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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여자

말하는 여자

신종국 (지은이)
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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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여자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말하는 여자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24052037
· 쪽수 : 234쪽
· 출판일 : 2025-10-25

책 소개

았다. 어린 시절의 균열부터 사회적 약자의 고통, 회복의 순간까지 현실의 그늘을 섬세하게 비추며 인간적 존엄을 다시 묻는 작품집이다.

목차

뛰는 아이 / 7
물속 바람계곡 / 37
말하는 여자 / 69
인철이 / 97
식복사 젬마 / 145
한 줌의 빛 / 179

해설
난폭한 세계와 마주한 삶의 비의 / 213
작가의 말 / 229

저자소개

신종국 (지은이)    정보 더보기
부산 영도 출생. 경남중, 동아고, 경북사대, 부산대교육대학원(수료), 한국교원대(석사)를 거쳐 남해여고 초임 2년 후 부산에서 교원, 시교육청 장학관 등 교육자로 35년을 삶. 1987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가대기의 노래」 당선. 소설집으로 『마애암 골짜기』, 『말하는 여자』,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영화화된 ≪미친 사랑의 시간≫, 영화 ≪무사≫의 원작이 된 ≪뇌우만리≫ 및 다수의 영화칼럼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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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남자는 운전석에 되올라 기어를 후진해서 기울어진 차체를 세웠다. 그때 조수석에 낯익은 모자 하나가 눈에 들었다. 붉은 자수로 NY 알파벳이 새겨진 새까만 모자다. 게다가 그가 아이의 허벅지에 던져준 돈 봉투도 그대로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 모자를 와락 움켜쥐었다. 그러자 대번에 그의 등이 반으로 꺾이면서 ‘경수야!’ 하는 낮은 신음이 목구멍이 아니라 심장 쪽에서 좁은 핏줄을 비집고 올라왔다.
남자는 때에 절어 반들대는 아이의 찌든 모자에 자신의 얼굴을 부볐다. 모자의 면직 올 사이사이 녹아내린 아이의 땀 냄새가… 몇 년간이지만 자신이 어르고, 안고, 손잡아 키웠던 아이의 살 냄새가 그의 정신을 갈가리 찢었고 육신의 모든 뼈마디를 사정없이 비틀었다.

운전석 문을 미친 듯 열어젖혀 도로 한가운데로 뛰쳐나온 남자는, 자신이 떠나 온 역방향의 끝을 향해 벌건 목줄기가 부풀도록 소리쳐 불렀다.
“갱수야! 갱수야아! 갱수야아아아….”
그 허기진 외침은, 눈앞 중첩된 밤의 산 어딘가에 부딪쳤다 낯설게 그에게 돌아왔다. (-「뛰는 아이」)


여자가 술병을 들고 온다. 소주 세 병이다. 근접해서 보니 여자는 사실 미성년자는 아닌 듯했다. 매우 키가 작고 어려 보였지만, 석 달 전 전방부대에서 제대한 스무세 살 석준의 눈으로 봐도 이미 미성년은 지난 여인이었다. 그래도 점장이 미성년자라 경계한 듯해서 석준은 민증 보여 달라는 말 대신, ‘미성년 아니시죠?’ 하고 간단히 말을 던진다. 여자는 술병 세 개를 올린 채 카드를 내밀고 석준을 올려다봤다. 순간 석준은 잠시 정신이 나갔다. 그녀의 눈빛이 산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물론 석준은 죽은 자의 눈빛을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죽은 자의 눈빛이 있다면 바로 저 여자의 눈빛이란 생각에 석준의 양 턱선으로 소름이 지나갔다. 눈동자는 분명 있지만 그냥 텅 비어 흰자만으로 가득 채워진 듯한 눈. 저건 귀신의 눈이다.
“얼마?”
여자의 차분한 반문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무겁게 가라앉은 여자의 탁한 음성은 미성년자가 아님을 증명하고도 남았다. 20대 초는 이미 넘긴 20대 중반? 아님 후반? 여튼 나이대가 대충 잡히자 석준은 군소리 없이 카드를 받고 영수증을 뽑아주었다. 여자는 석준이 건네주는 술병 비닐봉지를 천천히 거머쥐고는 편의점을 무겁게 걸어 나갔다. 스낵과자나 오징어포 같은 안주 구매 없이. (-「물속 바람계곡」)


그녀는 그 심장의 격고가 그녀를 언제 어떻게 조종해서 집밖으로 나서게 하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느닷없이 쿵쾅대는 가슴은 그녀를 벌건 열기에 휩싸이게 했고, 엄청난 두통이 저벅저벅 자갈밭을 밟으며 그녀를 옥죄기 때문에 그냥 뛰쳐나갔다. 기억이, 과거 자신을 쏜 화살의 정확한 출발점을 향해 그녀는 움직였을 뿐이다. 가슴이 뽀개졌기에 그녀는 자기 몸이 지령하는 바에 전력투구했다. 신기하게도 한바탕 그런 규명의 질문을 퍼붓고 돌아오면 자신은 상당 기간 안정과 고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시야가 선명해진다고 할까, 호흡도 체열도 본연으로 자리 잡는다. 그런 효험은 고혈압약이나 안정제 주사도 못 해준 보살핌이다. 하지만 선자로서는 그런 심신의 순환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그녀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늘 시간의 틈바구니에 몸은 종이처럼 납작해졌다. 게다가 그 북소리는 갈수록 옛 기억을 자주 개별 소환했기에 선자는 부지불식 너무 힘들었다. 어떤 효험의 자각보다, 언제 진군해올지 모를 북소리에 재무장해야 했기에 얼굴은 피폐해졌다.
그런데 오늘 한 소리 해준 기장댁이 아직 모르는 게 있다. 이혼한 옛 남편 가게를 향해, 먼지처럼 떠오른 나쁜 말의 기억들을 따지러 선자가 이미 넉 달 전에 찾아간 사실을. (-「말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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