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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이덕일의 한국통사 2](/img_thumb2/9791130627854.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91130627854
· 쪽수 : 204쪽
· 출판일 : 2020-01-20
목차
4장. 남북조시대
1. 북조 대진국(발해)
1) 대진의 건국
2) 대당 전쟁과 진국의 발전
3) 진국의 쇠퇴와 멸망
*요나라 왕실은 고구려의 후예인가?
*진국은 독자적 문자를 갖고 있었나?
2. 후기 신라의 번영과 진골의 분열
1) 인구 100만의 서라벌
2) 진골의 분열과 6두품
3) 농민봉기와 호족의 대두
3. 후삼국과 고려의 건국
1) 후삼국 시대
2)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
5장. 고려시대
1. 황제국 고려의 이상과 현실
1) 호족연합정책의 성과와 한계
2) 왕건의 고구려 제국 재건의지
3) 이상과 현실의 충돌
4) 혜종의 즉위와 호족들의 반발
2. 중화 사대주의 세력의 득세
1) 광종의 왕권강화 정책
2) 과도기 경종과 유교정치를 지향한 성종
*서희와 강동 6주
3) 서경세력의 도전과 좌절
*강조가 요나라 성종과 싸운 동주는 평안도인가?
4) 국풍파의 도전, 묘청의 봉기
*금나라 시조는 고려 사람인가?
*철령과 공험진
3. 무신정권
1) 의종의 실정과 무신들의 봉기
2) 무신정권의 지배기구와 사병들
3) 최씨 무신정권과 몰락
4) 교종의 저항과 팔만대장경
5) 민중들의 봉기
4. 대원항쟁과 원나라의 간섭
1) 무신정권, 강화도로 천도하다
2) 계속되는 몽골의 침략
3) 강도 정부의 출륙과 삼별초의 항전
*삼별초는 오키나와까지 갔을까?
*다시 일어난 고구려 부흥운동
5. 고려의 위기와 개혁의 시대
1) 토지제도의 붕괴와 국왕들의 개혁
2) 공민왕과 신돈의 개혁
*고려 말에도 유행했던 족내혼
3) 우왕의 요동 정벌과 신흥사대부의 부상
4) 철령위는 함경남도 안변이었나?
5) 위화도 회군과 사대주의 득세
6. 고려의 멸망과 새 왕조 개창
1) 이성계의 군사력과 정도전의 사상의 결합
2) 조선의 건국이념, 성리학
3) 과전법과 조선 개창
*고려에 망명한 중국의 왕족 가족들
*조공과 회사
6장. 조선 전기
1. 조선 개창과 유교정치 체제 구축
1) 공신들의 시대
2) 1·2차 왕자의 난
*정도전 아들들의 운명
3) 피의 숙청으로 반석 위에 선 왕권
4) 천인들도 출세할 수 있는 사회
5) 조선의 국경은 철령에서 공험진
6) 태종의 유산
*태종우
2. 세종시대의 명암
1) 수령고소금지법
2) 종모법 환원
3) 천인 등용과 북방 강역 수호
4) 세법 개정에 전 농민의 의사를 묻다
5) 민족문화의 창달과 훈민정음 창제
*훈민정음 이전에 고유 글자가 있었을까?
3. 문종·단종 시대와 헌정질서에 대한 도전
1) 문무겸전의 문종
2) 문종의 종기와 급서
3) 풍수 예언과 계유정난
4) 단종, 쫓겨나다
*《노산군일기》와 《단종실록》
4. 공신들의 시대
1) 상왕복위기도 사건
2) 공신들의 낙원, 백성들의 지옥
*사육신과 삼중신
*세조와 공신들의 후회
3) 예종의 개혁과 급서
4) 성종의 친정과 사림의 등장
5. 사화와 사림의 집권
1) 조의제문과 무오사화
2) 갑자사화와 중종반정
*연산군은 백모를 성폭행했나?
3) 기묘사화
4) 을사사화와 사림의 재기
*율곡 이이의 조광조에 대한 평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세종실록지리지』는 윤관이 고려지경이란 비석을 세운 공험진, 선춘령을 두만강 북쪽 688리라고 쓰고 있고, 조선에서는 통상 700리라고 말했다... 『태종실록』 5년(1405) 5월 16일조는 태종이 김첨을 통해서 “공험진 이북은 요동遼東으로 환속하고 공험진 이남에서 철령까지는 그대로 본국本國(조선)에 붙여 달라”는 태종의 요청을 명 태조가 받아들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고려 말 우왕이 명 태조 주원장에게 확인 받았던 철령~공험진까지였던 고려의 국경선이 그대로 조선의 국경선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때의 철령은 지금의 요녕성 심양 남쪽 진상둔진이고, 공험진은 흑룡강성 영안 부근이다. 조선 후기 지도에도 공험진 선춘령은 두만강 북쪽 700리라고 명기하고 있다. 조선총독부의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가 한국사의 강역을 축소시키기 위해 공험진을 함경남도 안변에 그린 것을 지금껏 남한 강단사학계가 추종하면서 각종 국사교과서에도 고려 국경이 함경남도까지였던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 윤관이나 우왕, 태종이 지하에서 통곡할 노릇이다.
_<5장-2 중화 사대주의 세력의 득세. *철령과 공험진> 중에서
노비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신분의 세습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의 신분이 다를 경우 그 자식의 신분은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종모법從母法이라는 것이었다. 조선은 부인 외에 첩을 두는 축첩(畜妾)이 허용된 사회였으므로 부모의 신분이 다를 경우 대부분 아버지의 신분이 높았다... 태종은 종모법을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는 종부법從父法으로 바꾸려고 했지만 노비 소유자들인 양반 사대부들이 결사반대했다... 이숙번 같은 측근공신들이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태종은 종부법으로 개정하는 윤음을 반포했다. “하늘이 백성을 낼 때는 본래 천구賤口(천인)가 없었다. 전조前朝(고려)의 노비법은 양인과 천인이 서로 혼인하면 천한 것을 우선해 어미를 따라 천인으로 삼았으므로 천인의 숫자는 날로 증가하고 양민의 숫자는 날로 감소했다. 이날 이후에는 공사(公私) 여종이 양인에게 시집가서 낳은 소생은 모두 종부법에 의거해 양인을 만들라(『태종실록』 14년 6월 27일).” 이 윤음은 사실상 노비해방 선언이었다. 이날 이후부터 부친이 양인이면 모친이 사천私賤이어도 그 자식들은 모두 양인이 되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재임 1861~1865)의 노예해방 선언보다 무려 450년 이른 노비해방 선언이었다.
_<6장-1 조선 개창과 유교정치 제제 구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