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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홍길동전

열녀 홍길동전

몰도비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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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홍길동전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열녀 홍길동전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04909504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16-09-23

책 소개

몰도비아 장편소설. "혹시 오래 굶었어? 아까 보니까 비틀거리던데?" "제가… 고통스러울 것이 걱정되었다는 겁니까?" 흡혈귀를 만나서 '배고프냐'고 묻는 여인과 흡혈귀를 걱정하는 인간을 처음 본 어린 흡혈귀가 만났다.

목차

서장
1장 열녀문착분자와 흡혈귀가 만나면?
2장 귀신놀이
3장 철없는 견우와 냉정한 직녀
4장 고래 싸움
5장 갈증의 의미
6장 고래 등을 터뜨린 새우
7장 결자해지
종장
외전

저자소개

몰도비아 (지은이)    정보 더보기
로맨스도 읽고 싶고 판타지도 읽고 싶은 자급자족형 글러. “작업 내내 제가 행복했던 만큼 모든 분들이 읽는 내내 행복하셨길 빌어봅니다.” 출간작 : 비현 / 파트너냐 도시락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여행자
펼치기

책속에서

배가 도착했다. 저 멀리 청나라에서 출발한 배였다. 갖가지 물건들을 부려놓는 짐꾼들과 돈 냄새를 맡은 이부터 신기하여 구경 나온 어린아이까지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머, 스님! 스님 하시기엔 너무 아까우시다.”
장터의 모든 이를 내려다 볼 수 있을 만큼 큰 키, 가느다란 눈매, 연지를 발랐다고 착각할 만큼 붉은 입술, 유달리 하얀 피부, 더불어 날렵한 턱 선을 가진 겸을 본 꽃다운 기생이 분내를 폴폴 풍기며 엉겨 붙었다. 비록 삭발은 하지 않았으나 더러운 장삼과 묵직한 바랑, 군데군데 이까지 빠진 푹 눌러쓴 삿갓은 영락없는 스님이건만 기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님, 배불뚝이 기름진 아저씨들 지겨워서 그래요. 화대는 받지 않을 테니 보시한다 여기시고 한 번 안 될까요?”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길목 한복판이건만 노골적인 말을 툭툭 내뱉는 기생이 벌써 세 명째였다. 겸의 반응은 세 번 모두 한결같았다. 그러나 세 번째 기생의 반응은 앞선 둘과 조금 달랐다.
“아이, 스님, 그러지 마시고…….”
기생은 냅다 겸의 손목을 잡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보다 겸의 행동이 더 빨랐다. 분명 나란히 있었건만, 한순간에 둘 사이는 서너 발짝 벌어졌다.
“어?”
기생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주변에선 아무도 기생과 스님 사이에 벌어진 기묘한 일을 알지 못했다. 그 때문에 도리어 자신이 뭔가 잘못 본 건가 하는 생각을 한 기생은 입을 앙다물었다. 그럴 만했다. 한동안 사내다운 사내를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다 늙어 산송장 치르게 생긴 노인네들만 내처 상대했더니 몸이 달아 있던 차였다.
“스니임, 그러지 마시고…….”
기생은 후다닥 달려와 다시 팔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스님은 어느 사이엔가 서너 발자국 저 멀리에 있었다. 꿈이라도 꾼 건가 싶을 지경이었다. 이 지경에 이르자 기생은 오기가 생겼다.
“스님!”
콧소리는 어디 갔을까? 냅다 소리 지른 기생이 다시금 달려와 팔을 뻗었다. 반복되는 행동에 슬슬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고 있었다. 삿갓 아래 드러난 겸의 붉은 입술이 살짝 비틀렸다. 동시에 기생에게 팔을 잡혔다. 기생은 드디어 해냈다는 기대감에 차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스님, 그리 빼지 마시고…….”
겸의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 기세에 놀란 기생은 스스로 팔을 놓았다.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차갑게 옷자락을 털어낸 겸은 다시 발을 놀렸다.
“형님! 어찌 되었소?”
앳된 얼굴의 애기 기생이 달려왔다. 얼굴엔 호기심이 가득이었다. 그러나 형님이라 불린 기생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형님?”
두려움에 잠식당한 기생이 털썩 주저앉았다. 장터 한복판이었다. 애기 기생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머, 형님!”
아우가 붙들고 일으켜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바들바들 떠는 그녀는 도무지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살기를 갈무리한 겸은 이미 저만치 가버린 후였다.

겸은 해 저물녘이 되었음에도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앞에 남은 것이라곤 산밖에 없었다. 마지막 인가가 분명할 주막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
“스님! 그 앞은 산중이라오! 쉬었다 가세요!”
친절한 주막 주모가 붙들었지만 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붉은 노을이 완전히 사라지고 새카만 어둠이 찾아왔다. 별이 총총 떠오르자 겸은 긴 한숨을 내쉬며 삿갓을 벗었다. 시원한 밤바람이 낮 동안 뜨겁게 달궈진 피부를 식혀주었다.
“하아, 이제 좀 살 만하네.”
비록 회복력이 더 빨라 목숨엔 지장이 없다 한들, 지속적으로 화상을 입고 치료되는 와중에 겪는 고통이 달가울 리 없었다. 진심이 가득 담긴 한마디를 내뱉은 그는 다시 삿갓을 쓰고 발길을 재촉했다. 통증이 사라진 덕분인지 훨씬 더 힘찬 발걸음이었다.
어느덧 깊은 산중에 도착했다. 잠시 발길을 멈춘 그는 가만히 숨을 죽였다.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에는 산중에 기거하는 짐승들의 기척이 실려 있었다. 슬쩍 미소 지은 그가 다시 발을 놀렸다. 아까와 확연히 다른 방향이었다. 놀랍게도 낙엽이 가득 깔린 숲길이건만,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속도 또한 바람처럼 빨랐다. 마치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그는 숲을 헤쳤다.
한참이 지나 도달한 곳은 커다란 동굴 앞이었다. 겸의 입술이 붉은 호를 그렸다. 그의 기척을 눈치챈 존재가 동굴 안에서 몸을 웅크렸다. 어둠 속에서 노란 안광이 번뜩였다. 나지막이 으르렁 소리가 들려왔다.
겸이 사라졌다. 뒤이어 들린 것은 켕, 하는 날카로운 비명뿐이었다. 잠시 후, 동굴에서 겸이 걸어 나왔다. 만족스러운 미소가 얹힌 입가에 붉은 핏물이 맺혀 있었다. 그는 장삼 자락으로 입가를 훑었다.
오랜만의 포식이었다. 배를 타고 오는 내내 명령이고 뭐고 한 명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갓 태어난 애송이였다. 정체를 드러내지 말라는 시조의 명령을 어길 만한 배짱이 그에게는 없었다.
겸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조선에 왔지만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정보는 단 하나, 한양에 가보면 된다는 것뿐이었다. 한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조선이라는 나라의 수도라 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가 아닌가? 더구나 아비인 시조의 명령조차 무시한 채 조선까지 내빼 버린 망나니 도련님이다. ‘나 여기 있소!’ 하고 알아서 나타나 줄 것 또한 아닌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던가?
한 번 더 길게 한숨을 내쉰 겸은 다소 흐트러진 삿갓을 바로 쓰고 장삼을 매만지더니 다시 길을 재촉했다. 어쨌든 명령을 어길 수는 없는 일. 뜨거운 태양이 다시 떠오르기 전에 한양에 도착할 심산이었다.

병조판서 한씨의 집은 대낮처럼 환했다. 그믐밤이건만 어찌나 불이 많은지 그믐인 것을 모를 지경이었다. 희한하게도 그들이 지키는 것은 병조판서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아니라 최근 한 씨의 며느리에게 하사된 「열녀전주이씨부인의문」이었다.
“말세야 말세. 감히 열녀문을 더럽히려는 자가 있다니 말일세.”
삼삼오오 모여 있는 병졸들은 하나같이 혀를 찼다. 감히 아녀자의 굳은 정절을 상징하는 열녀문만 골라 똥칠을 하는 자는 대체 어떻게 되먹은 작자란 말인가? 하도 남우세스러워 그자에 대한 이야기는 조정에서조차 공식적으로 언급하길 꺼리는 지경이었다.
둘러보던 상급자가 대문 안으로 사라지자 추위를 이겨보려 발을 동동 구르던 병졸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한데 그 소문 사실인가?”
“무슨 소문?”
“이씨 말이여, 고부 사이가 그렇게 나빴다면서?”
“아, 아들 잡아먹은 년이라고 아주 드잡이를 했지.”
“머리채를 잡았다고?”
“그것뿐인가? 삼년상이 끝나기 무섭게 냉골이나 다름없는 별채로 쫓아냈다던데? 이 추운 엄동설한에.”
“삼강행실도 열녀편인가 뭔가 하는 책을 베껴 쓰라고도 했다면서?”
“남편 죽고 따라 죽은 열녀들 이야기만 있는 그 책?”
“아주 죽으라고 고사를 지낸 셈이네.”
“죽자마자 바로 조정에 고한 것만 봐도 수상하지.”
“친정에선 가만있었다던가? 그래도 전주 이씨면 알아주는 양반일 텐데?”
“전주 이씨라서 문제지. 출가외인 아닌가.”
“하이고 이씨만 불쌍하네.”
“올해로 겨우 스물하나라던가…….”
“꽃다운 처자가 갔네그려.”
“아깝지 아까워. 한 미모 했……. 이게 뭐지?”
늙은 병졸이 허리를 굽혔다. 팔락팔락 새하얀 종이 한 장이 흙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병졸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한지에는 깨알 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게 뭐라고 쓰인 거야?”
나이 든 병졸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종이를 높이 들었다. 다행히 언문이었다.
“나, 나, 남의 딸 새, 새, 새…….”
“아, 이리 내봐요!”
이제 갓 병졸이 된 새파랗게 어린놈이 답답한 듯 홱, 종이를 낚아채서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남의 집 귀한 딸 생목숨 끊어내고 열녀문 하사받아 좋다고 하는구나. 정작 나는 원통하여 떠나지를 못하노니 대대손손 들러붙어 만세토록 저주하리!”
그는 자신이 술술 읽어낸 것이 뿌듯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때를 같이해 하늘에서 우수수 종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팔락팔락 춤추다 떨어진 한지엔 하나같이 깨알 같은 언문이 적혀 있었다. 모두가 같은 내용이었다.
“저놈 잡아라!”
벌컥, 병조판서의 집 대문이 열리고 창칼을 든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관아에서 차출되어 온 병졸들은 바짝 긴장하고 벽에 붙어 섰다.
“저기다!”
말 탄 군관이 소리쳤다. 그의 칼끝이 가리킨 쪽 지붕 위에서 검은 인영 하나가 휙 사라졌다.
“잡아라!”
깊은 밤, 추격전이 벌어졌다. 괴한은 어찌나 날렵한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 같았다. 그를 따르는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요란을 떠는 소리가 먼 곳, 겸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밤새 달린 겸은 산 밑의 다 쓰러져 가는 물레방앗간을 발견하곤 휴식도 취할 겸,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제아무리 목숨에 지장이 없다 한들, 화상의 고통을 겪으며 돌아다니는 건 굳이 또 하고픈 경험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좌를 하고 앉아 명상을 하던 겸은 소란스러움에 눈살을 찌푸렸다.
전쟁과 무관한 곳이라 조용할 것이라 여겼건만, 시끄럽긴 조선 또한 마찬가지란 생각을 하며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잠시 후, 달콤한 향기가 그를 온통 흔들어놓았다. 눈살을 찌푸린 겸은 소맷자락으로 코를 막았다.
믿을 수 없었다. 가임기의 여성 흡혈귀가 내뿜는 유혹 향이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달콤할 리 없건만……. 매혹적인 향기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위험했다. 분명 인간의 향기였다. 그 정도 차이쯤은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데도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흡혈 욕구가 스물스물 기어 올라왔다.
종종 어린 흡혈귀들 중에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람을 해치는 부류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나약한 인간 앞에서 자신들의 강력함을 과시하려는 것이지 절대로 흡혈 욕구에 굴복당해서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굶주렸다 한들, 그들 또한 이성을 가진 인간. 당연히 제어할 수 있어야 하는데…….
벌컥, 물레방앗간의 문이 열렸다. 검은 복면의 괴한이었다. 향기는 괴한에게서 뿜어지고 있었다. 겸은 황급히 기척을 지우고 숨을 멈췄다. 안에 누가 있는지도 모른 채 소리 없이 문을 닫은 괴한은 구석진 곳에서 보따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가 복면을 벗었다. 작고 도톰한 붉은 입술 사이로 연신 거친 숨이 뿜어졌다. 쫓기는 터라 한참이나 숨 가쁘게 달린 탓이었다. 덕분에 갸름한 얼굴 또한 온통 땀범벅이었다. 그러나 크고 둥근 눈동자는 지친 기색 없이 생생하게 빛나고 있었다.
괴한은 뒤이어 훌훌 옷도 벗었다. 검은 바지저고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겸은 한 번 더 당황해야 했다. 놀랍게도 그 속에서 드러난 것은 단단하게 가슴을 동여맨 한껏 성숙하고 무르익은 낭창낭창한 여체였다.
빠른 손놀림으로 치마를 걸친 괴한, 아니 여인은 상투를 풀고 손가락을 이용해 꼼꼼하게 머리를 빗어 땋아 내리더니 이내 쪽을 쪘다.
비녀까지 찌른 여인이 저고리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옷자락이 펄럭이며 여인의 향기가 더욱 진하게 풍겨 났다. 애써 지우고 있던 기척이 말짱 도루묵이 됐다. 겸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뿜어졌다.
속고름을 매던 여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순식간에 치마 속 단도를 빼서 날렸다. 당하고 있을 겸이 아니었다. 여전히 옷소매로 코와 입을 막은 채로 그 또한 날렵하게 몸을 날렸다. 단도는 그대로 벽에 박혀 버렸다.
날쌔게 달려든 여인이 발차기를 날렸다. 치마가 펄럭이며 체취가 휘날렸다. 겸으로서는 정신이 몽롱해질 지경이었다. 움직임을 멈추게 해야 했다.
“기다리십시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나쁜 사람이오, 하는 나쁜 놈도 있더냐?”
여인은 봐주지 않았다. 어느덧 단도를 뽑아 들어 인정사정없이 휘둘렀다. 당연히 그 칼에 당할 겸이 아니었지만 여인이 움직일 때마다 풍기는 체취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러다 여인을 살해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향기만 아니었다면 인간 여자 하나쯤, 제아무리 무예가 출중하다 한들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건만, 겸은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대치가 길어지자 채화 또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는 술에라도 취한 듯 휘청거리고 있었지만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놀리기라도 하는 듯 흐느적거리면서도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분명 단박에 자신을 제압하고도 남을 솜씨였거늘, 어째서인지 그는 그저 피하기만 했다. 어쩌면 정말로 나쁜 이가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려는 찰나,
“저기 저 방앗간도 뒤져보아라!”
자신을 쫓던 말 탄 군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낭패였다. 채화가 빠르게 말을 뱉었다.
“정말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서로 돕고 사십시다.”
채화의 공격이 멈추자 이제 살았구나 싶었던 겸이 되물었다.
“무엇을…….”
채화는 그대로 겸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쓰러뜨렸다. 우당탕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채화가 바닥에 눕고 그 위에 겸이 올라탄 모양새가 되었다. 몸싸움을 벌이느라 기껏 매어놓은 채화의 속고름은 풀어진 지 오래였고 겸의 장삼 또한 매무새가 엉망이긴 매한가지였다. 이게 뭐하는 거냐고 소리라도 지르려는 찰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꺅!”
여태껏 칼을 휘두르던 여인이 맞나 싶을 만큼 가냘픈 비명과 함께 채화가 황급히 앞섶을 움켜쥐며 일어나 앉아 몸을 돌렸다. 병사들이 들이미는 횃불에 붉은 눈동자가 들키기라도 할까 싶어 겸은 다급하게 눈이 부신 척, 팔을 들어 가렸다.
횃불을 든 병사들이 볼 수 있는 건 쪽찐 여인의 뒷모습과 엉망이 된 장삼을 입은 사내였다.
“허허, 스님 행세를 하는 놈 하나에 쪽찐 머리의 여인네라……. 말세네, 말세.”
병사들은 쯔쯔 혀를 차더니 방앗간을 대충 휘 둘러보았다.
“찾았느냐!”
군관이 들이닥쳤다. 채화는 크게 놀란 척을 하며 겸의 품에 안겨들었다.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건만, 채화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겸을 올려다보았다.
“수상한 사람은 없습니다요.”
“그럼 수상하지 않은 사람은 있단 말이냐?”
“아, 그것이…….”
병사가 우물쭈물하자 군관은 직접 확인하기 위해 방앗간에 들었다. 그리곤 눈살을 찌푸렸다. 정절이 무엇보다 높게 평가되는 시기였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정절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너, 어디의 누구지?”
“그냥 떠돌이입니다.”
겸은 무미건조하게 대꾸했다.
“팔을 내려봐.”
겸은 천천히 팔을 내렸다. 그 와중에 횃불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에 적당히 눈동자를 감추었다. 어차피 그러지 않았어도 알아보기 어려울 밤이었고 거리였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거기 여자, 너도…….”
“귀한 댁 부인입니다. 얼굴이 알려지면 시끄러워질 겁니다.”
겸이 말을 잘랐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저들이 쫓는 게 품 안의 여인인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냥 내어줄 수 없었다. 지켜야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그를 매혹시키는 향기가 어째서 나는 것인지 알아야 했다. 군관은 고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아직 말단이었다. 괜히 시끄러운 일에 휘말려서 좋을 게 없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는 이내 발을 돌렸다.
“가자.”
군관이 나가자 병사들도 한 번씩 혀를 차곤 그 뒤를 따랐다.
“그럼 재미들 마저 보시우.”
마지막으로 나선 이가 낄낄거리며 문을 닫아주었다. 그제야 문 바로 옆에 검은 복면과 옷가지가 나뒹구는 것을 발견한 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다시금 심장 철렁할 소리가 들려왔다.
“흡혈귀인가?”
겸은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무,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피부가 너무 차갑잖아.”
채화는 옷고름을 매며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혹시 오래 굶었어? 아까 보니까 비틀거리던데?”
겸은 당혹스러웠다. 아직 조선에는 흡혈귀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위의 일족이 오래도록 터를 잡은 청에서조차 흡혈귀의 존재는 미신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토록 당연하다는 듯 묻는 여인이라니?
매무새를 바로잡은 채화가 왼팔을 내밀었다.
“피가 필요해?”
겸은 얼른 특유의 무표정을 되찾았다.
“무슨 말씀을…… 뭘 하시는 겁니까!”
다급하게 소리 지른 겸이 얼른 채화의 오른팔을 잡았다. 그 손엔 아까의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여전히 왼쪽 손목을 내민 채였다.
“상처를 내야 피가 날 거 아냐. 당신, 오래 굶은 것처럼 보여.”
“그러다 죽습니다!”
채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죽을 만큼 필요한 건 아니라고 들었는데?”
겸은 혼란스러웠다. 지금 흡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인정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겸은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칼로 손목을 그으면 당연히 죽지 않겠습니까?”
채화는 물끄러미 겸에게 잡힌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겸 또한 화들짝 놀라 팔을 풀었다. 햇빛을 막기 위해 감았던 천을 답답하여 풀어둔지라 맨손이었다. 잡힌 채화의 손목 또한 맨살이었다. 체온이 그대로 전해졌을 것은 당연지사였다. 채화의 시선이 다시 겸의 얼굴로 돌아왔다. 정확히 겸의 눈동자를 향한 시선이었다. 겸은 침을 삼켰다. 다행히 어두워 확인될 리 없었다.
“붉은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 채화는 이내 몸을 돌렸다.
“몰라. 본인이 필요 없다는데 뭐 알아서 하겠지.”
기운차게 움직여 복면과 옷가지를 챙겨 든 채화가 먼지를 팡팡 털어내더니 보자기에 쌌다. 그리곤 막 문을 나설 것처럼 보였는데 홱 몸을 돌렸다.
“필요하면 찾아와. 엄한 사람 죽이지 말고. 피 빨려 죽은 시신이 나왔단 소문이 돌면 내가 너를 찾아서 죽일 테니까.”
씩 웃으며 던진 말이었건만 겸은 그 속에 담긴 살기를 확실하게 잡아냈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전 흡혈귀가 아니니까요.”
“흐응, 그걸 증명하고 싶다면 환한 대낮에 날 찾아와야 할걸?”
채화는 뭐가 그리 재미난지 깔깔거리며 웃더니 문을 열었다. 어느덧 희뿌옇게 사방이 밝아오고 있었다. 채화가 뿌연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가 멀어지자 체취 또한 당연히 멀어졌다. 그녀의 체취가 멀어질수록 겸의 머릿속은 차가워졌다. 천천히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겸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여자는 흡혈귀를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낮은 체온, 붉은 눈동자, 흡혈 습성까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분명 누군가를 만난 적이 있는 것이다. 겸이 아는 한 조선에 있는 흡혈귀는 자신과 망나니 도련님 류뿐이었다. 어쩌면 그녀가 류의 친구일지도 몰랐다. 체취에 대한 문제는 그저 덤이었다.
결론을 내린 겸은 단단히 무장을 했다. 삿갓을 깊게 눌러쓰고 두툼한 장삼을 걸쳤다. 낡디낡은 천으로 손가락 하나하나 일일이 감쌌다. 한겨울이기에 가능한 위장 아닌 위장을 마친 겸은 조심스럽게 방앗간을 나섰다. 바깥은 어느새 환해져 있었다.

채화는 산길을 걷고 있었다. 아직 푸름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한겨울 풍경이었지만 봄이 멀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졸졸졸 물 흘러가는 소리가 기분 좋았다. 점점 더 깊은 숲으로 찾아드는데 팡팡, 깊은 숲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멍하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걷고 있던 채화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빨랫방망이 소리였다. 역시나, 이제 겨우 얼음이 녹은 냇가에서 낯익은 이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아니 형님, 이 엄동설한에 아침부터 빨래를 해요?”
“그간 못 한 빨래가 산더미야.”
“이리 주세요. 제가 할게요.”
채화는 냉큼 다가가 방망이를 빼앗았다.
“됐어. 내 빨래를 왜 네가 해?”
“한 살이라도 젊은 내가 낫지 않겠어요? 날이 이리 추운데 할망구 손가락이 버티겠어?”
“이년아! 너나 나나 몇 살이나 차이 난다고?”
“십 년이면 많지.”
채화는 넉살 좋게 주저앉아 물속에 빨래를 넣고 흔들어댔다. 손이 시렵다 못해 아플 지경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때껏 빨래를 하고 있던 중년의 안산댁은 이렇게 남편의 기일 즈음만 되면 자신을 혹사시키곤 했다. 한동네에 사는 터라 그 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해마다 미안해.”
“별게 다 미안하네.”
“어젯밤에 일은 잘했어?”
“그럼요.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잖아요?”
안산댁은 채화가 아무렇게나 던져둔 보퉁이를 쳐다봤다.
“대단하네. 나도 오라비들 배울 때 따라 배울걸, 계집아이는 글이고 무예고 다 필요 없다고…….”
“대신에 형님은 음식을 잘하잖아요? 내가 한 음식이 어디 사람 먹을 음식인가? 형님 아니었음 나는 오래전에 굶어 죽었을걸?”
안산댁이 킬킬거렸다. 얼마 전 채화가 귀한 미역을 구해다 국을 끓여준 기억이 났다. 안산댁의 생일이었다. 억지로 웃으며 먹긴 했는데 그게 그대로 얹히는 바람에 사흘을 고생했었다. 채화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었다. 죽은 서방도 그랬었는데…….
“자, 다 했어요.”
멍하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안산댁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벌써?”
“벌써는? 혼자 또 딴생각해 놓고 나 심심하게.”
“미안해.”
안산댁이 배시시 웃으며 함지를 받아 이었다. 채화가 안산댁을 도왔다.
“넌 안 가?”
“일이 좀 있어요.”
“일?”
안산댁이 이 산중에, 이 아침에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채화는 생글거리기만 했다. 안산댁의 얼굴에 걱정이 묻어났다.
“뒤를 밟힌 거야?”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조심해…….”
안산댁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안산댁이 저 멀리 사라지도록 멀거니 서 있던 채화의 뒤로 겸이 모습을 드러냈다. 홱 몸을 돌려 득달같이 달려든 채화는 겸의 멱살을 잡더니 그대로 날아올라 물속에 처박았다. 첨벙, 찬물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겸은 당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몰래 따른 것도 아니다. 그녀를 발견한 후로 줄곧 부러 기척을 드러내고 있던 참이다. 처음엔 뭔가 딴생각이라도 하는지 알지 못하는 듯했으나 빨래를 시작한 후론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단 사실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당신 미쳤어? 내가 아무리 증명하랬다고 이렇게 훤한 대낮에 돌아다녀?”
채화의 말을 듣고 나서야 겸은 그녀가 왜 이런 기이한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괜찮다고 대답을 해줘야 했다. 그러나 채화가 겸을 놓아주지 않았다. 물속에서 나오려고 하면 자꾸만 내리눌렀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물고문이라도 당하는 줄 알 만한 모양새였다. 겸은 에라 모르겠다, 몸에 힘을 뺐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여인이었다.
겸을 물속에 처박아 놓고 사방을 두리번거린 채화는 다시금 날아올랐다. 겸의 멱살을 그대로 움켜쥔 채였다. 순간 겸은 짐짝이 된 것 같은 현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날렵하게 몸을 날린 채화는 가까운 산막 안에 겸을 집어 던지다시피 했다. 드디어 채화의 손아귀에서 놓여난 겸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화상은 입을지언정, 생명에 지장을 주진 않습니다.”
채화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겸은 그녀의 그런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채화가 툭 내뱉었다.
“화상을 입을 때 아프잖아.”
겸은 당혹스러웠다.
현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땅에서 흡혈귀는 그저 괴물에 불과했다. 인간들은 흡혈귀를 발견하면 무슨 수를 써서든 찢어 죽이고 태워 없앴다. 그래서 겸은 채화의 반응이 당혹스러웠다.
“제가…… 고통스러울 것이 걱정되었다는 겁니까?”
“나도 알아. 자체 치유력이 상상 이상이라 화상을 입는 속도보다 치유되는 속도가 빠르다는 거, 특히나 이런 계절에는, 하지만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잖아? 왜 스스로를 고문해?”
채화는 마치 상상이라도 되었다는 듯 몸을 떨었다. 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깊은 물 속에 겸을 처넣으려다 보니 채화 또한 물에 젖은 상태였다. 뚝뚝, 물을 떨구는 모양새가 흡사 물에 빠진 생쥐였다.
“그래서 이 엄동설한에 스스로 물에 뛰어든 겁니까? 일면식도 없는 인간…… 아니, 흡혈귀가 고통스러운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채화는 마치 그제야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다는 듯 흠칫 떨더니 산막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냇가에 팽개쳐 있던 자신의 보따리를 챙겨 들어왔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다는 듯 훌훌 옷을 벗기 시작했다. 만난 지 반나절도 안 됐는데 벌써 두 번째라……. 겸은 혀를 찼다.
속바지와 가슴띠만 남게 되었음에도 채화는 더 벗을 기세였다. 아마 젖은 것을 몽땅 벗어버리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민망해진 겸이 헛기침을 했다. 채화가 잠시 하던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더니 이상하단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 인간 여자한테 관심 없는 거 아냐?”
“관심이 없는 것과 민망한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
채화는 멈칫했다. 그제야 얼굴이 빨개졌다. 참으로 이상한 여인이라 여기며 겸이 몸을 돌렸다.
“보지 않겠습니다.”
“그, 그래.”
겸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뭔가 이 상황이 그냥 유쾌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 됐어.”
겸이 다시 몸을 돌렸다. 채화는 간밤의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다시 야무지게 묶어놓은 보따리에 물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니 젖은 옷을 죄다 벗어버린 모양이었다. 순간 ‘속옷은……’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눌러 참았다.
“그래서 왜 따라온 거야? 흡혈귀가 아닌 것을 증명하려는 건 아닌 거 같고…….”
채화가 겸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산막 안은 어둑했지만 알아보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었다. 채화에 의해 이리저리 던져지는 와중에 삿갓은 뒤로 훌렁 넘어간 지 오래였다.
“굳이 감출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왜 왔는데?”
“흡혈귀에 대해 어찌 그리 잘 아는지 물어보러 왔습니다.”
“아…….”
채화는 조금 난처한 얼굴을 했다.
상대가 흡혈귀임을 알아챘던 간밤에 채화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본인이 배고팠던 때의 기억이었다. 동시에 상대 또한 배가 고플 거라 생각하고 보니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랬던 건데…….
“말하기 곤란한데…….”
“어째서입니까?”
“녀석이 그랬거든. 자신을 찾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그래서 혹시 누가 물으면…….”
채화는 또 아차 하며 입을 다물었다. 겸이 씩 웃었다.
“이미 늦으셨습니다.”
“알아.”
채화는 무척 난처한 얼굴이었다.
“그러니 그냥 말해주세요. 그 흡혈귀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안 알려줘.”
“류 맞지요?”
채화가 흥, 고개를 돌렸다. 겸은 확신했다. 채화의 눈썹과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은 분명히 겸의 물음에 대한 당황이었다. 겸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어차피 조선에 흡혈귀는 저와 그 사람 단둘뿐입니다. 당신이 흡혈귀를 보았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중요한 증거인 셈이지요.”
“그래서 뭘 어쩔 건데? 고문이라도 해서 알아내려고? 그래도 소용없을걸? 난 정말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그냥 가끔 서로 생사나 확인하는…….”
채화는 또 아차 하며 입을 다물었다.
“종종 연락이 오는 거군요? 가끔 만나기도 할 테고.”
채화는 또 흥, 고개를 돌렸다. 이미 때늦은 행동이었다. 씩 웃은 겸이 다시금 드러난 맨살이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한 후 삿갓을 눌러쓰곤 산막 문을 열었다.
“그럼 가보실까요?”
“어, 어디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이봐?”
겸은 이미 밖으로 나간 후였다. 채화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냉큼 그 뒤를 따랐다. 아무리 봐도 고문할 생각인 건 아닌 듯 보였다. 그럼 대체 무얼 하려는 것일까?
“이봐! 거머리 양반!”
앞서가던 겸이 홱 몸을 돌렸다. 잔뜩 찡그린 얼굴이었다.
“말이 좀 심하십니다.”
“어…… 미, 미안해.”
채화는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 심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심으로 사죄했다.
“그치만 뭘 어쩌려는 거야? 설마…… 아니지?”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이제 막 건너온 참이었지만 조선에 대해서 대충은 알고 있었다. 여인네의 정절이 중시되는 시기, 남녀가 유별한 세상,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여 일곱 살만 넘으면 친오라비와 아비가 아니면 사촌조차 사내는 만나보기 어려운 세상. 겸은 자신이 생각한 방법이 채화에게 효과적인 고문이 될 거라 여겼다. 쪽찐 머리, 필시 부인네였다.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런데 채화의 반응이 묘했다.
큭큭큭,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왜 웃으십니까?”
“정말 같이 살려는 거야?”
“표현이 이상하군요. 전 그저 머물 생각일 뿐입니다. 그가 연락을 해올 때까지.”
“후회할걸?”
겸은 어리둥절했다. 후회할 것은 자신이 아니라 여인이어야 했다.
“제가 후회를 할 거란 말인가요?”
채화는 대답하지 않고 휙 겸을 지나쳐 갔다. 순간 또 달콤한 향기가 풍겼다. 물속에까지 들어갔다 나왔거늘……. 겸은 이를 악물고 채화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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