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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비평론
· ISBN : 9791130462677
· 쪽수 : 9000쪽
· 출판일 : 2015-07-06
책 소개
목차
≪고석규 평론선집≫ 남송우 엮음
≪권영민 평론선집≫ 김종욱 해설
≪권택영 평론선집≫ 김석 해설
≪김기림 평론선집≫ 김유중 엮음
≪김기진 평론선집≫ 오태호 엮음
≪김남천 평론선집≫ 남승원 엮음
≪김동리 평론선집≫ 정호웅 엮음
≪김동인 평론선집≫ 양진오 엮음
≪김붕구 평론선집≫ 장성규 엮음
≪김성곤 평론선집≫ 변지연 해설
≪김억 평론선집≫ 김진희 엮음
≪김열규 평론선집≫ 오윤호 엮음
≪김용직 평론선집≫ 문혜원 해설
≪김우창 평론선집≫ 이재복 엮음
≪김윤식 평론선집≫ 윤대석 엮음
≪김인환 평론선집≫ 오형엽 해설
≪김재홍 평론선집≫ 고봉준 해설
≪김종회 평론선집≫ 김문주 해설
≪김준오 평론선집≫ 고현철 엮음
≪김지하 평론선집≫ 홍용희 엮음
≪김치수 평론선집≫ 심은진 엮음
≪김환태 평론선집≫ 오형엽 엮음
≪김흥규 평론선집≫ 고인환 해설
≪박영희 평론선집≫ 허혜정 엮음
≪백철 평론선집≫ 이승하 엮음
≪신동욱 평론선집≫ 김용희 해설
≪안막 평론선집≫ 문경연 엮음
≪안함광 평론선집≫ 이성천 엮음
≪양주동 평론선집≫ 방인석 엮음
≪이광수 평론선집≫ 임정연 엮음
≪이숭원 평론선집≫ 유성호 해설
≪이승훈 평론선집≫ 이재복 해설
≪이원조 평론선집≫ 이훈 엮음
≪이헌구 평론선집≫ 차선일 엮음
≪임헌영 평론선집≫ 오창은 해설
≪임화 평론선집≫ 이형권 엮음
≪정태용 평론선집≫ 김유중 엮음
≪조남현 평론선집≫ 김학균 해설
≪조동일 평론선집≫ 하상일 해설
≪조연현 평론선집≫ 서경석 엮음
≪채광석 평론선집≫ 고명철 엮음
≪최남선 평론선집≫ 문흥술 엮음/김학중 해설
≪최동호 평론선집≫ 이상숙 해설
≪최유찬 평론선집≫ 오문석 해설
≪최일수 평론선집≫ 하상일 엮음
≪최재서 평론선집≫ 이경수 엮음
≪한설야 평론선집≫ 이경재 엮음
≪한효 평론선집≫ 오태호 엮음
≪현철 평론선집≫ 백지연 엮음
≪홍기삼 평론선집≫ 김춘식 해설
(가나다 순)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다음에 또 하나 우연을, 예컨대 한국문학사의 상당한 수가 조선조 소설의 우연을 얼마나 깔보고 능멸하고 업신여겨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코인시던스(coincidence), 컨티전시(contigency), 그런 것들이 문학작품에서 무시되어도 좋은 것입니까. 우리들의 인생이 얼마나 우연의 연속이고, 우연일수록 필연적인 의미를 더 가지고 우리들에게 뒤집어씌운다는 것을. 그들은 인생을 안 살아 본 걸까요.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우연을 깔보고. 더 걸작인 것은 환상이라든가 몽상 그런 것도 깔본 것입니다. 이거는 인문학 할 자격이 없다고 제가 그랬습니다. 우리들의 상상력이라든가 환상을 무시하고 무슨 인문학자라고 그럴 것입니까. 사실에 달라붙는 것은 파리라도 달라붙습니다. 그래 가지고 환상을 깔보고, 꿈을 깔보고, 그러면 그런 식의 환상이라든가 우연이라든가 그 따위가, 그 너절한 것들이 어떻게 사라져 가는가를, 그러면서 근대사의 기점을 자랑스럽게 위로 가져가려고 들었습니다. 이건 명백한 진화론이고 이른바 발전주의 사관입니다.
▶ ≪김열규 평론선집≫ <한국 문학사 기술의 제(諸) 문제(問題)> 중
<유선애상>에서 그리고 있는 시적 대상은 무엇일까? 어떤 연구자의 주장대로 ‘택시’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해석이 가능한가? 이쯤에서 나 자신이 이제껏 숨겨 둔 답을 먼저 공개하기로 하자. 나의 카드에는 ‘자전거’라고 적었다. 이 시에서 그려 내고 있는 시적 대상은 자전거다.
▶ ≪권영민 평론선집≫ <정지용의 <유선애상(流線哀傷)>에 대하여> 중
최고의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그것은 예술일 수 없으며, 철난 뒤에 익힌 일본어로서는 예술적 경지에 이르기가 거의 불가능한 이 이중 구속에 그는 전면적으로 노출되어 있었고 이러한 절망의 질이랄까 밀도가 낳은 산물이 그의 창작들이다. 그 절망의 질이랄까 밀도의 어떠함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 <향수> 속에 나오는 ‘북해공원의 에피소드’이다. 고립무원에 놓여 독립운동가인 남편의 타락과 배신으로 아편 밀매로 연명하는 누나란 무엇이뇨. 그 자체가 어머니이자 고향이 아닐 수 없다. 북해공원 벤치에 모처럼 앉은 오뉘란 그 자체가 ‘모국어의 실체’가 아닐 수 없다. 그 틈으로 끼어든 것이 중학과 대학의 동창인 일본인 이토 소위였다. 이토 소위란 그러니까 그 자체로 ‘일본어’가 아닐 수 없다. 이 틈에 놓인 ‘나’란 무엇인가 이토를 뜻밖에 만나자 ‘나’는 일본어의 실체로 동화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나’의 무의식 속에 일본어의 실체가 은밀히 작동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한순간 일어날 수 없다. 이 무의식의 작동의 힘의 위세는 그의 ‘의식’을 넘어서고도 남는 것이었다. 누나를 향해 저도 모르게 일본어로 외치는 상황이 벌어질 만큼 절대적이었음이 판명된다. 의식의 레벨(조선어의 실체)을 무의식의 레벨이 무화(無化)시키는 이 장면이란 새삼 무엇인가. 조선어를 두고 ‘일본어가 되라!’라고 평소에 염원하지 않았다면 이런 사태가 벌어질 이치가 없다.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되었던가.
▶ ≪김윤식 평론선집≫ <조선 작가의 일어 창작에 대한 한 고찰>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