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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이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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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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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맛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04909924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16-11-01

책 소개

심이령 장편소설. 갑작스러운 사고로 윤은 아버지를 잃는다. 그리고 만나게 된 백시환이란 남자.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히, 혹은 운명처럼, 그리고 어쩌면 남자의 의도대로였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활고와 고모 내외의 일로 힘들어하는 윤에게 시환은 돌파구가 되어준다. 그의 곁에서 머물며 윤은 그와 사랑에 빠지고….

목차

1. 4월은 잔인한 달
2. 맛없어, 너
3. 어른 남자
4. 노사 관계
5. 만화
6. 동거하는 건가요?
7. 허기진 기억
8. 맛있는 섹스
9. 겨울이 오히려 따뜻했다
10. 암연
11. 힐링 캠프
12. 정결한 여신
13. 꿀맛

저자소개

심이령 (지은이)    정보 더보기
만화스토리작가로 오래 활동하다 장르문학에 상륙. 무인도에 가서 소설만 쓰고 싶다. 가져갈 것. 노트북, 커피, 그리고 바흐의 샤콘느.
펼치기

책속에서

빠앙, 날카로운 경적 소리가 횡단보도에서 들려왔다. 보행자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뀐 찰나였다. 차도의 1차선에 있는 진한 감청색 승용차가 바로 그 소리를 낸 것의 정체였다. 차는 급제동을 잡았음에도 횡단보도를 반쯤 침범한 채였고 그 앞에는 여자가 주저앉아 있었다. 주변의 차들은 일시정지를 했다가 다시 천천히 움직이고 그 차들의 운전자들이 밖을 내다보았다. 감청색 승용차에 막힌 차들만이 빵빵, 경적 소리를 내거나 차선을 바꾸었다.
감청색 차에서 남자가 내렸다. 서른 살 전후의 남자였다. 그는 사고를 낸 사람 같지 않게 전혀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 없이 차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 앞에 있는 여자가 도리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청바지 차림에 끈이 긴 숄더백을 품에 안은 여자는, 그러나 다친 것 같지는 않고 그저 놀란 듯했다. 그런 그녀는 이내 뒤로 고개를 돌려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여자가 말했다. 이어 ‘제가 급해서’라고 말하며 황망히 일어서다 그만 비틀했다. 여자는 중심을 잡기 위해 남자에게 손을 뻗었지만 그는 오히려 뒤로 슬쩍 물러났다. 털썩, 여자는 도로 주저앉았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안 부딪친 거 압니다.”
남자는 정중하면서도 냉정하게 여자의 말을 잘랐다.
“그게 아니라 한강병원엘 가야 해서요…….”
여자는 주저앉은 채로 중얼거리다 말끝을 흐리는 중에 눈을 부릅떴다. 잊고 있던 것을 급히 생각해 낸 것처럼. 여자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여자는 사뭇 당당하게 말했다.
“한강병원에 가서 검진 받아야겠어요.”
남자는 대꾸 없이 돌아서서 운전석의 문에 손을 댔다. 그사이 여자도 움직여 조수석으로 뛰어들었는데 남자보다 먼저 자리에 앉았을 정도로 재빨랐다.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별다른 반응도 보이지 않고 즉시 차를 출발시켰다. 남자의 감청색 차가 지나간 도로는 어느 여자대학교 앞이었다.
차 안은 조용했다. 남자는 운전만 하고 여자는 창밖을 주시했다. 정말 한강병원으로 가는지 확인하듯 여자는 눈을 부릅뜬 채로 십 분이나 버티었다. 그런 여자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칠 쯤 앞 유리창 너머로, 우뚝 솟은 흰색 병원 건물이 보였다. 여자는 그제야 남자에게 슬며시 눈길을 던졌다. 남자는 앞만 보고 있었다. 이마의 반을 가린 머릿결이 다소 흐트러져 있어 여자의 시야에 남자의 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 머릿결 아래에 오뚝 솟은 코끝이, 마침 창밖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온 오후의 햇살과 만나 반짝 빛을 낸 것이 여자의 눈에 담긴 모든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여자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제가 급해서……. 죄송합니다. 응급센터 앞에 세워주세요…….”
말끝에 목소리가 잦아든 여자는 정말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남자는 대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여자에게 잠시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여자는 병원이 가까워 온 것을 보고 나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 손을 넣어 더듬더듬 지갑을 찾아, 그 안에서 지갑을 열고 천 원 지폐를 눈으로 확인 후 손끝으로 그 수를 셌다. 일곱 장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지폐를 손끝으로 잡고만 있을 뿐 지갑에서 꺼내지 못한 채 망설였다. 남자에게 힐끔 눈길도 주었다. 그사이 남자는 병원의 정문으로 차를 몰고 들어섰다. 여자는 지갑을 놓고 다이어리로 보이는 손바닥만 한 노트를, 역시나 가방 안에서만 잡아 펼쳐 한 장을 찢었다. 그리고 볼펜을 찾은 후에야 가방에서 손을 빼 종이 위에 뭔가를 재빨리 적었다. 때맞춰 남자가 응급센터 앞에 차를 세웠다.
“꼭 연락주세요. 사례할게요.”
여자는 종이를 반 접어 옆에 놔두고 문을 열었다. 이어 ‘고맙습니다’ 하는 말을 끝으로 차에서 내리자마자 급히 응급센터로 뛰어들어 모습을 감췄다. 남자는 차의 시동을 끄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의 도착지도 이곳인 모양이었다. 남자는 바로 내리지 않고, 여자가 놓고 간 종이로 눈을 옮겼다. 반 접힌 종이었지만 굳이 그것을 들어 펴 보지 않아도 그 안에 적힌 것을 다 볼 수 있을 만큼 벌어져 있었다. 마구 휘갈긴 글씨체로 휴대폰 번호와 함께 ‘소윤’이라 쓰여 있는 것을.

응급센터의 대기실은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웠다. 대기용 벤치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고 통로마저 사람들이 채우고 있어 그 사이를 지나려면 좋든 싫든 서로의 몸을 버겁게 스칠 수밖에 없었다. 윤은 그렇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흰 가운의 의료진들이 보이는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응급실 안에서 잠깐 두리번거리던 윤은 이내 한쪽에 눈을 고정했다. 그곳에서는 자동제세동기를 겸용한 심폐소생 중이었다. 매우 위급한 환자임이 분명했다. 윤은 불안과 초조의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그 환자를 보기 위해 기웃거렸다. 그리고 삼십대의 남자인 것을 확인하고는 짧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저기요…….”
윤은 제 앞을 지나는, 흰 가운의 남자에게 급히 말을 붙였다.
“전화 받고 왔는데요. 우리 아빠가 교통사고라는 전화요. 아빠 성함은 소재성이구요…….”
“잠시만요…….”
흰 가운의 남자는 그 말만을 하고 윤을 비켜 갔다. 알아보겠다는 것인지, 저 바빠서 그저 제 갈 길을 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윤은 마른침을 삼키며 주위로 눈을 돌렸다. 몇 개의 침대마다 환자들이 누워 있었다. 그중 의료진이 보이지 않는 침대로, 윤은 끌리듯 발을 움직였다. 환자의 얼굴까지 시트로 덮어놓은 침대였다. 그 시트 밖으로 피투성이의 손 하나가 빠져나와 침대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손을 윤은 빤히 보았다. 꼼짝도 않고,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바삐 돌아가는 응급실의 풍경 속에서 흡사 그녀 혼자만이 정지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털썩! 윤은, 그녀의 곁을 스치는 바쁜 움직임들 속에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응급실로 한 남자가 들어섰다. 윤을 감청색 차에 태웠던 남자였다. 그는 주저앉아 있는 윤의 뒷모습을 힐끔, 그저 응급실 안을 눈으로 훑다 우연히 얻어걸린 무엇을 스치듯 하고서는 이내 모니터 앞에 있는 젊은 의사에게로 가 말을 붙였다. 그런 그의 모습은 윤을 그의 차에 태운 기억조차 없는 사람 같았다.
“한지영 씨의 보호자 되시나요? 성함이…….”
의사가 모니터에 눈을 두고 물었다.
“백시환입니다.”
“환자와는 어떤 관계시죠?”
시환은 잠깐 머뭇거렸다. 이어 아주 건조한 목소리로 ‘어머니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지금 응급수술 중이에요. 2층입니다.”
2층에 있는 수술실의 유리문 앞은 바삐 돌아가는 응급실과 다르게 조용했다.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평온보다는 위태로운 긴장을 간직한 구역이었다. 시환은 커다란 검은색 비닐 백을 들고 그 구역으로 들어왔다. 그는 먼저 유리문 앞을 잠시 서성거렸다. 이어 빈 벤치로 가 손에 든 비닐 백을 그곳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비닐 백을 다시 들고 그 구역을 벗어났다.
시환은 제 차를 세워두었던 응급센터 근처의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차의 문을 열었다. 안에 비닐 백을 던졌다. 다시 문을 닫으려던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손을 뻗어 비닐 백의 입구를 벌려보았다. 안에는 악어가죽으로 된 여자용 핸드백이 들어 있었다. 찌그러지고 상처 난 모습이었다.
병원 정문으로 끊임없이 차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바람이 많이 부는 4월의 날씨는 사람에 따라 활동하기 딱 좋기도, 혹은 옷깃을 여며야 하기도 했다. 병원 건물을 나온 시환에게는 전자였다. 앞을 열어 입은 그의 검은색 점퍼를 바람이 확 뒤집어놓았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옮겨 정문을 나와 차도를 건넜다. 맞은편에는 규모가 큰 약국이 가장 잘 눈에 띄었다. 시환은 그 약국을 지나 오 분을 더 걸었다. 카페가 보였다. 네 개의 노천 테이블을 갖춘 그곳으로 들어간 시환은 잠시 후에 종이컵을 들고 나와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담배 먼저 찾아 물었다. 바람을 막고 불을 붙이느라 두 손을 라이터에 꼭 붙이니 얼굴이 모두 손에 가려졌다가 연기와 함께 다시 드러났다. 오후의 햇살을 정면으로 받아 눈살을 살짝 찌푸린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담배 한 대를 다 피울 동안 햇살을 피하지도, 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어느덧 땅거미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거리는 자연의 빛 대신 인조의 빛을 하나둘 늘려갔다. 시환은 카페의 노천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비어 있는 종이컵과 검은색 커피 찌꺼기가 담긴 재떨이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들은, 그가 그 자리에 오래토록 앉아 있었음을 대신 보여주었다. 그렇게 짧지만은 않은 시간 동안을 있으면서도 그는 무료한 시간을 달랠 휴대폰조차 손에 들고 있지 않았다. 그저 거리에 눈을 두고 있을 뿐 특별한 움직임도 없었다. 그러던 그가 비로소 일어나 점퍼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을 때는,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 그의 휴대폰은 벨소리와 함께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백시환 씨 휴대폰이죠?]
휴대폰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텁텁한 남자의 그것이었다.
“네.”
[경찰입니다. 한지영 씨가 낸 사고에 대해 조사 중인데요.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그래요? 저도 지금 병원입니다만……. 한지영 씨 차에 동승했던 분의 유족을 먼저 만나 뵙고 수술실에 올라가 봤는데 아무도 없던데요? 병원 어디에 계신가요?]
“수술은 끝났나요?”
[네? 글쎄요……. 다시 내려와서…….]
경찰의 목소리는 그것을 왜 저에게 물어보느냐는 듯 다소 황당해하는 뉘앙스를 실었다.
[암튼 병원에 계시면 일단 좀 뵙죠. 수술실 앞에 있겠습니다.]
시환은 카페로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 걸었다. 급히 서두는 것도 없이, 왔을 때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걸음으로 병원의 2층 수술실 앞으로 돌아왔다. 마흔 살 전후의 사복 경찰은 수술실 앞의 벤치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고 있다가 시환을 보고 일어났다. 그는 먼저 제 신분증을 보이며 소속과 이름을 밝혔다.
“이걸 보세요.”
경찰은 제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파손된 흰색 승용차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한지영 씨의 차가 맞죠?”
“그럴 겁니다.”
시환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한지영이 운전하는 차가 느닷없이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에서 오던 레미콘 차와 충돌했고, 옆자리에 동승한 사람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숨졌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혹시 소재성 씨라는 분을 아십니까?”
경찰은 사고에 관한 설명 후 물었다.
“모릅니다.”
“한지영 씨 차에 동승했다 사망한 분인데요. 그쪽 유족도 한지영 씨를 전혀 모르더군요.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경찰은 시환에게서 어떤 말이라도 이끌어내려는 듯 그의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지만 그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사고를 당한 이의 가족이면 경찰에게 이것저것, 성가실 정도로 묻는 것이 보통인데 시환은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확인해 보니 차에 블랙박스가 없더군요.”
경찰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한지영 씨가 음주 상태였는지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한지영 씨의 혈액을 국과수에 의뢰하려고…….”
말끝에 경찰은 수술실을 힐끔 쳐다봤다. 때마침 수술실의 문이 열렸다. 녹색 가운을 입은 의사는 마스크를 벗으며 나와 시환과 경찰을 번갈아 보았다. 경찰이 시환을 가리키며 한지영의 보호자라 알려주었다. 시환은 그제야 의사 앞으로 한 발 움직였다.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의사는 신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상태가 중하고 특히 후두부 손상이 커서 지금으로선 딱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 경과를 지켜봅시다.”
의사의 말을 들은 시환은 애매한 고갯짓을, 그것도 희미하게 해 보였다. 알았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제 심정을 표현한 것인지 분명치 않았다. 환자의 보호자가 흔히 하는 질문인 ‘살 수 있느냐’ 그는 묻지 않았다. 꼭 ‘살려 달라’는 부탁의 말도, 심지어 ‘수고하셨다’는 의사에게 하는 의례적인 인사말조차 없었다. 오히려 의사가 잠시 기다려 주었음에도 그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의사는 물러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다른 의사가 나왔지만 그는 시환과 경찰에게 별다른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가버렸다. 시환과 경찰은 말없이 기다리고만 있었다. 이윽고 수술실 문이 다시 열렸다. 수술에 참여했던 남녀 의료진 세 명이 환자 이송용 카트인 스트레처 카와 함께 나왔다. 둘은 그것을 밀고 하나는 환자와 긴 호스로 연결된 여러 개의 팩을 높이 들고 있었다. 시환과 경찰은 스트레처 카 위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로 곧장 눈길을 던졌다. 아직 마취 상태의 여인은 머리에 붕대가 감겨 있었지만 얼굴에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때문에 사십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나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으며 또 매우 미인이었다. 의료진이 끄는 스트레처 카는 승강기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길에 경찰은 한지영의 혈액을 채취해 달라고 의료진에 주문했다. 그리고 시환에게는 ‘다시 연락드리죠’ 하고서 승강기 문이 열리기 전에 물러갔다.
한지영은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의료진은 시환에게,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려면 두세 시간은 걸린다고, 깨어나서의 예후가 중요하다고 했다. 시환은 중환자실을 나와 다시 병원 건물을 뒤로했다. 다시 차도를 건너, 규모가 큰 약국에서 이번에는 그 앞을 지나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 가장 먼저 눈에 띈 식당으로 발을 들였다.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난 때라 식당 안은 한산했다. 자리에 앉은 시환은 벽에 붙은 메뉴를 쳐다봤다. 우거지와 콩나물 해장국밥, 그리고 부대찌개를 포함한 찌개류가 그곳에 나열돼 있었다. 물병과 컵을 가져와 시환의 테이블에 놓고 돌아선 아줌마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주문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틀림없는데도 시환은 여전히 메뉴에 눈을 고정한 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뭐…… 드려요?”
기다리다 못한 아줌마가 물었다.
“해장국 주세요.”
한참을 고른 사람 같지 않게 시환은 선뜻 대답했다. 비로소 벽에 붙은 메뉴에서 눈도 떼었다.
“무슨 해장국이오?”
아줌마가 묻자 시환은 다시 메뉴로 눈을 옮겼다. 그러자 아줌마는 재빨리는 ‘우거지 해장국이 맛있어요’ 했다. 시환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것을 달라는 뜻을 전했다. 식사가 나오는 동안 시환은 휴대폰을 꺼내 놓고 문자를 작성해 어디론가 보내고 또 받았다. 식사가 나온 후에도 계속이었다. 식사 시간은 아주 길었다.
식당을 나온 시환은 걸어서 대형 약국을 지나, 몇 시간 전에 갔던 그 카페의 노천 테이블에 앉았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밤이 깊어 거리를 지나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시환은 시간을 확인하고 일어섰다.
시환은 창 너머로, 한지영의 침대 주변에 의료진이 모여 있는 것을 먼저 확인했다. 한눈에도 위급 상황임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시환은 별로 서두르지 않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지영은 몹시 괴로워하는 얼굴이었다. 심전도 그래프는 다소 불안정했다. 마취에서 깨자마자 발작이 있었다고 의사가 시환에게 설명했다. 급한 조치는 취했고 더 이상 해볼 수 있는 것이 없다고도 했다. 시환은 별다른 대꾸 없이 지영의 얼굴에 눈을 두고만 있었다. 지영의 머리맡에 있던 간호사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마치 임종의 자리를 비켜주듯. 시환 또한 자연스럽게 그 자리로 다가갔다. 때맞춰 지영의 눈꺼풀이 열렸다. 바르르 떨리는 눈꺼풀은 또한 몹시 힘들게 반만 올랐다. 그 반 틈 사이로 드러난 검은 눈동자를, 시환이 마주했다. 그는 그 눈동자에 의식이 또렷함을, 또 그를 알아본다는 것을 금세 눈치챘다.
눈동자의 주인이 입을 벌렸다. 말은 바로 새어 나오지 못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은 붕어처럼 뻐끔거렸고, 설사 말을 했다고 해도 들릴 만한 크기도 아니었다. 시환은 허리를 굽혀 지영의 입 가까이 귀를 가져갔다. 그러자 지영의 눈빛이 더욱 또렷해졌다. 그녀는 말을 했다. 숫자였다. 여덟 자리의 숫자. 그녀는 그것을 두 번 반복했다.
“금고……. 2층……. 서가…….”
지영은 이어서 말했다. 사력을 다하고 있음을, 그 말에 함께 실려 나오는 단말마의 신음 소리로도 알 수 있었다.
“내 딸……, 찾아서……. 내…… 딸…….”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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