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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814582
· 쪽수 : 124쪽
· 출판일 : 2019-09-30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고요함이 스스로 말한다 / 난쟁이 달 / 피아노 / 결혼의 노래 / 우는 사람 / 노래하는 사람들 / 항구 여인숙 / 뜨개질 / 한 잎 / 그다음 날의 기도 / 맛보는 아이 / 냇물 / 홀로 가는 길
제2부
모란꽃 벽지 / 백조들 / 화단에 내리는 달빛 / 사물의 입장에서 / 밤에 더 빛나는 꽃 / 칸나와 폭풍 / 나무는 우리의 부재다 / 태풍의 눈 / 벚나무는 꿈꾸듯 진다 /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말한다 / 꽃은 생로병사를 치러낸다 / 숨은 몸 / 겨울나무 / 새벽
제3부
바람 / 3월 잡목 산 / 짙어지며 저물자 / 알뿌리 / 백봉령 / 벚꽃 소풍 / 모내기 / 자작나무와 돌풍 / 암자 / 푸른 철도 / 삼화사 / 가을은 이미 / 눈사람
제4부
논골담 담쟁이 / 해넘이와 해돋이 / 북평장날이면 / 바이올린과 사나이 / 비렁뱅이 / 갓난아기 / 난롯가의 초상 / 성냥 / 개, 고양이, 쥐 / 말 / 촛대바위 / 기도 / 단 한 번도 노래 부른 적 없는 / 냉동 칸
작품 해설:순환적 세계 인식과 저녁의 신비 - 임동확
저자소개
책속에서
한 잎
꽃도 새도 없이
은행잎이 한꺼번에 쏟아지다가
높이 서 있는 종유석 위에
붙인 한 잎
나는 그것이 암탉 배 밑에 숨어
갓 깨어난 병아리 한 마리인가 했다
저것들은 가지 끝에 서서 떨어지지만
엄마 배 밑에, 날갯죽지, 꽁지 속에
숨어 갓 깨어난 연노랑
병아리들이다
엄마의 손끝을 거쳐 엄마의 품속
벗어난 새끼들의 인생을
엄마와 떨어진 내가 벼랑
아래서 그것을 보고 있다
벼랑에 혼자 붙어서 헐떡거리는
그것의 숨이 내 속에 가득 찬다
나는 노란 부리를 내밀며 애걸하는
어린 병아리에게 물
한 모금도 줄 수가 없었다
하늘 한번 우러르고 싶어서 얼마나
오래갈 빛을 받고 있었는지
입을 벌린 채 얼이 빠진 듯
하얘지다 말고 멈춰 있다
맛보는 아이
귀 모양으로 생긴 본질 하나가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휘어져 있다가 몸을
쭉 펴는 순간
아이는 휘돌아간 시간들을
몽땅 손에 넣지 않았던가
아이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가장 늙은 얼굴이면서
새로운 얼굴이네
겉으론 순종적인 것 같지만
가장 기괴한 얼굴이네
아이에게는 예의가 없고
도덕도 없으며 정의도 없네
허망한 것을 진실하다고
여기지도 않고 진실한 것을
따로 챙기지도 않네
다만 지금 이대로 타고난
자기 본성으로 미래의
욕망에 대한 셀 수 없이 많은
증거를 요청할 수 있네
꽃은 생로병사를 치러낸다
꽃은 빨리 지지도 않고
한꺼번에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가지에 매달린 채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암 환자의 세포처럼
모든 고통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펄썩 바닥을 치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살아 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일주일 후 열흘 후 한 죽음이
떨어지고 나면 분명히
또 한 죽음이 다시 필 것이다.