순이가 최루가스에 몸져누운 날, 집안에 승연 몸에 밴 매운 냄새가 진동하자, 아버지는 승연을 불러 앉혔다. 혹시 너, 데모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아버지 표정은 어느 때보다 무겁고 심각했다. 아버지는 짧게 말했다. 하지 마라. 괜히 남들 한다고 따라 하거나 남들 하는데 안 한다고 부채의식 같은 거 갖지 말고. 너희들이 학생 위치에서 공부 열심히 해서 나라에 기여하면 된다. 민주주의는 시간이 해결해, 피가 아니라. 데모로 민주주의 하자는 건 빨갱이들 발상이야.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우리 데모 안 해요.
총학생회에서 오더가 떨어졌다. 농반, 탈반, 산악회, 연극반 할 것 없이 동아리 소속 학우들은 10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있을 건국대 애국학생투쟁연합 결성식에 참여할 준비를 마쳤다. 시위, 집회 등은 동아리를 통해 조직적으로 동원되기 때문에 일반 학생들은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있던 학생운동권은 분열과 반목을 멈추고 투쟁 방향을 반미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조국통일투쟁으로 재설정했다. 애학투련 발족식을 거행하는 것은 대규모 연대투쟁을 전개할 목적이었다. 기순이 승연에게 동지로서 함께하자고 했다. 승연이 기순에게 동지라고는 했지만, 문제 속으로 같이 들어가자는 의미는 아니었다. 승연에게 동지란, 어려움에 처한 친구 곁을 지킨다는 뜻이었다.
희숙은 권지호에게 프랑스 혁명으로 자유, 평등, 인민주권의 질서가 확립되었고 근대 민주주의 기원이 이루어지면서 정치도 성장하게 되었다고 한 변태섭의 말을 자기 생각처럼 흘렸다. 권지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독일 공산당이 전멸하면서 유럽 좌익의 핵심이 프랑스가 된 거고 그러면서 전 세계 좌파를 수출하는 수출국이 된 거지. 무슨 민주주의 기원이야.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이 프랑스를 거쳐 러시아로 가게 된 것뿐이고. 암튼 그건 세계사적으로 보면 엄청 멍청한 짓이었어. 근데 말이지 좌익 공부하겠다는 사람들 말야, 러시아가 사회주의 본거지인 거 알면서 러시아로 가는 건 원하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러시아가 잘살아야 갈 맛이 날 텐데 못 사니까. 결국 사회주의 배우겠다는 명분으로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로 가서 살길 희망한 거지. 중국도 마찬가지고. 레닌이즘, 마오이즘이 태동한 나라에 가서 배우든 말든 해야 하는데 거지꼴하고 있는 나라는 가기 싫은 거지. 사르트르가 한참 소련을 빨다가, 문화대혁명을 높이 평가하면서 모택동 빨았잖아. 캄보디아 가서 200만 명 죽인 놈들의 학문적 아버지가 사르트르라잖아.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해? 사르트르가 계약 결혼한 걸 참신하다, 자유로운 영혼이다, 하는데 보봐르 거기 냄새 맡는 거 좋아하는 변태 새끼일 뿐이라고. 프랑스로 가겠다는 놈들 진짜 이유가 뭔 줄 알아? 프랑스가 성적으로 리버럴한 나라라서 그래. 융성한 문화? 예술의 나라? 미식가들 천국? 프랑스는 프리섹스가 발달된 나라야. 프랑스 미식이 왜 발달했는데. 식욕과 성욕은 같아. 그걸 즐기고 싶은 것뿐이고. 예술 어쩌구 하면서 외설 즐기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얼마나 좋아, 별짓 다 해도 예술이라 괜찮잖아. 언더스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