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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91199242531
· 쪽수 : 464쪽
· 출판일 : 2025-11-25
책 소개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
박서련 작가 추천!
“식민주의와 불가능한 우정에 대한 장대한 이야기”
-전미도서상 심사평 중에서
타이완 작가 최초로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을 수상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은 소설가 양솽쯔의 《1938 타이완 여행기》가 출간되었다. 2024 일본번역대상, 2021 타이완 금정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오랫동안 양솽쯔 작가의 팬이었던 소설가이자 번역가 김이삭이 직접 기획하고 번역하여 한국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1938년은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해로, 한국은 일제의 수탈이 갈수록 심해지던 때였지만, 남진 정책의 교두보였던 타이완은 아직 전쟁의 여파가 크게 미치지 않던 때였다. 남국의 섬 타이완에서 1년을 보내게 된 일본 여성 소설가 치즈코는 통역을 맡은 타이완 여성 왕첸허의 도움으로 타이완 곳곳을 여행하며 갖가지 미식을 즐긴다. 첸허는 여러 언어에 능통한 재원이지만 가문의 뜻에 따라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치즈코는 그런 그녀에게 호감과 연민을 느끼지만, 첸허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첸허의 속마음을 관찰하고 탐구하면서 치즈코는 일본인인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타이완의 진짜 모습과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내려 애쓰는 한 여성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과 타이완은 일제강점기를 공통적으로 경험했고, 그 시대 여성들이 마주했던 억압과 자유에 대한 갈망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여성 독자들에게 낯설지 않다. 시대와 공간은 달라도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가로서만 살고 싶은 치즈코, 가문의 서녀로서 꿈을 숨긴 채 정략 결혼을 해야만 하는 첸허는 함께한 여행에서만큼은 자유롭게 먹고 즐길 수 있었다.
타이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요리들
"이 이야기야 말로 연회다. 열두 장에 걸친 요리와 함께 옛 타이완의 문화와 풍속뿐 아니라 달콤쌉싸래한 두 여자의 마음까지 맛보는, 장장 1년에 걸친 대연회."
-박서련(소설가)
이 소설에서 음식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두 여성과 두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코드다. 타이완에 온 일본인은 대개 고급 사시미 같은 일본 음식만 찾지만, 치즈코는 타이완의 서민 음식인 러우싸오를 먹고 조개를 절여 만든 키암라아를 맛본다. 식민지 타이완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있고 모국의 제국주의 전쟁에 찬성하지 않는 지식인이지만, 사실 타이완에 대해 아는 바 없고 이국적인 취향을 만족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러나 첸허와 함께 타이완의 다채로운 미식을 경험하면서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점점 이해하게 된다.
치즈코가 집착적으로 찾는 현지인의 음식에는 지금은 사라져가는 타이완의 옛 음식뿐만 아니라, 타이완을 구성하는 여러 민족의 독특한 음식도 포함되어 있다. 양솽쯔 작가는 지난 2025년 서울 국제도서전의 특별강연에서 “이러한 타이완의 다양한 전통 음식을 묘사함으로써 기록되지 않은 타이완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첸허가 치즈코를 위해 만들어준 타이완식 카레는 일본 카레도 인도 카레도 아닌, 타이완만의 방식으로 변형되고 수용된 음식으로 유연하면서도 훼손되지 않는 타이완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한다.
일본인 화자의 눈으로 정교하게 그려낸 메타픽션
양솽쯔 작가는 의도적으로 식민자 일본인의 눈으로 타이완을 묘사한다. 일제 치하의 타이완을 알기 위해서는 일본어로 된 기록을 읽어야만 하는데, 이는 왜곡되고 생략된 역사일 수밖에 없다. 번역된 행간에서 역사적 진실을 발견해야 한다. 그래서 양솽쯔 작가는 스스로를 번역자로 설정해 아오야마 치즈코가 일본어로 쓴 소설을 중국어로 번역하고 각주를 다는 방식을 취한다. 《뉴욕 타임스》의 서평처럼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 같은 번역의 중층 구조는 결국 식민지 내 권력관계를 보여주는 중층 구조”이기도 한 것이다.
낯선 땅을 여행하는 작가가 현지인처럼 살면서 이국적인 경험을 도와주는 현지인과 친구가 되는 이야기는 일견 따뜻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낯선 땅이 식민지이고 현지인들은 점령한 나라의 문화를 강요 받고 있다면 이는 권력관계의 문제가 된다. ‘제국이 강제로 옮겨 심은 벚나무는 불쾌하지만, 아름다운 벚꽃에는 죄가 없다’, ‘제국의 강경한 정책에는 반대하지만 삶을 윤택하게 하는 철도 등의 건설 사업은 칭찬할 수밖에 없다’는 치즈코의 악의 없는 말은 첸허에게, 어쩌면 우리에게도 낯익은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는 양솽쯔 작가의 전미도서상 수상 소감처럼 이 소설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에 필요한 이야기다. 식민주의, 젠더, 정체성, 언어와 문학적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이 작품은 타이완 문학을 세계 문학의 반열에 올린 중요한 성과이며, 역사소설이자 여행소설, 동시에 여성소설로서 한국 독자들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깊은 성찰을 선사할 것이다.
목차
[1954년 초판 서문]
짭짤한 씨앗 볶음, 과쯔
하카식 쌀국수 간식, 비타이박
황마의 어린잎으로 끓인 탕, 무아인텅
내지인의 고급 음식, 사시미
다진 돼지고기 조림, 러우싸오
달콤하게 마시는 차, 동과차
본섬의 양식, 타이완식 카레
마음을 나누는 음식, 스키야키
연회 후에 먹는 탕, 잔반탕
새해 음식, 타우미
짭조름한 케이크, 셴단가오
뤼촨 노점에서 먹는 간식, 팥빙수
[1970년 재출간판 후기] 어머니의 기억, 아오야마 요코
[1990년 타이완판 역자 후기] 버드나무 작은 집에서 만든 국수, 왕첸허
[1990년 타이완판 편집자 후기] 고인과의 약속, 우정메이
[2020년 신역판 역자 후기] 우리 둘의 고하쿠, 양솽쯔
[한국어판 역자 후기] 번역과 중역 사이에서 드러나는 것, 김이삭
[1938 타이완 종관철도]
책속에서
도시코 새언니가 자료를 하나 더 꺼냈다. 이번에는 해군 정장을 입은, 아름다운 수염을 지닌 군관이었다.
“이분은 스즈키 선생님이야. 시라토리 선생님의 외조카가 추천해주셨지. 친우의 전우래…….”
내 비참한 조건을 고려한 결과일까. 대다수가 키 큰 중년 남성이었다. 재혼이거나 머리숱이 별로 없는 남성들. 젊은 사족이라도 아주 예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밥상을 뒤엎을 놈처럼 보였다.
“이분은 아무로 선생님이야. 아키코 이모님이 소개해주셨지. 지방 직업학교인 에도가와의 교장 선생님이 아끼는 제자란다…….”
나는 네 번째 보타모치를 먹었고, 차도 남김없이 마셨다.
배가 불렀다. 역시 한 번에 네 개나 먹는 건 무리였어.
몸을 뻗어 장지문을 열고는 하루노를 불렀다. 영국 홍차와 같이 먹을 만한 비스킷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러자 미쓰코 언니가 버럭 화를 냈다.
“치즈코! 조금 전에 지라시즈시 2인분을 혼자서 먹지 않았어? 이렇게 많이 먹다니, 완전 요괴잖아. 너는 이 후보들을 탓하지 말아야 해. 나이 들어 마음이 넓은 남자가 아니라면, 요괴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할 거야!”
“미쓰코 언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흠, 별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소설을 쓰러 갈게요.”
“거기 서. 여자의 결혼은 자고로 가장이 정하는 거야. 치즈코, 네가 이렇게 자꾸 피한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아버님께 결정해달라고 할 거야.”
“어, 미쓰코 언니.”
“실례하겠습니다.” 반쯤 열린 장지문 너머에서 하루노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무릎을 꿇고 기어 온 하루노가 전해준 건 홍차도, 비스킷도 아닌, 아주 정교하게 장식된 편지봉투였다.
- ‘짭짤한 씨앗 볶음, 과쯔’ 중에서
샤오첸의 젓가락이 큰 접시로 향했다. 첫 번째 완자부터 시작해 투명한 완자, 고기 피 완자, 양념에 재운 완자, 아삭한 완자, 토란 완자 순서로 먹었다. 그런 뒤에는 같은 순서로 한 번 더 먹었다. 다시 같은 순서로 세 번째로 먹고는, 탕을 마시고 무절임을 먹었다. 그런 뒤 같은 순서로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을 떡 벌렸다. 우아함과 속도를 겸비한 모습이었다. 샤오첸은 커다란 접시 안에 담긴 완자를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이렇게 많이 먹다니. 완전 요괴잖아.
솔직히 말하면 나조차도 의심스러웠다. 나의 또 다른 요괴 짝을 과연 찾을 수 있을지.
“샤오첸! 이건 운명적 만남이에요!”
나는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거침없이 내뱉었다.
“우리 함께 타이완을 구석구석 돌면서 미식을 즐겨요!”
샤오첸은 좀 놀란 듯했지만, 곧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햇빛이 작은 가옥을 가득 채웠다.
아, 남국이여, 섬이여, 타이완이여!
- ‘황마의 어린잎으로 끓인 탕, 무아인텅’ 중에서
타이완섬은 제국의 남쪽 식민지이자 제국의 첫 번째 식민지였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는 두 문화가 서로 교차하며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관찰하는 데에 큰 흥미를 느꼈다. 내지에만 머물렀던 내지인과 본섬으로 이주한 내지인, 본섬에서 태어난 내지인, 본섬에서 태어나 제국 현대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자란 혼토진, 유학 혹은 취업으로 내지로 간 혼토진. 이들은 세세한 부분에서 각자의 교양과 기질의 차이를 드러냈는데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이제껏 글로 쓰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혼토진들을 구경하는 데에 매료되었을 뿐이었다. 나는 일개 청년에 불과했고 소설가였기에 정치인이나 학자의 재능은 갖추지 못했다. 주제넘을 정도로 위대한 야심 같은 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보고 들은 걸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아니면 순간의 진실한 감정을 기록하거나.
그런데 진실한 감정이라는 건 대체 뭘까?
제국의 ‘남진’, 제국의 ‘국민정신 총동원 운동’ 은 식민지에서 천황국의 동화 운동이 되었다. 이건 사람들이 저마다 지닌 서로 다른 문화와 교양을, 그 흔적을 지워버리는 폭력적인 행위다. 그렇지 않나? 이 일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저항과 혐오의 감정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바로 지금처럼.
- ‘다진 돼지고기 조림, 러우싸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