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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알라 알카이시 (지은이), 서제인 (옮긴이)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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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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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69095587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6-06-10

책 소개

한마디로 말해, 굶주림과 언어에 관한 책이다. 기아와 전쟁은 문장의 꾸밈을 거부한다. 은유와 리듬 또한 튕겨내면서 즉각적인 진실만을 담고자 한다. 전쟁의 한복판에 놓인 사람들은 긴 문장을 버리고 단어 하나에 생각의 연쇄 전체를 넣으려 한다.
“가자에서 번역은 부서진 문장 구조와
부서진 삶들로 만들어진 다리 위를 걷는 일이다”

소설가 김연수
번역가 김명남 김선형 홍한별 강력 추천
“핏속에 품고 뼛속에 기억할 글들.”

굶주림과 전쟁은 문장의 은유와 리듬을 거부한다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은 한마디로 말해, 굶주림과 언어에 관한 책이다. 기아와 전쟁은 문장의 꾸밈을 거부한다. 은유와 리듬 또한 튕겨내면서 즉각적인 진실만을 담고자 한다. 전쟁의 한복판에 놓인 사람들은 긴 문장을 버리고 단어 하나에 생각의 연쇄 전체를 넣으려 한다.
하지만 공습과 공습 사이에 쓰인 알라 알카이시의 글은 흙을 빵으로 착각할 때조차 인간은 어떻게 아름다움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가를 문장마다 입증하고 있다. 형용사를 버리고, 문법마저 벗겨내며 ‘굶주림’만 거의 유일한 동사로 삼고 있으나 그 가운데 부드러움을 끼워넣으려 온 마음을 기울인다. 가자는 단일한 서사가 될 수 없다. 비틀리고 흔들리는 문장들 속에서, 단락을 늘리며 기억이 연장되기를 요구한다.
저자는 아랍 문학을 영어로 옮기는 번역가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실어 나르는 일은 언제나 오역을 무릅쓰는 배신행위인데, 팔레스타인 번역가에게는 이 배신의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진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헐벗은 상황이 영어로 보도될 때면 비통함은 배부른 이들이 받아들이는 데 버겁지 않도록 순화되고, 매끈한 형태로 다듬어진다. 영어는 원래 외교 언어인 데다 흔히 수동태로 쓰인다. 이는 곧 문장에서 책임의 주체를 지워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를테면 대량학살은 ‘충돌의 격화’로, 봉쇄는 ‘안보 조치’로 축소되고 만다. 또한 어머니는 아이를 ‘잃는’ 게 아니다. 어머니는 사별을 하고 크나큰 타격을 받은 채 무너져 있을 뿐이다.
저자는 비통함과 친밀함, 즉시성의 언어인 아랍어와 단정하게 범주화된 언어인 영어 사이에 서 있다. 번역은 불시에 완곡어법과 회피, 축소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는데, 팔레스타인 번역가가 모국어를 제국의 언어로 옮길 때 그 괴리는 가장 커진다.

번역가, 가자지구 전쟁을 가장 잘 증언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의 전쟁을 가장 잘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번역가일 것이다. 이에 저자는 번역을 하나의 윤리적 전투로 여기며 있는 그대로의 언어로 전하고자 분투한다. 가자를 번역한다는 것은 단순히 올바른 단어를 찾는 일이 아니라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귀를 찾아 헤매는 일이기도 하다. 정확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비통함은 그것을 비가시적 영역에 가둬두도록 훈련해온 세계를 통과할 수 있는 형태로 빚어져야 한다. 팔레스타인 번역가가 된다는 것은, 사라져가는 세계와 그 사라짐을 좀처럼 인정하려들지 않는 세계 사이에서 중개자가 되는 일이다. 그것은 부서진 문장 구조와 부서진 삶들로 만들어진 다리 위를 걷는 일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세상은 더 이상 일관된 문장으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에서 보면 세상은 말더듬이이고, 파편 난 조각이다. 이성의 문법이 작동하지 않는 그들 세계에서 역사는 부식되는 가운데 나선형으로 미끄러진다. 알라의 글은 눈앞에 환영이 어른거리는 굶주림 속에서도 가자의 정확한 현실을 영어로 실어 나르는 데 온 힘을 다한다. 가자 전쟁 동안, 아랍어로만 쓰여 있었더라면 잔해 너머로 결코 다다르지 못했을 목소리들을 영어로 옮겼다. 세계의 부정확한 인식과 맞서 싸우는 그의 문체는 감정의 과잉 없이 절제력을 보임으로써 오히려 독자의 감정을 근간부터 뒤흔든다.
책에 실린 열두 편의 에세이와 열네 편의 시는 모두 기억의 폐허로부터 혹은 아직 끝나지 않은 재앙의 가장자리로부터 쓰였다. 저자는 이 글들이 누군가에게 읽히리라는 기대 없이 탈진 상태에서 써내려갔다. 누군가 증언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존재가 말소되리라는 다급함이 그를 글쓰기로 밀어붙였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결과물은 가자 전쟁에 대한 인식을 올바른 토대 위에 다시 세운다. 언어는 언제나 정신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어준다.
가자에 관해 문장 하나를 쓰는 것은 전 세계적 무관심이라는 구조에 맞서는 일이다. 알라 알카이시는 쓰고, 번역한다. 세계가 변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번역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포기하는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가자에서는 새로운 동사들이 출현하고 있다. 감시, 표적 공격, 실종…… 그리고 매 시간을 알려주는 가차 없는 척도는 바로 굶주림이다. 그것은 몸의 배선을 바꾸고, 지각을 왜곡하고, 기억이 흐려지게 만든다. 굶주림은 문을 두드리거나 속삭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해체할 뿐이다. 그것은 허락 없이 들어와 그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시간을 건너가는 방식을 바꿔버린다. 하지만 구호센터에서 받은 음식을 먹을 때, 그것은 충족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 한입 한입마다 수치심을 자아낸다. 배부름은 사악함처럼 느껴지고, 음식물의 위안은 공허함을 느끼게 만든다.
버티는 법을 계산하는 데 익숙해진 몸은 풍요 앞에서 여전히 움찔한다. 한 스푼 한 스푼 측정하면서 생존을 위해 절약하도록 약속된 몸은 배급된 음식 앞에서 감각을 되찾지 못한 채 옛 시간에 그대로 묶여 있다. 그리하여 가자 사람들은 굶주림 속에서도, 배급 속에서도 어쩔 줄 몰라하며, 자기 자신을 거부한다.

정확함이란 감정적 의미의 정확함이다

굶주림은 하나의 서사가 아니다. 따라서 증언하는 이는 굶주림과 거리를 둘 수 없다. 그것을 알려면 살아내야 하고, 이때 감정적 정확함이 발생한다.
가자 사람들은 녹초가 된 채 너덜너덜해진 인간 존엄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다. 그들은 약하게 태어났는가? 아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텅 비워지고 있다. 삶을 연명하려는 압박은 구호센터로 걸어가는 그들의 등을 파고든다. 배고픔은 자신만의 언어를 키워낸다. 조용하게 사람을 갉아먹는 언어를. 그것은 요란하게 찾아오기보다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그것들이 구부러지고, 닳아 없어지게 만든다. 가자 사람들은 한 번에 소멸하지 않는다. 굶주림, 환멸, 박탈, 무감각을 차례로 겪으며 단계적으로 쓰러진다. 그럼에도 그들은 증언을 하고, 글을 쓴다. 존재의 허덕임에 이름 붙이는 것은 총체적 말살에 저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굶주림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눈앞에서 여과 없이 지켜본다. 하지만 구경꾼이 될 수 없어서 쓴다. 잿더미에서 단 하나의 문장만 살아남는다 해도, 목소리가 너무 미미해 잔해 아래로만 가닿는다 해도, 자신들이 한때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세계가 기억해주길 바란다.
쓰는 사람의, 번역하는 사람의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가. 저자는 어지러움 속에서도 어휘에 생명을 불어넣어 자신이 지각한 내용을 돌연 문장에 주입한다. 좋은 문장은 기쁨의 감각을 주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이 책이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가자의 고통 속에서 찾을 수 없는 즐거움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마침내 전쟁의 페이지를 넘길 때가 도래하면, 세상은 가자가 침묵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입속에 흙이 들어찬 채로도 말을 했다. 깨진 잇새로도 노래를 불렀다. 부러진 무릎으로도 기도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굶주림에 이름을 붙였다. 이것을 참아내고 견뎠다.

목차

머리말

1. 굶주림의 울부짖음 아래
2. 가자에서 바라본 풍경―W.B. 예이츠의 점점 넓어지는 소용돌이를 통해 본
3. 우리는 손이 부러질 때까지 두드렸습니다
4. 축소되는 언어, 폭발하는 기억
5.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상처와 말을 잇는 다리
6. 대위법적 신체
7. 베를린보다 더 좋은
8. 에드워드 사이드가 가자에 대해 가르쳐주는 것
9. 가자여, 라마단의 축복이 있기를
10. 두 지평선에서 드리는 기도
11. 보이지 않는 것을 번역하기―가자의 하늘과 앤 카슨의 비전
12. 태양이 다른 지평선들을 넘어가기까지

시詩
재스민이 있던 대문 | 가자, 언젠가 12월에 | 재와 메아리가 든 가방 | 알지 못한다는 것의 무게 | 남아 있는 굶주림 | 가자, 인내의 끝에서 | 내 아버지의 사진 | 바다가 기억하게 해줘 | 바닷가에서 보낸 목요일 | 길을 잃으면, 바다를 찾지 마라 | 당신이 죽어야 한다면 | 풀어내지 못한 슬픔 | 어제로 돌아가는 길은 없다 | 아무도 가자를 떠나지 않는다

저자소개

알라 알카이시 (지은이)    정보 더보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출신의 번역가이자 연구자. 가자지구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시, 에세이, 단편소설을 영어로 번역하여 서구 매체에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문학 번역을 통해 문화적 기억과 저항, 생존의 서사를 전달하는 데 힘써왔다. 또한 가자지구의 굶주림, 기억, 상실에 관한 에세이로 그곳의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목소리로 주목받고 있다. 가자 이슬람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번역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아랍릿』『네이션』『리터러리 허브』『아디 매거진』『에이버리 리뷰』 등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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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제인 (옮긴이)    정보 더보기
번역을 하면서 세상이 거기 있다는 걸 확인한다. 『흩어짐』 『구불구불 빙빙 팡 터지며 전진하는 서사』 『형식과 영향력』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벌집과 꿀』 『조지 오웰 뒤에서』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노마드랜드』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별들이 우리를 발견하기를』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목구멍 속의 유령』, ‘코펜하겐 삼부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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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배고픔은 몸을 집어삼키기 훨씬 전부터 언어의 뼈대를 풀어헤치고, 명료함을 지워버리고, 리듬을 해체하고, 생각의 허약한 찌꺼기들만 남겨놓는다. 처음에 일관성 있는 문단으로 시작했던 것은 곧 조각조각 흩어지고, 결국에는 너무나 굶어서 의미를 계속 붙잡아두지 못하는 정신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리는 현상만 남을 뿐이다. 그렇기에, 내 언어가 나를 완전히 저버리기 전에, 나는 이 글을 쓴다.


그리고 그럼에도, 나는 계속한다. 말을 하고 글을 쓴다. 침묵은 더 심각한 형태의 패배가 될 테니까. 비록 금이 가고 불확실할지언정 내가 여전히 줄 수 있는 선물은 증언뿐이다. 증언을 내 안에 가둬놓는 건 이 굶주림이 그것에 이름 붙이는 목소리까지 먹어치우게 놔두는 일이 될 테니까.
가자에서 살려면 이제 부재로 이루어진 안무를 따라야 한다. 우리는 걷는 게 아니라 떠내려간다. 먹는 게 아니라 찾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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