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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허수경 (지은이)
난다
13,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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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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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24065495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6-06-09

책 소개

오래된 시간의 영혼을 노래하는 시인이자 한국 서정시의 독보적인 존재 허수경.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하고 『혼자 가는 먼 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등을 펴내며, 동서문학상, 전숙희문학상, 이육사문학상을 수상한 그의 유고 시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이 난다시편 9번으로 출간된다.
“울지 마, 우리는 동무잖아”
이 지구에 더는 없는 목소리의 유랑인 허수경의 마지막, 유고 시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출간

나는 그대가 먼저 간 길을 아주 오래 보다가
이렇게 쓸지도 몰라
저녁은 갑자기 오더니 어둠은 천천히 오시네, 라고
떠난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착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라고


오래된 시간의 영혼을 노래하는 시인이자 한국 서정시의 독보적인 존재 허수경.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하고 『혼자 가는 먼 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등을 펴내며, 동서문학상, 전숙희문학상, 이육사문학상을 수상한 그의 유고 시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이 난다시편 9번으로 출간된다. 2018년 시인이 세상을 떠나고 8년. 6월 9일 시인의 생일에 그의 유고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을 내어본다. 그간 오롯했던 시인의 침묵 가운데 들어보게 된 42편의 반가운 시의 메아리다. 시인의 편지를 대신하여 시인의 산문 세 편을 얹었으며 표제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Should You Go Before Me)」을 소제(Soje)의 번역으로 영문 수록했다. 2018년 이육사문학상 수상 당시, 김민정 시인에게 대독을 부탁한 수상 소감이자 시인이 지상에 친필로 남긴 마지막 시인의 말을 유고 시집의 머리로 삼았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한 장 한 장” 들을 수 있게 된 귀하디귀한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이면서 그가 지상에 남기는 마지막 시집이다.
총 3부에 나뉘어 엮인 이번 시집은 그가 번호를 매겨둔 시의 순서를 유언으로 알고 따르는 데서 편집의 기본 방향을 삼았다. 1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던 그 첫번째 시 「공항에서」의 마지막 구절이라 하면 “나는 이 세상 속, 어떤 예쁜 사람이 되어 사라져간다”인데 어쩔 수 없이 시인의 마음속으로 기어들어가 웅크리게 되는 우리를 맞닥뜨리게도 된다. “당신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고/목소리도 마치 전생의 무늬 같다/취기만이 당신인 것처럼 곁에 앉았는데/많이 잘해주지 못해서 마음은 비었고/많이 안아주지 못해서 손도 비었다/꼭 내가 당신을 배반한 것 같다”(「공항에서」) “그녀의 시를 들으면 다시 슬퍼져 도통 바깥으로 나가지 못할 것 같아”서. 그는 죽은 사람일까, 떠난 사람일까. 어느 하루쯤은 “떠난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착각”할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떠난 사람으로 착각하며 하루를 보내도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시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인의 생일에 선을 보이게 된 이 유고 시집을 필두로 올 10월 3일 시인의 기일에는 그의 고향 어딘가에 허수경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이제야말로 온전히 그를 쉬게 해줄 때가 아닌가 해서다. 평생 나무 곁에 살던 그였으니 이제 나무로 다시 태어나야 할 그가 아닌가 해서다. “뭔가 다 나간 자리에도 남아 있는 것은 언제나 있었다/몰랐을 뿐이었다//새들은 오늘 눈으로 목을 축이다가/아직 가지를 덮어주고 있는 푸른 나무 속으로 깃들어서는/따뜻하고 견고한 알을 낳을 것이다”(「종이 눈꽃」)

시를 쓰는 삼엄함 속에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외국에서 살면서 공부하고 시를 썼습니다.

즐거움 속에서 벗들을 만나고 시를 나누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시를 쓸 것인가?”

이 모든 시간을 다 합하여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예!”

하고 저는 답할 것입니다.

2018년 6월 28일 허수경

_시인의 말 전문


“박하의 나날이었네, 그렇지 않았니?”(「박하의 나날」) 봄 가고, 여름 오더니, “나는 나에게 물어본다”. 진주라는 곳.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곳. 눈물 많은 시인이 있던 곳, 빛 많은 사람이 있는 곳, 그 안에 작은 서점 하나 사람을 모으는 집을 짓는 곳. 시인은 독일에서 대륙 두 개를 넘어 어스름한 빛 하나 작은 집을 내 마음에 짓는 그곳을 생각한다. “오 진주라는 곳”(「진주라는 곳」). “방을 보았니?/텅 빈 햇살 안에 열린 잠든 방을 보았니?/그 방안에 푸른 우물이 하나 있지?”(「푸른 계절이 왔네」) 푸른 아이들이 부르는 즐거운 노래, 푸른 아이들이 즐기는 그리운 시절, 사랑이 먼 휴식을 취할 때 고단했던 몸도 푸르러지고 만취의 햇살이 사과나무의 방을 빼곡히 채울 계절을 뒤로 하고. 아직 오지 않는 말을 향하여 이미 왔던 말들이 창밖의 바람을 흔들고 있다.(「시 번역」) 그 바람 속에는 무엇이 있었나 화자는 묻는다.
“저렇게 푸르고 붉은 채소와 과일 사이에서/고등어만 바라보고 있는 쓴 나날 같아요/질긴 소금의 살 속에 들어가 울고 있는 햇살 같아요”(「간 고등어」) 잎새라는 이름을 가진 새가 있다면, 아주 조금 먹고 길게 우는 새일 테고. 잎새라는 이름을 가진 바람이 있다면, 그 바람 속에서 날려가는 우산은 가벼운 우산일 테지. 잠드는 해도 잎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잎새라는 이름을 가진 당신이 있다면.(「잎새라는 이름」). “그대”를 먼저 보낸 “나”는 이야기한다. 그대가 내 옆에 있을 때 우리가 했던 모든 착각 그리고 착란만은 우리의 것이었다고.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힌 과일가게 앞에서 백 년 전에 사랑에 빠졌던 어느 시인의 시를 생각하며 우리는 장님이 되었노라고.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나는 그대의 무엇을 가장 마지막까지 쓸까. 우리는 우리의 심장을 보낸 적도 있었다고, 그림들 속에 숨겨진 웃음과 울음은 서로 안아주었다고. 우리는 사람, 이라는 단수가 되고 싶었으나, 우리는 사람들, 이라는 복수였다고. 오늘 적었던 연가를 내일 읽으면 얼굴을 붉어지겠지. 그러니 “나”는 아주 마지막 날에 이 연가를 써야겠다고 나지막이 말한다. “쉿, 아직 봄이 오지 않았어요 깨어나지 마세요 이 세기에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할 때 사랑을 지켜주던 신은 도둑을 지켜주던 신이라는 거, 잊지 마세요”(「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상냥한 벗인 취기에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아, 당신을 기다리면서 물들면서
나는 이 세상 속, 어떤 예쁜 사람이 되어
사라져간다


시인 허수경은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자라고 대학 역시 그곳에서 다녔다. 오래된 도시, 그 진주가 도시에 대한 원체험이었다. 낮은 한옥들, 골목들, 그 사이사이에 있던 오래된 식당들과 주점들. 그 인간의 도시에서 새어나오던 불빛들이 정서의 근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밥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고 그 무렵에 시인이 되었다. 간절한 한 사람의 시간을 붙들고 있는 것, 그 시간을 공감하는 것, 그것이 시를 쓰는 마음이라 여겼다. 시를 쓰는 순간 그 자체가 가진 힘으로 살아가던 그에게는 “젊은 시인들과 젊은 노점상들과 젊은 노동자들에게 아부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소망이었다. 처음에는 봉천동에서 살다가 방송국 스크립터 생활을 하면서 이태원, 원당, 광화문 근처에서 셋방을 얻어 살기도 했다.
1992년 늦가을 독일로 왔다. 그에게는 집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셋방 아니면 기숙사 방이 내 삶의 거처였다. 작은 방 하나만을 지상에 얻어놓고 유랑을 하는 것처럼 독일에서 살면서 공부했고, 여름방학이면 그 방마저 독일에 두고 오리엔트로 발굴을 하러 가기도 했다. 발굴장의 숙소는 텐트이거나 여러 명이 함께 지내는 임시로 지어진 방이었다. 발굴을 하면서, 폐허가 된 옛 도시를 경험하면서, 인간의 도시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도시뿐 아니라 우리 모두 이 지상에서 영원히 거처하지 못할 거라는 것도 사무치게 알았다.
서울에서 살 때 두 권의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을 발표했다. 두번째 시집인 『혼자 가는 먼 집』의 제목을 정할 때 그것이 시인에게는 어쩌면 '나'라는 자아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독일에서 살면서 세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를 내었을 때 이미 허수경은 참 많은 폐허 도시를 보고 난 뒤였다. 그는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했다. 물질이든 생명이든 유한한 주기를 살다가 사라져갈 때 그들의 영혼은 어디인가에 남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뮌스터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학교라는 제도 속에서 공부하기를 멈추고 글쓰기로 돌아왔다. 그뒤로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모래도시를 찾아서』, 장편소설 『모래도시』 『아틀란티스야, 잘 가』 『박하』, 동화책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 번역서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 형제 동화집』 등을 펴냈다. 동서문학상, 전숙희문학상, 이육사문학상을 수상했다. 2018년 10월 3일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후 출판사 난다에서 산문집 개정판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원제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원제 『모래도시를 찾아서』)와 유고 산문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 『오늘의 착각』 『나는 사랑을 너에게서 배웠는데』가 출간됐다.

한때 나는 당신의 시가 아니라 당신을 잘 전달하고 싶었다
쉼표를 찍을 때마다 칼처럼 돋아드는 숨표를
숨표 밑을 지나간 빛이 갈고 있는 모서리를
정갈한 우물에 내리던 꽃잎들과 고사리밭에서 푸르러지던 별들을
전쟁을 죽음을 당신이 시도했던 살인을
그 밤들을 정신병원의 오후 창밖의 햇빛들을

한때 이국의 시어들은 겉돌았고
아직 오지 않는 말을 향하여
이미 왔던 말들이 창밖의 바람을 흔들었다
그 바람 속에는 무엇이 있었나
_「시 번역」 부분


• 허수경 시인을 추모하며

남성민중문학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가족 민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여성성으로의 연대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 오직 당신만의 이야기를 위해, 살아서 죽음을 추억하기 위해, 떠남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고 돌아오고 다시 떠나고 바리공주처럼. –김혜순

그대마저 삼켜버릴 듯 쓸쓸하던 그대의 노래들. 잘 가라 노래를 발굴하다가 노래가 된 한 방울 눈물아. –함민복

오늘은 여쭙고 싶은 게 있지만 여쭈지 않아야겠어요.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을까봐서요. 아니, 제가 너무 쉽게 답을 찾을까봐서요. 늘 그러셨듯 씩씩하시구요. –김소연

이번 생은 당신이 있어서 참 좋았네요. 봄에 소풍 가자는 약속 말고 몇 개 더 약속할 걸 그랬어요. 많으면 남겨도 되니까요. 남으면 들여다보면 되는데요, 시로 다시 와주었으니 먼저 간대도 갔대도 믿지 않을래요. –이병률

“문학을 하면서 단 한 번 만났으나, 시를 읽으면 언제나 나의 언니 같았던 사람” –진은영

메아리를 숨긴 유월 숲입니다. 은행잎은 고생대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자음과 모음으로 갈라지는 목소리로도 정확히 한 사람을 부를 수 있는 기적이 시작된 그때부터요. –신용목

어느 언덕에선가 제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흔들린다면, 그 순간 저를 관통한 무언가를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건 모두 선생님의 기척. –안희연

눈 온다! 누나, 겨울이 온다. 비 온다! 누나, 여름이 온다. 시 온다! 누나, 시가 온다. 누나가 있다. 시인이 있다. 떠올릴 때마다 다시 있다. 수경이 있다. –오은

저는 아직 사는 일도 무섭고 죽는 일도 무섭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울음을 울게 해야 한다는 선배의 말을 지금도 떠올립니다. 내년 봄에도 내년 여름에도 우리의 울음은 잘 있겠지요? 또 얼마나 힘들까, 싶지만. –박준

누구에게든, 누구를 위해서든,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이라서. 만난 적 없어도 늘 그리워요! –유선혜

*허수경 시인을 그리워하는 목소리 일부를 전합니다. 마음을 함께해준 모든 시인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 난다시편을 시작하며

손에 쏙 들어오는 시의 순간
시를 읽고 간직하는 기쁨, 시를 쥐고 스며보는 환희


1.
2025년 9월 5일 출판사 난다에서 시집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시를 모아 묶었음에 ‘시편(詩篇)’이라 했거니와 시인의 ‘편지(便紙)’를 놓아 시집의 대미를 장식함에 시리즈를 그렇게 총칭하게도 되었습니다. 난다시편의 라인업이 어떻게 이어질까 물으시면 한마디로 압축할 수 없는 다양한 시적 경향이라 말을 아끼게 되는 조심스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시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모든 말이 시의 언어로 발산될 수 있기에 시인에게 그 정신과 감각에 있어 다양함과 무한함과 극대화를 맘껏 넘겨주자는 초심은 울타리 없는 초원의 풀처럼 애초부터 연녹색으로 질겼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단호함은 있습니다.

2.
난다시편의 캐치프레이즈는 “시가 난다winged poems”입니다. 날기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무거움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날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가벼움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바람처럼 꽃처럼 날개 없이도 우리들 몸을 날 수 있게 하는 건 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랑처럼 희망처럼 날개 없이도 우리들 마음을 날 수 있게 하는 건 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여 온전히 시인의 목소리만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을 빚어보자 하였습니다. 해설이나 발문을 통한 타인의 목소리는 다음을 기약하자 하였습니다. 난다는 건 공중에 뜰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의 말이니 여기 우리들 시를 거기 우리들 시로 그 거처를 옮김으로 언어적 경계를 넘어볼 수 있겠다는 또하나의 재미를 꿈꿔보자 하였습니다. 시집 끝에 한 편의 시를 왜 영어로 번역해서 넣었는가 물으신다면 말입니다. 시인의 시를 되도록 그와 같은 숨결로 호흡할 수 있게 최적격의 번역가를 찾았다는 부연을 왜 붙이는가 물으신다면 말입니다.

3.
난다시편은 두 가지 형태의 만듦새로 기획했습니다. 대중성을 담보로 한 일반 시집 외에 특별한 보너스로 유연성을 더한 미니 에디션 ‘더 쏙’을 동시에 선보입니다. “손에 쏙 들어오는 시의 순간”이라 할 더 쏙. 7.5×11.5cm의 작은 사이즈에 글자 크기 9포인트를 자랑하는 더 쏙은 ‘난다’라는 말에 착안하여 디자인한 만큼 어디서든 꺼내 아무 페이지든 펼쳐 읽기 좋은 휴대용 시집으로 그만의 정체성을 삼았습니다. 단순히 작은 판형으로 줄여 만든 것이 아니라 애초에 특별한 아트북을 염두하여 수작업을 거친 것이니 소장 가치를 주기에도 충분할 것입니다. 시를 읽고 간직하는 기쁨, 시를 쥐고 스며보는 환희. 건강하게 지저귀는 난다시편의 큰 새와 작은 새가 언제 어디서나 힘찬 날갯짓으로 여러분에게 날아들기를 바랍니다.

[ 시가 난다 WINGED POEMS ]
001 김혜순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002 황유원 시집 일요일의 예술가
003 전욱진 시집 밤에 레몬을 하나 먹으면
004 박유빈 시집 성질머리하고는
005 정일근 시집 시 한 편 읽을 시간
006 곽은영 시집 퀸 앤 킹
007 채길우 시집 아버지를 업고
008 문혜진 시집 무증상 환자
009 허수경 시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010 고명재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 (근간)

목차

시인의 말 005

1부 우리 모두 다만 기어이 갈 곳으로 떠난다
공항에서 010
듣는 책 012
독일 남쪽 마을에서 쓰는 꿈 014
여행 꿈 016
나의 코끼리 꿈과 코끼리의 내 꿈 018
박하의 나날 024
하튜사 연가 026
사과는 떨어지고 029
푸른 계절이 왔네 032
눈 온다 034
시 번역 036
그녀가 들려주는 시 038

2부 울지 마, 우리는 동무잖아
동화책 시절 042
얼음세계 044
간고등어 046
퇴비통 048
태양약국 050
위장의 풍경 052
잎새라는 이름 054
손금 056
포도주 한 병 059
그해 봄밤에 나는 십 년 넘어 가지 못한 아버지의 무덤을 생각했네 060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062
꽃 지는 날 067
진주라는 곳 068

3부 이제 시 아닌 다른 겹의 시간에게
누군가 물었다 072
탕, 탕 074
데워진 술 한잔 075
흰 호텔 2016년 076
토끼는 내 말을 모른다 078
봄꿈 081
글로벌 유령 082
지난여름아 084
그 도시의 옛 이름을 불러보면 086
산책 정물화 089
냉동 새우 090
종이 눈꽃 092
늙어가는 마을 094
저녁의 미래 096
안는다는 것 097
이 시는 098

허수경의 산문
볼 수 없을 거라는 공포 102
이 지상의 어느 마을 105
시인이라는 고아 112

Should You Go Before Me—Translated by Soje 121

저자소개

허수경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자라고 대학 역시 그곳에서 다녔다. 오래된 도시, 그 진주가 도시에 대한 원체험이었다. 낮은 한옥들, 골목들, 그 사이사이에 있던 오래된 식당들과 주점들. 그 인간의 도시에서 새어나오던 불빛들이 내 정서의 근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밥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고 그 무렵에 시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봉천동에서 살다가 방송국 스크립터 생활을 하면서 이태원, 원당, 광화문 근처에서 셋방을 얻어 살기도 했다. 1992년 늦가을 독일로 왔다. 나에게는 집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셋방 아니면 기숙사 방이 내 삶의 거처였다. 작은 방 하나만을 지상에 얻어놓고 유랑을 하는 것처럼 독일에서 살면서 공부했고, 여름방학이면 그 방마저 독일에 두고 오리엔트로 발굴을 하러 가기도 했다. 발굴장의 숙소는 텐트이거나 여러 명이 함께 지내는 임시로 지어진 방이었다. 발굴을 하면서, 폐허가 된 옛 도시를 경험하면서, 인간의 도시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도시뿐 아니라 우리 모두 이 지상에서 영원히 거처하지 못할 거라는 것도 사무치게 알았다. 서울에서 살 때 두 권의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을 발표했다. 두번째 시집인 『혼자 가는 먼 집』의 제목을 정할 때 그것이 어쩌면 나라는 자아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독일에서 살면서 세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를 내었을 때 이미 나는 참 많은 폐허 도시를 보고 난 뒤였다. 나는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했다. 물질이든 생명이든 유한한 주기를 살다가 사라져갈 때 그들의 영혼은 어디인 가에 남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뮌스터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학교라는 제도 속에서 공부하기를 멈추고 글쓰기로 돌아왔다. 그뒤로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산문집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너 없이 걸었다』, 장편소설 『모래도시』 『아틀란티스야, 잘 가』 『박하』, 동화책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 번역서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 곱 번의 시도』 『그림 형제 동화집』 『파울 첼란 전집』 등을 펴냈다. 동서문학상, 전숙희문학상, 이육사문학상을 수상했다. 2018년 10월 3일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고집으로 『가기 전에 쓰는 글들』 『오늘의 착각』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가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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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러다 언제쯤
당신과 나는 누군가가 듣고 있는
이 지구에 없는 목소리의 유랑인이 될 거다
아무도 건설해본 적 없는 국도를 걷는 아픈 고아,

꿈꾸는 귀가 듣는 발자국일 거다
_「듣는 책」부분


눈 온다
눈 덮여 막힌 길 속에서 잔인하게도
나타나지 않았던 여관을 찾았던 그날처럼
후회의 나날을 베개 삼아 베고
숨죽여 울던 여관의 처마처럼
_「눈 온다」부분


얼굴에 열린 불같은 세계 그러나 그 세계가 그렇게 격렬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의 시를 듣는데 다시 슬퍼져 도통 바깥으로는 나갈 수 없을 것 같아 마르고 있는 저 빨래를 걷으러 나갈 수 없을 것 같아 그녀의 얼굴을 다시 그려볼 수 없을 것 같아 그녀의 목소리가 걸린 하늘을 다시 디뎌볼 수 없을 것 같아
_「그녀가 들려주는 시」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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