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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건축 > 건축이야기/건축가
· ISBN : 9791124272374
· 쪽수 : 364쪽
· 출판일 : 2026-05-29
책 소개
목차
서문
추천의 글
레우스에서의 유년기, 소년기, 십대 초반 (1852~1868)
— ‘레우스 출신’의 탄생
— 리우돔스 출신이라는 견해
— 가족의 집
— 세례, 견진성사 그리고 영성체
— 영감의 원천이 된 교리서
— 레우스에서 보낸 어린 시절
— 십대 초반의 청소년기
— 바다와 공간
— 포블레트 수녀원 설계 계획
— 레우스의 사회
바르셀로나에서의 학생 시절 (1868~1878)
— 증등학교와 과학부 (1868~1874)
— 주립 건축학교 시절 (1874~1878)
— 초기 작업
건축가로서 활동의 시작: ‘대성당’의 꿈 (1878~1883)
— 레우스 원고 (1878)
— 마타로 노동자 협동조합 (1878~1885)
— 가우디, 당대의 사회로 진출하다
— ‘위대한 성당’의 꿈과 ‘카사 파이랄’의 구상 사이에서
— “나는 결혼해야겠다는 소명을 느껴본 적이 없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영적 변혁으로 (1883~1898): 창의력과 내면 탐구 사이에서
— ‘대성당’의 시작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첫 번째 건축 시기(1883~1893)
— 걷잡을 수 없는 창의성 (1883~1889)
카사 비센스 (1883~1889)
엘 카프리초 (1883~1885)
구엘 별장 (1884~1887)
구엘 저택 (1885~1889)
— 내면 탐구 (1887~1893)
아스토르가 주교궁 (1887~1893)
간두셰르의 데레사 수녀원 학교(바르셀로나) (1888~1890)
보티네스 저택(레온) (1891~1892)
탕헤르 가톨릭 선교회 설계도 (1892~1893)
— 위기와 영적 변모(1894~1898): 사순절의 단식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두 번째 건축 시기 (1894~1898)
폭발적인 창작에서 질병으로 (1898~1911)
— 새로운 관점
— 상징적 관점
— 미학적 관점
— 바르셀로나에서 폭발한 창조력
카사 칼베트 (1898~1900)
베예스과르드 저택 (1900~1908)
구엘 공원 (1900~1914)
카사 바트요 (1904~1906)
라 페드레라(카사 밀라) (1906~1910)
— 종교 건축에서 폭발한 창의력
콜로니아 구엘 교회 (1898/1908~1914/1918)
마요르카 대성당 복원 (1902/1904~1915)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세 번째 건축 시기 (1898~1911)
—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가우디의 답변
— 파리에서의 성공과 심각한 질병 (1910~1911)
신비주의의 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우디의 유일한 목표 (1911~1926)
— 친구들의 죽음
— 토라스 이 바제스의 영적 지도
— 조카딸의 죽음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네 번째 건축 시기 (1911~1926)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의 삶
— 생애 마지막 시기
가우디, 유일무이한 존재
— 사람과 작품
— 타인의 평가
— 가우디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았는가
— 성격, 태도 그리고 생활 습관
— 절제된 생활
— 이상
— 하느님과 하나 된 삶
— 얽매이지 않은 삶
— 유리 너머의 얼굴
세 개의 서명에 대한 에필로그
— 세 개의 서명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주
리뷰
책속에서

가우디는 기술이 사랑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하고, 건축과 상징은 함께 어우러져야 하며, 모든 건 항상 상황과 맥락에 따라 뜻과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사실 상징은 독립적인 의미를 갖지 않기에, 어떤 역사에 기대고 있는지, 어떤 맥락에 속해 있는지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좌표를 잊게 되면 심각한 해석의 혼란이 초래된다.
많은 사람이 완전히 꾸며내거나 너무나도 경건하게 추측하거나 사상적으로 추론하여 가우디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가우디는 분명한 근거를 바탕으로 자기 작품을 엄격하게 해석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념을 혼동하고 뒤섞어 서로 관련이 없는 요소들이 관계 있다고 추정하고 설정할 위험이 있다. 특정 요소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상징적 차이를 간과할 수도 있다. 마타로 노동자 협동조합 깃발에 있는 벌은 근면함과 공동 노동의 정신을 상징한다. 반면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있는 탄생의 파사드에 새겨진 신앙의 문에서 성모 마리아의 성심에서 피를 빨아먹는 벌들은, 아들의 죽음을 겪게 될 예수의 어머니가 겪는 고통과 고난을 상징한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거나 근거가 불충분하다면 가우디의 상징성을 정확히 해석할 수 없으며, 그의 강함과 미묘함을 이해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목표다. 조안 베르고스의 표현대로, 가우디라는 인물과 인품과 그의 작품, 그의 업적과 통찰력, 또한 그 기반을 이루는 모든 것에 접근하고자 한다. 방법론적 관점에서 이 책은 “소 앞에 수레를 놓지 않는다”라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가우디에 관해 깊이 연구하지 않거나 그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모든 것을 검증하지 않고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우디는 거의 글을 쓰지 않았다. 특히 서른 살 이후에는 전혀 쓰지 않았다. 또한 1936년 그의 작업실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공방이 무정부주의자 대원들의 습격을 받으면서, 그의 메모와 도면, 스케치와 연구 자료, 작품 모형과 분필로 그린 그림을 비롯해 모든 게 불탔거나 파손되었다. 그렇지만 세속적인 그의 작품과 종교적인 작품의 대부분은 보존되어 있으며, 이것은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역사적 자료의 도움을 받아 기록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이런 자료들, 즉 가급적 그와 동시대의 자료들과 그의 작품 덕분에 가우디의 정신적·역사적 면모를 그려보려는 이 전기를 쓸 수 있었다.
- 서문 중에서
레우스 원고(1878)
‘레우스 원고’라고 불리는 가장 긴 문서는 바르셀로나의 역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문서는 1878년 8월 10일과 1878년 9월 22일이라는 두 날짜가 적혀 있다. 그리고 <장식>이라는 일반 명칭이 붙어 있다. 가우디는 그해 여름과 가을에 스페인어로 이 문서를 썼다. 아마도 그해 여름에 레우스나 리우돔스에서 쓰기 시작했을 것이고(첫 번째 부분은 8월 10일에 시작), 그해 가을에 바르셀로나에서 마무리했을 것이다(두 번째 부분은 9월 22일에 시작). 건축가 학위를 취득하자마자 그는 건축가로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원고에는 가우디가 첫 번째 건축 사무실(칼 거리 11번지에 위치함)에서 사용하기 위해 의뢰했던 책상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할 것이다. 이 원고는 장식에 대한 광범위한 생각을 적은 글이며, 시상 詩想 을 떠올리거나 무늬를 만드는 대상이나 주제의 표현으로 장식을 이해한다. 다시 말해, 순수 조형 예술을 넘어 상징성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가우디는 외젠 비올레르뒤크 (1814~1879)와 그의 책 《건축에 대한 인터뷰》(1863)를 인용하며, 건축학교에서 엘리에스 로젠트의 수업에서 공부한 리옹스 레노, 제르맹 보프랑, 장 루이 뒤랑과 같은 저자들을 언급한다.
<장식>은 내용과 구조를 미리 정해놓지 않고 쓴 글이라서 다소 반복된다. 그렇지만 이 글은 가우디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여기서 작가는 내면에 품고 있던 모든 걸 쏟아내어 글로 담아내고자 한다. 이 원고는 건축가의 과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을 개략적으로 선언한 것이며, 특히 건축, 조각, 회화 사이의 관계 설정, 색채의 존재 이유, 역사와 자연과 기하학을 구성하는 전체, 거리와 시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원고의 주된 주제는 ‘위대하고 훌륭한 교회’는 어떻게 되어야 하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이다. 가우디는 이것이 건축가의 이상이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라우라 메르카데르 는 1878년과 1883년 사이에 집필한 가우디에 관한 또 다른 글 〈성전 건축〉에서 “종교의 문제는 가장 높은 수준에서 모든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라고 쓴다. <장식>(1883년 11월)을 쓴 지 5년 후에 조세프 마리아 보카베야와 성요셉 신심회는 그에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을 의뢰하게 된다.
크고 훌륭한 교회 건축은 물체의 아름다움을 사전에 고찰하면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형태에는 불필요한 요소가 없어야 한다. 따라서 장식은 건물의 기능이나 ‘특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공공건물이나 종교 건물은 ‘중후함’, 즉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에레크테이온 신전처럼 ‘단순한 형태와 웅장함’을 가져야 하며, 개인 주택과 같은 개인 건물과는 달라야 한다. 종교 건물에서는 ‘종교적 성격’이 표현되는데, 종교의 목적이 신비이기에 그 성격은 가장 웅장하고 장엄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 신비는 “피조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경외의 하느님”의 신비이며, 그 하느님은 전능함으로 “수백만 수천만 개의 땅뙈기를 품으시고”, 그렇게 종교 건물 혹은 교회는 ‘피 흘리지 않는 희생’의 장소가 된다. 가우디는 희생의 개념을 구원과 성체성사가 하나가 되는 것으로 이해했고, 이 성사 속에서 전능하신 하느님의 희생이 피 흘리지 않고 자비롭게 실현된다고 보았다.
- 건축가로서 활동의 시작: ‘대성당’의 꿈 1878~1883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