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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30637808
· 쪽수 : 220쪽
책 소개
목차
마감 근육 ─ 김민철
숨바에서 온 편지 ─ 이숙명
스물에도, 마흔에도 마감 ─ 권여선
마감, 유감, 쾌감 ─ 권남희
알콩달콩하고픈 마감에 나는 항상 앓고 닳고 ─ 강이슬
마감이라는 캐릭터 ─ 임진아
어느 5년 차 출판편집자의 ‘마감 증후군’ ─ 이영미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김세희
저자소개
책속에서
결국 마감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다. 나의 마감이 늦어지면 다음 사람이 마감을 맞추느라 자신의 시간을 갈아 넣어야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는 것. 나의 일상이 중요한 것처럼 그들의 일상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자각하는 것. 더 고민해보고 싶고, 더 써보고 싶고, 끝까지 붙들고 해보고 싶지만, 그리고 그러다 보면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은 착각도 들지만, 지금까지 최선의 지점에 멈춰서는 것. 다음 사람을 믿고, 지금까지의 최선의 공을 던지는 것. 그것이 마감의 규칙이다.
- 김민철 <마감 근육> 중에서
잡지인들에게 마감이란 그런 겁니다. ‘왜?’라는 질문 너머에 존재하는 당위죠. 그에 따르면 인생이 아주 단순해집니다. 살아 있다, 마감을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우리가 다루는 주제가 세계 평화든 자본주의든 패션과 뷰티든 상관없습니다. 물론 때때로 ‘왜?’라는 질문을 떠올릴 수는 있겠으나 그 화두에 오래 매달리는 자는 결국 업계를 떠납니다. 살아남은 자, 혹은 돌파구를 찾지 못한 자들은 그 맹목성을 감내하는 데도 인이 박인 자들이죠. 그들은 자신의 당위를 실천하기 위해 ‘왜?’라는 질문을 떠올리는 아랫사람들에게 가혹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똑똑한 후배들을 업계에 붙잡아두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다른 삶을 기웃거릴 틈을 안 주는 거죠. 다시 말해, 내일 전쟁이 나건 말건 마감을 할 수 있는 자만이 이 바닥에 남는다는 겁니다. (중략)
너무 걱정은 마세요. 마감은 끝나거나 안 끝나거나 할 겁니다. 책도 팔리거나 안 팔리거나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 인생은 언젠가 확실히 끝이 납니다. 우리 그냥 사랑을 해요. 이 우주를, 가련한 중생을, 마감 늦는 작자들을요.
- 이숙명 <숨바 섬에서 온 편지> 중에서
마감을 한다는 것은 끝내기로 한 것을 끝냄으로써 약속을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크든 작든 그건 내 삶의 흐름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는 일과 같다. 삶의 시간을 이쪽과 저쪽으로 구획 짓는 일이다. 마감 이전에는 내 모든 것이었던 하나의 세계를 그곳에 놓아두고 떠나는 일, 마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했던 자신을, 어쩌면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더 나아졌을지도 모를 그 세계에서 단호히 끄집어내 그 너머의 세계로,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마감이란 말 앞에서 언제나 깊은 경외와 두려움을 느낀다.
- 권여선 <스물에도 마흔에도 마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