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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달은 그림자가 없다 1

나의 달은 그림자가 없다 1

연이은 (지은이)
  |  
청어람
2016-12-26
  |  
13,5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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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달은 그림자가 없다 1

책 정보

· 제목 : 나의 달은 그림자가 없다 1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04910623
· 쪽수 : 560쪽

책 소개

연이은 장편소설. 달까지 오래 머물다 쉬어 간다는 아름다운 고장, 월산. 하룻밤 새에 인생이 짓밟힌, 달 선녀라 불리던 한 여자의 불우한 삶은 대를 잇는 저주로 반복된다.

목차

1. 달 선녀 이야기
2. 달을 닮아
3. 청혼
4. 달이 지는 곳
5. 사냥
6. Brand New
7. 기억의 그림자
8. 조력자
9. 강용덕과 강순애
10. 차무영의 방식
11. Always be there
12. 삼 남매
13. 해님 달님
14. 여덟 가지 행적
15. The other
16. Two-face

저자소개

연이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즐거운 이야기꾼, 수다쟁이, 하얀 개 별이의 친구. [출간작] 전자책 『연애포비아』,『로맨틱 스토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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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월산은 산꼭대기에 달이 오래 머문다고 하여 그 고장 사람들은 ‘달 쉼터’라고 불렀다. 그러나 타지 사람들은 월산을 ‘나그네목’이라고 불렀다. 월산이 두 도시 사이에 위치하여 왕래하는 이가 많은 까닭도 있었거니와, 범람하는 달빛이 지나가는 길손들에게 위안을 주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월산의 마을은 상업이나 숙박업이 발달했다.
그중에도 조선 시대부터 주막을 했다는 한씨 집안은 월산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에까지 넓은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였다. 한씨 부부에게는 고명딸이 하나 있었는데, 위로 있던 아들 셋이 어려서 단명하는 바람에 외동딸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하나 남은 딸을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그녀의 이름은 연화였다.
연화의 두 뺨과 이마는 동그랗고 턱은 날렵하여 어려 보이면서도 세련되었다. 눈썹은 산토끼 털로 만든 최고급 붓으로 한 번에 그린 것처럼 수려했다. 코는 크지 않고 오뚝하여 귀여웠고, 눈은 시원스레 크면서도 눈매가 살짝 올라가 앙큼한 맛이 있었다. 한마디로 그녀는 절세미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연화를 ‘달 선녀’라고 불렀다.
한씨 부부에게 연화는 더없는 자랑이요, 기쁨이었다. 딸을 위해 최고의 신랑감을 수소문하는 것이 그들 삶의 낙이었다. 사람들은 연화가 도시의 대부호나 고위 관리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지 않을까 추측했다. 그러므로 연화가 목재상 차강문과 혼인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퍼졌을 때, 사람들은 이를 두고 왈가왈부하였다.
“연화는 온종일 말도 없고, 밥도 안 먹고 방에만 들어앉아 있다던데요.”
“그 댁 마나님은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웠답디다. 어르신도 강문이만 보면 얼굴이 벌게지고 말을 못 해서, 경씨 영감이 혼사를 대신 맡아서 진행시킨다더라고요.”
아낙들은 어디든 모이기만 하면 이 기묘한 혼인에 대해 수군거렸다. 한씨 집안의 충직한 집사이자, 젊어서부터 어르신을 모신 경씨 영감은 불경한 소문이 도는 것을 알았지만 굳이 집 안팎으로 입단속을 시키지 않았다. 강문이 괘씸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달빛에 취해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연화 아가씨를 책임지겠습니다.”
한밤중에 대문을 두드리고 쳐들어온 강문이 마당에 무릎을 꿇고 한 말이었다. 업고 온 연화의 몸을 대청마루에 눕힌 직후였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연화의 상태는 실로 참혹했다. 뒷산에 있는 온천으로 멱을 감으러 간 연화가 기절한 채 흐트러진 모습으로 강문에게 업혀 돌아온 것이다. 아무리 날고 기는 집안이라지만, 딸 가진 부모는 죄인이라 했던가. 당시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더구나 하늘이 무심하게도 연화에게 덜컥 애가 들어섰으므로, 혼인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한씨 집안의 덕망이 제법 높았던 터라, 사람들은 그들을 가여워했다. 특히 웃음을 잃은 연화를 보며 남몰래 눈물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그녀를 사모하던 젊은이들도 없지 않았다. 반면에 강문은 한씨 집안의 재산을 노리고 힘없는 여자를 겁탈한 천하의 몹쓸 놈이라며 손가락질 받았다. 그와 더불어, 강문을 도와 음험한 일을 꾸몄을 거라 의심받는 노루 사냥꾼 용덕 또한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용덕네 남매가 연화와 강문의 혼인 직후 마을에 정착하여 총포상을 차리자, 그들의 모의는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러나 음울한 소문의 진상은 곧 잊혀졌다. 연화의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비록 불행의 씨앗이었으나, 그 열매는 지극히 사랑스러웠다. 석윤은 기특하게도 어미를 쏙 빼닮아, 강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조부모는 그 점을 제일 좋아하였다. 석윤을 낳고서 연화는 잃었던 웃음을 찾았다. 강문 역시 불순한 의도로 그녀에게 접근하였으나, 선녀처럼 고운 아내를 아꼈으므로 겉으로 보기에 둘은 퍽 금슬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석윤이 일곱 살이 되던 해, 연화는 둘째 아들을 낳았다. 둘째는 아비인 강문을 틀에다 찍어낸 것처럼 똑 닮았다. 연화는 다시 웃음을 잃었다.
연화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날 밤은 유독 달빛이 청명하였고,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강문과 엽총을 들고서 망을 보는 용덕을 똑똑히 보았다. 그럼에도 어쩐지 연화에겐 그 일이 마치 지독한 악몽일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혼인도, 점점 불러오는 배도 남의 일인 것 같았다. 그녀 안에 서서히 광기가 자라나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석윤은 연화를 너무나도 닮았기에, 그녀는 자신이 처녀 수태하였다고 여겼다. 십자가를 갖고 다니는 도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연화 같은 여자가 또 있다고 했다. 그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너는 달의 아이란다, 윤아.”
연화는 아들 석윤에게 그리 말하곤 했다. 그녀는 석윤을 보면 행복했다. 자신의 악몽은 악몽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둘째가 태어나자, 연화는 비로소 자신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화가 둘째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한 뒤 삼 년 후, 강문은 용덕의 여동생을 재취로 얻었다. 연화가 사라진 뒤 그녀의 부모는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월산 대지주인 한가의 재산은 오롯이 차강문의 차지가 되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연화가 도망을 친 것이 아니라 살해된 게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물론 이러한 끔찍한 소리를 두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었다.
“뒷산 어귀에 사는 홀아비가 그러더라. 그날 새벽에 수탉이 평소보다 일찍 우는 게 과히 이상하더란다. 나가보니 강문이랑 그 첫째 아이가 목 놓아 울더래. 목청이 찢어져라 우는 소리를 수탉 소린 줄 안 게지.”
“사람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석윤이를 그렇게 예뻐하더니 둘째만 데리고 갈 줄 누가 알았겠어.”
“원래는 석윤이까지 데리고 갔었는데 강문이가 쫓아가서 데리고 왔다더라고. 둘째는 아직 젖도 못 뗀 애고, 강문이도 양심이 있어선지 다 뺏어오진 못했는가 봐.”
“어휴, 마나님이랑 어르신이 그렇게 가실 만하지. 일궈온 재산일랑 도둑 같은 사위한테 다 뺏기고. 하나뿐인 딸은 생사도 불분명하니 살아 뭐해.”
“그래도 강문이가 염치는 있어. 장인이랑 장모 삼년상은 치르고 새장가를 들었으니.”
“염치는 개뿔. 그 집안 재수를 누가 말아먹었는데? 선녀 같은 연화한테 몹쓸 짓 하고 재산까지 다 처먹은 놈이구먼. 평생 혼자 살다가 석윤이가 크면 재산 물려주고 자기는 중이 되어도 모자라지.”
월산의 사람들조차 이렇듯 강문에 대한 평가가 분분했다. 그리고 무상한 세월이 흘러, 월산의 대지주가 한씨가 아닌 차씨가 된 지 십 년이 넘었다. 시대는 격변했다. 두 도시를 잇는 철로가 놓였고, 월산을 지나던 나그네들의 수가 줄었다. 원체 지형적 특성으로 먹고살던 고장이었으므로 교통의 발달은 월산의 경제에 치명적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민감하고 통찰력이 있던 강문은 새 활로를 모색했다. 바로 온천이었다.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월산의 온천 지대를 개발했다. 그가 연화를 범했던 온천이 있는 곳이었다. 강문은 그 온천과 주변만은 훼손하지 말고 그대로 노천탕으로 남겨둘 것을 지시했다.
‘월산 온천타운’을 지으면서 강문은 마을 사람들을 적극 기용하였고, 그로 인해 인덕을 쌓았다. 이젠 그를 두고 ‘도둑놈’이라고 수군거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문의 사업 수완 덕에 온천타운은 두 도시의 관광산업과 연계되었고, 그 지방의 명물이 되었다. 그는 더욱 부유해졌고, 마을 사람들은 강문을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이제 그들에게 연화의 존재는 마을의 전설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다만, 월산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유일한 존재가 있었다. 바로 석윤이었다.
어미가 저를 버리고 떠난 충격 때문인지, 석윤은 어둡고 광증이 있는 사내로 자랐다. 연화를 닮아 눈에 띄는 미남이었으나, 항상 불안해하며 손을 떨었다. 가끔씩은 발작을 일으키며 눈을 뒤집을 때도 있었다. 아비인 강문이 그를 꾸짖을 때 특히 그랬다. 강문은 기가 약해 미쳐 버린 석윤을 탐탁지 않아 하며, 대를 이을 또 다른 아들을 낳길 소원했다. 그러나 연화의 저주인지 강문은 후처에게서 딸 하나만을 얻었다. 아이의 이름은 혜윤이었다. 혜윤은 열 살 차이가 나는 배다른 오빠인 석윤을 무척 좋아했다. 동네 친구들은 물론이고, 제 부모마저 미친 위인이니 가까이하지 말라고 해도 늘 석윤을 졸졸 따라다녔다. 혜윤은 월산의 달처럼 고운 오라비가 자랑스러웠다.
“오라버니는 피부가 우유처럼 예뻐요. 달 선녀 같아요.”
석윤의 옷자락을 잡아 흔들며 혜윤은 말하곤 했다. 혜윤은 마을에 떠도는 ‘달 선녀 이야기’의 진상을 알기엔 너무 어렸다.
“혜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운걸. 벌써부터 청혼자가 줄을 섰다는데, 널 누구한테 보내야 아깝지가 않을까.”
혜윤과 함께일 때면 석윤은 어딘가 슬퍼 보였지만 그나마 덜 미쳐 보였다. 그런 석윤이 스무 살에 홀연히 종적을 감췄을 때, 혜윤을 제외하고 가슴 아파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돌아왔을 때 아쉬워하는 이가 훨씬 많았다. 집을 나간 지 오 년 만이었다. 그의 왼손 약지에는 실가락지가 끼워져 있었다. 돌아온 석윤은 완전히 광기에 사로잡혔다. 어디서 뭘 했는지 폐병까지 얻어온 바람에, 때때로 피를 토하며 패악을 부리기 일쑤였다.
“차라리 죽어라, 죽어!”
강문의 입버릇이었다. 그리고 석윤은 정말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시신은 이른 아침부터 온천욕을 즐기러 나온 노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하필이면 그 노천탕이라니. 제 어미가 아비한테 험한 일을 당했던 걸 알 리가 없을 테고, 우연치곤 너무 스산해.”
월산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나 강문은 끄떡없었다. 그는 미신에 사로잡히는 대신, 사업에 열중했다. 목격자인 노인에게 뒷돈을 듬뿍 주어 타지로 소문이 새나가는 것을 막았다. 월산의 사람들이야 절반 이상이 온천타운의 관광산업에 밥줄을 의존하고 있던 터라, 저희끼리 쉬쉬하며 뒤로만 쑥덕거렸다. 강문은 친아들의 비극적인 죽음에도 슬퍼하기보단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 시원해했다. 석윤은 소름 끼치도록 연화와 닮았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로소 악연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석윤의 자살 직후, 혜윤은 미쳤다. 그녀 나이 열다섯일 때였다. 마을 사람들은 연화의 저주를 다시 들먹이기 시작했다. 강문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혈육에게 대를 잇게 하기 위해 혜윤이 스물이 되자마자 데릴사위를 구했다. 사위의 호적을 혜윤에게 올리고, 자식들의 성도 차씨를 따르는 조건이었다.
사위는 곧 구해졌다. 미친 여인에게 장가를 들 정도로 돈이 궁한 옛 선비 가문의 한량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혜윤은 남편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집 안에서 책만 읽느라 핏기가 없는 하얀 피부가 석윤 오라버니를 닮았다며 기뻐했다. 신랑도 아름다운 혜윤을 아끼고 사랑하였다.
혜윤은 딸을 낳았다. 이름은 혜윤이 끊임없이 읊조리는 대로 영선이라 지었다. 영선도 미칠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그녀는 정상이었다. 또한 어미인 혜윤과는 아주 딴판으로 자랐다. 그 성정은 외할아버지인 강문을 베낀 것 같았다. 영선은 야망에 차 있었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또한 어미인 혜윤을 부끄러워했다. 강문은 그 점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영선의 아버지는 어려서 못 먹은 탓인지 골골대다 일찍 죽었다. 부부의 애정이 극진했던 터라, 혜윤은 큰 상심에 빠졌다. 그녀의 광증은 더 깊어졌다. 영선은 그런 어미를 별채로 옮겨 버렸다. 그녀는 외조부모 밑에서 자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영선은 자신이 결혼을 할 때에도 혜윤은 부르지 말자고 했다. 결국 강문과 그의 처가 혼주 노릇을 했다. 강문의 데릴손녀사위인 동진은 그를 만족시킬 만큼 속물이었다. 영선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강문은 노쇠하여 더 잃을 것도 이룰 것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의 처는 그보다 앞서 죽었다.
아들만, 아들만 낳으면 된다고 강문은 임신한 영선의 배를 보며 염원했다. 그러나 정작 증손자를 안아보지는 못하였다. 그는 물에 젖은 이끼에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즉사했다. 그가 연화를 범했던, 석윤이 자살한 그 노천탕이었다. 영선은 머리에 흰 리본을 꽂고 아들을 낳았다. 이름은 차무영, 어쩐 일인지 자랄수록 석윤을 닮아갔다.

울퉁불퉁한 험한 길 때문에 차체가 덜컹거렸다. 소월은 핸들을 고쳐 잡으며 한 손으로 내비게이션의 화면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잘못된 길이라는 기계음의 안내가 반복되었다.
“환장하겠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소월이 차를 멈추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시보다 일찍 봄을 맞은 숲이 푸르렀으나, 공기는 아직 겨울을 떨치지 못해 차가웠다. 소월은 앞에 보이는 산을 보며 저곳이 ‘월산’일 거라고 막연히 짐작했다. 그녀는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월산에 가서 물건 좀 전해주거라.”
정 회장은 웬만해선 소월과 독대를 하는 법이 없었다. 십오 년 만에 귀국한 소월을 불러, 본가로 들어오고 싶다면 어머니를 버리고 오라고 한 이후로 오 년 만이었다. 그러므로 소월은 정 회장의 부름을 받았을 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갔다. 정 회장의 용건이 겨우 간단한 심부름이라는 것을 알자 소월은 맥이 빠질 정도였다.
“작은 지역이나마 호족처럼 지내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안이다. 흠 잡힐 일 없게 조신하게 행동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예의를 잃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사사로운 일이었으면 굳이 내 핏줄에게 시키지 않았을 거다.”
간접적인 표현이었으나, 소월을 손녀로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소월은 정 회장이 이렇게까지 말하며 전달하고자 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끼고도는 오빠들에게 시킬 것이지, 하는 반항적인 생각도 들었다.
“무슨 물건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건방 떨지 말거라.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정 회장이 칼같이 선을 그었다. 한 기업의 수장으로서 그의 성품은 아주 강인하고 독선적이었다. 특히 위계를 중시하여 아랫사람이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못 견뎌 했다. 소월은 입을 다물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곧 정 회장이 금색 비단 보자기로 싼 물건을 내밀었다. 보아하니 일반 스케치북 크기의 함 같았다.
“열면 티가 나는 물건이니 열어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거라.”
그러고 정 회장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소월도 덩달아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치레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이만 가보겠다며 함을 갖고 나왔을 뿐이었다.
이것이 불과 전날 밤의 일이었다. 시간을 지체하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기에 소월은 바로 월산으로 출발했다. 온천이 유명한 관광지라 하여 찾기 쉬울 줄 알았더니, 숲도 넓고 산도 여러 개라 결국 길을 잃었다. 소월이 애꿎은 돌멩이를 발로 차며 화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거기서 뭐 해요?”
숲 속에서 엽총을 어깨에 멘 남자 둘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수렵 철을 맞아 사냥을 나온 치들인 것 같았다. 두 남자는 소월에게 다가오며 껄렁한 말들을 주고받았다.
“오, 차가 엄청 좋네.”
“마을 사람이 아닌가 봐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네가 마을 사람들을 얼마나 안다고 그런 소릴 하냐.”
“그래도 딱 보면 견적 나오잖아. 이 마을 아가씨들 얼굴 못 봤냐?”
“언제는 순진해서 좋다며.”
소월은 쯧, 혀를 찼다. 월산에 가는 길이 험난했다. 길을 잃은 것도 모자라 질 나쁜 사내들과 마주치다니, 이쯤 되니 월산에 가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길 잃었어요?”
“아뇨. 잠깐 바람 쐬던 중이었어요.”
“그래요? 이쪽 방향으론 길이 더 없는데.”
남자들이 야비하게 웃었다.
“알아서 할게요. 가던 길 가시죠.”
“아니, 우린 예쁜 아가씨가 고생할까 봐 그러지.”
그들은 어느새 소월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소월은 차 문에 등을 바짝 대고 손으로 문고리를 더듬거렸다.
“에이, 왜 이렇게 쫄아서 튈 준비를 해.”
남자 중의 하나가 소월의 손을 잡아챘다. 소월은 습관적으로 남자의 손을 뿌리치며 그의 뺨을 갈겼다. 다섯 살 때부터 외국 생활을 한 소월은 의도치 않게 폭력에 익숙했다. 돈이 많은 동양 여자애는 이국의 땅에선 누군가에겐 아니꼬운 존재였다.
“아니, 이년이 미쳤나? 오냐오냐 해주니까 진짜로 험한 꼴 당하고 싶…….”
남자는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날아오는 돌에 머리를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돌은 계속 날아왔다. 몇 개는 남자들에게 명중했지만, 몇 개는 소월과 그녀의 차에 부딪쳤다. 소월이 날아오는 돌 하나를 쳐 내며 소리를 질렀다.
“이 인간들한테 던져야죠, 이쪽으로! 나한테까지 던지면 어떡해요!”
그녀가 소리를 지르는 방향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기계적으로 돌팔매질을 하고 있었다. 멀쑥한 얼굴과 달리, 옷은 돌무더기를 안고 있느라 흙투성이였다. 사냥꾼들은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 저택 아들 아냐?”
“맞아.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귀찮게 되는 놈이야. 이 동네 경찰들은 다 그 집 끄나풀이라고.”
소월은 사냥꾼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웠다.
“차라리 우리랑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할 거요. 저 새낀 미친놈이거든. 무슨 짓을 해도 정신병이라고 면죄부를 받는 놈이라고.”
“강간마의 피가 흐르는 위험한 놈이면서 말이지.”
그들은 슬금슬금 도망을 가는 와중에도 소월에게 겁을 줬다. 소월은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척했지만 손으로는 분주하게 차 문을 열고 있었다. 운전석에 올라탄 소월은 먼저 안에서 문을 잠그고, 재빨리 시동을 걸었다. 돌을 던지던 남자가 그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왜 그래요!”
남자가 차창을 마구 두드리는 바람에 소월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듯 눈을 부릅뜨고 소월을 노려봤다. 그를 두고 미친놈이라느니, 강간마라느니 하던 사냥꾼들의 경고가 소월의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었다. 소월은 핸들을 꽉 쥐고, 액셀을 밟았다. 차가 갑자기 출발하자, 남자는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한 번 바닥을 구른 남자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다시 일어나 쫓아왔다.
“왜 따라오는 거야, 도대체!”
소월은 사이드미러로 남자가 넘어지고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며 저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봤다. 남자는 마치 좀비처럼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포기할 줄 몰랐다.
“아, 진짜 미치겠네.”
소월이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핸들을 돌렸다. 차가 돌아오자, 남자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차에서 내린 소월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요?”
남자는 쉬이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발을 부여잡고 낮게 끙끙대는 모습이 소월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소월은 대답 없는 남자를 보며 어깨를 으쓱하곤, 지체 없이 그의 발을 살폈다. 뾰족한 돌에 찔렸는지 발바닥이 깊게 패여 피가 줄줄 나고 있었다.
“괜찮은 것 같진 않네요. 그러게 움직이는 차를 왜 따라와요. 위험하잖아요.”
소월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길은 반대쪽이야.”
“뭐라고요?”
“저쪽은 낭떠러지야.”
남자가 소월이 향하던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눌하게 말했다. 그는 소월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귀찮게 됐네, 진짜.’
소월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책임질 일이 생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환경에서 자란 터였다. 그녀는 종종 스스로를 떠돌이 용병 같다고 생각했다.
“나 도와주려다 다친 거네요.”
“안 아파!”
남자가 기세 좋게 일어섰다. 그러나 곧 인상을 쓰며 크게 휘청거렸다.
“아, 아파!”
소월이 남자의 옷깃을 잡았다. 남자는 소월의 어깨에 손을 얹어 겨우 중심을 잡았다. 그의 손은 소월의 어깨 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정쩡하게 있었다.
“그냥 편하게 잡아요. 부축해 줄 테니까.”
그제야 남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소월은 뒷좌석의 문을 열고 차에 남자를 태웠다.
“이쪽으로 다리 뻗고 있어요. 신발은 어디에 있어요?”
“몰라. 벗겨졌어, 쓰레빠.”
봄이라곤 하나, 아직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곤 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다닐 날씨는 아니었다. 추워서 하얗게 질린 피부에 덕지덕지 묻은 핏자국이 그로테스크했다.
‘약간 맛이 가긴 한 것 같은데…… 아예 말이 안 통할 정도로 미친 것 같진 않고.’
소월은 남자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뒤, 그의 슬리퍼를 찾기 위해 땅바닥을 살피고 다녔다. 다행히 슬리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흙먼지가 잔뜩 묻은 검은색 여름 슬리퍼는 어쩐지 처량해 보였다.
“여기요.”
“내 쓰레빠!”
남자의 얼굴이 처음으로 밝아졌다. 그는 두 손으로 얌전히 슬리퍼를 받아 들었다. 소월은 뒤늦게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에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잘생김을 숨길 순 없었다. 남자치곤 다소 선이 유려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귀티가 날 정도였다. 소월은 문득 사냥꾼들이 구시렁대던 말을 기억했다.
‘저택 아들이라고 했었지.’
이 작은 지방에 저택을 가질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소월은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혹시 월산 온천타운의 사장님이 사는 저택이 어딘지 알아요?”
답을 정해놓고 하는 질문이었다.
“우리 집인데?”
“그럴 줄 알았어!”
소월이 허공에 주먹을 잘게 흔들며 기뻐했다. 남자는 소월이 웃는 것을 넋 놓고 보았다. 그는 눈을 느릿하게 두어 번 끔뻑거렸다.
“따가워.”
“뭐라고요?”
“아니. 아무것도.”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소월은 신이 나서 집에 데려다줄 테니 길을 안내해 달라고 했다. 마침 그쪽에 볼일이 있다는 소월의 말에 남자의 볼이 살짝 상기되었다.
저택은 마을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담장이 정원의 크기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권세가 있는 집안이란 말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 왔다!”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환호성이 먹통이 된 내비게이션의 기계음을 대신해 주었다. 소월은 백미러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의 옷은 흙먼지 때문에 아주 더러웠다. 소월은 그를 또 부축해서 들어가야 했다.
‘지저분한 건 딱 질색인데…….’
하지만 불평을 하기엔 늦었다. 남자를 차에 태울 때부터 그녀의 옷은 이미 더러워져 있었다. 소월은 소맷자락에 묻은 얼룩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간단한 심부름치곤 성가신 일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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