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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건축 > 건축이야기/건축가
· ISBN : 9791124272374
· 쪽수 : 364쪽
· 출판일 : 2026-05-29
책 소개
방대한 기록과 자료를 근거로 되살려낸 20세기 유일한 가우디 전기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은 가우디 서거 100주년을 맞아 국내에 소개되는 본격적인 가우디 연구서이자 전기이다. 도상학적 상징들을 오랫동안 분석해온 대표적인 성서학자다. 그는 바르셀로나 대주교 후안 호세 오메야 추기경의 공식 요청을 받아 가우디의 시복 절차에 필요한 생애와 신앙, 영적 여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연구를 맡아왔다.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은 이러한 교회의 공식적인 지원 하에 방대한 실증 자료, 동시대 기록과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신화와 전설, 자의적 해석에 가려졌던 가우디의 실제 삶과 사상을 입체적으로 복원해낸 결과물이다.
가우디의 고향 레우스 인근 지역에서 태어나 성장한 저자는 가우디가 보고 자란 지역의 빛과 흙, 지중해의 풍경과 민간 신앙, 카탈루냐 문화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이러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집필된 이 책은 단순한 전기를 넘어, 가우디를 둘러싼 문화적·정신적 풍경까지 함께 담아냈다.
가우디는 살면서 자신에 대해 거의 글을 남기지 않았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그의 작업실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공방이 불타면서 메모와 도면, 모형과 연구 자료 상당수가 소실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가우디를 둘러싼 수많은 신화와 과장, 불분명한 해석들이 반복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처럼 베일에 싸여 있던 거장의 흔적을 집요하게 추적한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은, 말 대신 건축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했던 가우디의 삶과 사상을 총체적으로 복원해낸 단 하나의 안내서다. 아울러 이 책의 원서는 가우디 서거 100주년 기념 미사 봉헌을 위해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는 교황 레오 14세에게 헌정될 예정이다.
삶과 작품이 하나가 된 건축가
책은 가우디의 삶을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본다. 먼저 레우스의 자연과 빛 속에서 감수성을 키운 어린 시절을 거쳐 바르셀로나에서 젊은 건축가로 성장하던 초기, 폭발적인 창작 활동 속에서 사순절의 단식과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내면의 변화를 맞이하는 중기, 점차 신앙과 상징, 전례적 의미에 깊이 몰두하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삶 전체를 바치게 되는 말년까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저자는 가우디를 단순한 모더니스트가 아니라, ‘빛과 공간, 재료와 형태를 자신만의 미학으로 다루는 독특하고 유일한 존재’로 바라본다. 가우디는 자연을 모방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작품’으로 보았고, 자신의 건축이 주변 환경과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기를 바랐으며, 자연 속에서 건축의 원리를 발견하려 했다. 또한 고딕 건축을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구조를 고민했다. 기울어진 기둥과 하중 전달 구조를 통해 기존의 건축 방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건축 언어를 구축했고, 이는 콜로니아 구엘 교회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카사 바트요, 라 페드레라(카사 밀라), 구엘 공원, 콜로니아 구엘 교회, 마요르카 대성당 복원 작업 등 가우디의 주요 작품들은 개별 건축 해설이 아닌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읽힌다. 나아가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십자가와 묵주, 복음서의 상징, 자연과 빛의 의미, 카탈루냐 문화와 건축적 전통까지 세밀하게 추적하며, 왜 가우디의 건축이 지금까지도 독보적인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1894년 사순절의 단식과 정신적 위기를 겪은 이후, 가우디는 자신의 작품 안에 가톨릭 신앙과 상징을 더욱 깊이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생애 말년에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공사에만 전념하다시피 했고, 직접 성당 건축 기금을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1926년 비극적인 사고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가우디에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단순한 건축 프로젝트가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한 세기를 넘어 완성되는 가우디의 세계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은 동시대의 자료와 그가 만든 작품을 바탕으로, 가우디의 삶과 작품, 사상과 신앙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며, 인간 안토니 가우디의 내면과 사유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이에 더해 본문에 수록된 가우디 건축 작품 사진과 미공개 스케치 작업물은 글로 설명된 가우디의 건축 세계를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며, 그의 생애 여러 순간들을 담은 사진은 독자를 100년 전 가우디의 시간 속으로 이끈다.
속도와 효율이 당연해진 시대에, 한 인간이 삶과 신념, 상상력을 바쳐 세운 건축은 어떤 시간의 깊이로 남게 될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지금 그 질문 앞에 우리를 세운다. 가우디는 끝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건축은 한 세기를 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서 계속 이어져 왔다. 이는 위대한 건축이란 한 사람의 재능에서 시작되어, 시간을 건너 이어지는 믿음 속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26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완성을 향해 가는 지금,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은 가우디라는 거대한 세계를 가장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목차
서문
추천의 글
레우스에서의 유년기, 소년기, 십대 초반 (1852~1868)
— ‘레우스 출신’의 탄생
— 리우돔스 출신이라는 견해
— 가족의 집
— 세례, 견진성사 그리고 영성체
— 영감의 원천이 된 교리서
— 레우스에서 보낸 어린 시절
— 십대 초반의 청소년기
— 바다와 공간
— 포블레트 수녀원 설계 계획
— 레우스의 사회
바르셀로나에서의 학생 시절 (1868~1878)
— 증등학교와 과학부 (1868~1874)
— 주립 건축학교 시절 (1874~1878)
— 초기 작업
건축가로서 활동의 시작: ‘대성당’의 꿈 (1878~1883)
— 레우스 원고 (1878)
— 마타로 노동자 협동조합 (1878~1885)
— 가우디, 당대의 사회로 진출하다
— ‘위대한 성당’의 꿈과 ‘카사 파이랄’의 구상 사이에서
— “나는 결혼해야겠다는 소명을 느껴본 적이 없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영적 변혁으로 (1883~1898): 창의력과 내면 탐구 사이에서
— ‘대성당’의 시작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첫 번째 건축 시기(1883~1893)
— 걷잡을 수 없는 창의성 (1883~1889)
카사 비센스 (1883~1889)
엘 카프리초 (1883~1885)
구엘 별장 (1884~1887)
구엘 저택 (1885~1889)
— 내면 탐구 (1887~1893)
아스토르가 주교궁 (1887~1893)
간두셰르의 데레사 수녀원 학교(바르셀로나) (1888~1890)
보티네스 저택(레온) (1891~1892)
탕헤르 가톨릭 선교회 설계도 (1892~1893)
— 위기와 영적 변모(1894~1898): 사순절의 단식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두 번째 건축 시기 (1894~1898)
폭발적인 창작에서 질병으로 (1898~1911)
— 새로운 관점
— 상징적 관점
— 미학적 관점
— 바르셀로나에서 폭발한 창조력
카사 칼베트 (1898~1900)
베예스과르드 저택 (1900~1908)
구엘 공원 (1900~1914)
카사 바트요 (1904~1906)
라 페드레라(카사 밀라) (1906~1910)
— 종교 건축에서 폭발한 창의력
콜로니아 구엘 교회 (1898/1908~1914/1918)
마요르카 대성당 복원 (1902/1904~1915)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세 번째 건축 시기 (1898~1911)
—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가우디의 답변
— 파리에서의 성공과 심각한 질병 (1910~1911)
신비주의의 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우디의 유일한 목표 (1911~1926)
— 친구들의 죽음
— 토라스 이 바제스의 영적 지도
— 조카딸의 죽음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네 번째 건축 시기 (1911~1926)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의 삶
— 생애 마지막 시기
가우디, 유일무이한 존재
— 사람과 작품
— 타인의 평가
— 가우디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았는가
— 성격, 태도 그리고 생활 습관
— 절제된 생활
— 이상
— 하느님과 하나 된 삶
— 얽매이지 않은 삶
— 유리 너머의 얼굴
세 개의 서명에 대한 에필로그
— 세 개의 서명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주
책속에서

가우디는 기술이 사랑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하고, 건축과 상징은 함께 어우러져야 하며, 모든 건 항상 상황과 맥락에 따라 뜻과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사실 상징은 독립적인 의미를 갖지 않기에, 어떤 역사에 기대고 있는지, 어떤 맥락에 속해 있는지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좌표를 잊게 되면 심각한 해석의 혼란이 초래된다.
많은 사람이 완전히 꾸며내거나 너무나도 경건하게 추측하거나 사상적으로 추론하여 가우디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가우디는 분명한 근거를 바탕으로 자기 작품을 엄격하게 해석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념을 혼동하고 뒤섞어 서로 관련이 없는 요소들이 관계 있다고 추정하고 설정할 위험이 있다. 특정 요소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상징적 차이를 간과할 수도 있다. 마타로 노동자 협동조합 깃발에 있는 벌은 근면함과 공동 노동의 정신을 상징한다. 반면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있는 탄생의 파사드에 새겨진 신앙의 문에서 성모 마리아의 성심에서 피를 빨아먹는 벌들은, 아들의 죽음을 겪게 될 예수의 어머니가 겪는 고통과 고난을 상징한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거나 근거가 불충분하다면 가우디의 상징성을 정확히 해석할 수 없으며, 그의 강함과 미묘함을 이해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목표다. 조안 베르고스의 표현대로, 가우디라는 인물과 인품과 그의 작품, 그의 업적과 통찰력, 또한 그 기반을 이루는 모든 것에 접근하고자 한다. 방법론적 관점에서 이 책은 “소 앞에 수레를 놓지 않는다”라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가우디에 관해 깊이 연구하지 않거나 그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모든 것을 검증하지 않고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우디는 거의 글을 쓰지 않았다. 특히 서른 살 이후에는 전혀 쓰지 않았다. 또한 1936년 그의 작업실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공방이 무정부주의자 대원들의 습격을 받으면서, 그의 메모와 도면, 스케치와 연구 자료, 작품 모형과 분필로 그린 그림을 비롯해 모든 게 불탔거나 파손되었다. 그렇지만 세속적인 그의 작품과 종교적인 작품의 대부분은 보존되어 있으며, 이것은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역사적 자료의 도움을 받아 기록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이런 자료들, 즉 가급적 그와 동시대의 자료들과 그의 작품 덕분에 가우디의 정신적·역사적 면모를 그려보려는 이 전기를 쓸 수 있었다.
- 서문 중에서
레우스 원고(1878)
‘레우스 원고’라고 불리는 가장 긴 문서는 바르셀로나의 역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문서는 1878년 8월 10일과 1878년 9월 22일이라는 두 날짜가 적혀 있다. 그리고 <장식>이라는 일반 명칭이 붙어 있다. 가우디는 그해 여름과 가을에 스페인어로 이 문서를 썼다. 아마도 그해 여름에 레우스나 리우돔스에서 쓰기 시작했을 것이고(첫 번째 부분은 8월 10일에 시작), 그해 가을에 바르셀로나에서 마무리했을 것이다(두 번째 부분은 9월 22일에 시작). 건축가 학위를 취득하자마자 그는 건축가로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원고에는 가우디가 첫 번째 건축 사무실(칼 거리 11번지에 위치함)에서 사용하기 위해 의뢰했던 책상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할 것이다. 이 원고는 장식에 대한 광범위한 생각을 적은 글이며, 시상 詩想 을 떠올리거나 무늬를 만드는 대상이나 주제의 표현으로 장식을 이해한다. 다시 말해, 순수 조형 예술을 넘어 상징성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가우디는 외젠 비올레르뒤크 (1814~1879)와 그의 책 《건축에 대한 인터뷰》(1863)를 인용하며, 건축학교에서 엘리에스 로젠트의 수업에서 공부한 리옹스 레노, 제르맹 보프랑, 장 루이 뒤랑과 같은 저자들을 언급한다.
<장식>은 내용과 구조를 미리 정해놓지 않고 쓴 글이라서 다소 반복된다. 그렇지만 이 글은 가우디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여기서 작가는 내면에 품고 있던 모든 걸 쏟아내어 글로 담아내고자 한다. 이 원고는 건축가의 과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을 개략적으로 선언한 것이며, 특히 건축, 조각, 회화 사이의 관계 설정, 색채의 존재 이유, 역사와 자연과 기하학을 구성하는 전체, 거리와 시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원고의 주된 주제는 ‘위대하고 훌륭한 교회’는 어떻게 되어야 하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이다. 가우디는 이것이 건축가의 이상이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라우라 메르카데르 는 1878년과 1883년 사이에 집필한 가우디에 관한 또 다른 글 〈성전 건축〉에서 “종교의 문제는 가장 높은 수준에서 모든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라고 쓴다. <장식>(1883년 11월)을 쓴 지 5년 후에 조세프 마리아 보카베야와 성요셉 신심회는 그에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을 의뢰하게 된다.
크고 훌륭한 교회 건축은 물체의 아름다움을 사전에 고찰하면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형태에는 불필요한 요소가 없어야 한다. 따라서 장식은 건물의 기능이나 ‘특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공공건물이나 종교 건물은 ‘중후함’, 즉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에레크테이온 신전처럼 ‘단순한 형태와 웅장함’을 가져야 하며, 개인 주택과 같은 개인 건물과는 달라야 한다. 종교 건물에서는 ‘종교적 성격’이 표현되는데, 종교의 목적이 신비이기에 그 성격은 가장 웅장하고 장엄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 신비는 “피조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경외의 하느님”의 신비이며, 그 하느님은 전능함으로 “수백만 수천만 개의 땅뙈기를 품으시고”, 그렇게 종교 건물 혹은 교회는 ‘피 흘리지 않는 희생’의 장소가 된다. 가우디는 희생의 개념을 구원과 성체성사가 하나가 되는 것으로 이해했고, 이 성사 속에서 전능하신 하느님의 희생이 피 흘리지 않고 자비롭게 실현된다고 보았다.
- 건축가로서 활동의 시작: ‘대성당’의 꿈 1878~1883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